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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Nov 20. 2020

일주일에 한 번은 곰탕을

설렁탕 vs 곰탕, 난 곰탕이야

중학교를 졸업한 지가 언제쩍인데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하나 있다. 김첨지가 아픈 아내가 오늘은 일을 가지 말라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고 일을 나갔다가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왔지만, 아내는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이야기. "왜 먹지를 못해!! " 하고 울부짖으며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슬픈 대목을 읽으면서도 열다섯, 열여섯의 나는 침을 삼키며 김이 모락모락, 뽀연 국물 위에 송송 파를 썷어 넣은 설렁탕을 상상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겨울만 되면 큰 스댕 통에다가 사골뼈란 것을 잔뜩 넣고 삶으셨다.

몇 시간째 푹푹 고우면 집 안에는 사골 국물 냄새로 가득했고, 창문에는 김이 서려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게 그렇게 몸에 좋다며, 겨울이면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뼛국', '사골국'을 내주셨다.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리고, 밥을 훌훌 말아 깍두기를 우적우적 씹어먹으면 추운 겨울에 그만큼 든든한 음식이 없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그런 걸지는 몰라도, 먹으면 괜히 힘이 나는 것 같았으니까.

삼시세끼 상에 올라 지겨울 법한데, 또 생각이 나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사골 국물을 베이스로 할머니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로 메뉴를 달리해 끓여주시기도 했다.


어렸을 때 먹어봐야 나중에 커서도 그 음식을 먹을 줄 안다 했던가,사실 못먹을 음식도 아니겠거니와 쉽게 주변에서 사먹을 수 있는 메뉴라서

'설렁탕'이란 이름의 음식을 할머니의 뼛국과 같은 색깔이니 똑같은 것이겠거니와 하고 몇 번 사먹었다.

가게를 들어서면 꼬릿한 설렁탕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이내 적응이 되고, 게 눈 감추듯먹어 치웠다. 마지막에는 꼭 받침대에 뚝배기를 비스듬히 세워서 밑에 남아있는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설렁탕을 먹게 된지 2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를 사회생활을 하며 조금씩 추측해볼 뿐이었다. 사실 곰탕도 뽀얀 줄 알았다. 컵라면이나 레토르트로 나온 제품들도 곰탕이란 이름을 달고 흰 국물을 자랑했으니까. 맑은 국물을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 내가 아는 고와 만든 국밥 종류의 음식은 설렁탕 뿐이었으니까. 점심 시간에 회사 직원분들과 함께 갔던 식당 상호는 <나주곰탕>, <하동관> 이런 곳이었는데,

이 곳에서는 정말 밥알이 찰랑찰랑 보이는 맑은 국물이었고, 설렁탕에서 보던 얇은 고기 조각이 썰어져 들어있었다. 곰이 들어가서 곰탕은 아닐텐데, 왜 설렁탕이랑 다른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구글의 검색창은 '이런 질문, 너만 하는거 아니야' 하고 자동으로 내 검색어를 완성해서, 누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

설렁탕과 곰탕의 가장 큰 차이점은 ‘뼈’에 있다. 설렁탕은 뼈를 넣어 끓이고, 곰탕은 뼈를 넣지 않는다. 설렁탕은 사골과 소머리 등 잡뼈를 넣고 고아서 국물을 낸 뒤 소량의 살코기와 허드레 고기를 따로 삶아 내는 음식이다. 반면에 곰탕은 양지, 사태 등의 살코기로 국물 맛을 낸다. - 미쉐린 가이드 대한민국

드디어 알았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나 누군가에게 물어볼 생각도 굳이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내심 부끄럽러웠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설렁탕이 아닌 곰탕을 챙겨 먹는 편이다. 도시락을 잘 싸서 다니다가, 늦잠 자서 도시락을 못싸고 빈 손으로 회사에 갔는데 때마침 텐션이 떨어졌을 때, 그럴 때 곰탕이 참 생각난다.

"저, 나가서 먹고올게요"

곰탕 집에서 한 그릇을 싹싹 비운후 복귀.

"명온님, 뭐 먹었어요?"

"곰탕이요."


그 다음주에도

"명온님, 뭐 먹었어요?, 곰탕 먹었죠?"
"그럼요!"


영양학적으로 엄청 뛰어나다거나, 속을 좋게 해준다거나 알려진 자료는 없고 심증만 있을 뿐이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보양식이다. 환경을 생각해서 고기를 줄여보겠다는 다짐을 먹어도, 이상하게 곰탕 앞에서는 굴복할 수 밖에 없다. 혼자 먹는 밥은 맛이 덜하고 우울해진다며 잘 못먹던애가 이제 혼자 곰탕집 가서 곰탕 한 그릇을 후루룩 먹다니 스스로 대견할 노릇이다.


따뜻해지는 속을 느끼는게 좋다. 소면을 넣지 않고, 그저 맑은 국물에 알차면서 부드러운 밥알, 여기에 몇 점 얹어먹을 김치면 충분하다. 아주 깔끔하잖아.남은 오후 업무 시간도 잘 보낼 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마저 채워진 기분이랄까.


그래서 회사에서는 내가 곰탕을 먹으러 간다고 말하는 날에는 오늘 '곰탕텐션'이냐며 신조어를 붙여 말하곤 한다. 어쩌면 그 어렸을 적 할머니가 이걸 먹으면 힘이 난다 해주셨기에, 나에게 곰탕은 아니고 설렁탕에 가까웠지만, 비스무리한 음식과 관련해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힘을 주는 음식이라고 믿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한 그릇의 곰탕을 오래도록 물릴 때까지 늙어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힘을 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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