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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Nov 20. 2020

한강은 매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고개를 들어 앞 좀 보세요

서울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아도 탁 트인 풍경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을 꼽자면, 바로 한강이다.

돗자리를 챙겨 잔디밭에 앉아 치킨을 뜯거나, 자전거를 빌려 타거나, 수변을 산책하기만 해도 좋은 곳이지.


사실 한강 근처에 살지 않거나 큰 맘을 먹지 않고서야 평일에 한강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한강을 주 5일 드나드는 사람이었다. 내가 사는 강 아래 지역에서 회사가 있는 강 위 지역 사이를 왔다갔다, 무려 하루에 2번이나 건너는 샘이다. 지하철은 껌껌한 지하 통로,  실내 지하철 승강장 백열등의 푸른빛, 그리고 빽뺵한 아파트 숲을 지난다.


당산역에서 2호선이 출발하면 합정역을 향해 한강 다리를 건넌다. 역의 천장이 벗겨지고 탁 트인 한강이 나오면, 이어폰은 빼고 핸드폰도 내려놓는다.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넘어간 것처럼 주변이 환해진다.

조금 천천히 지나가는 지하철의 속도만큼이나 나도 느릿느릿 눈으로 사진을 찍듯이 한강을 바라보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다. 다리의 중간쯤 통과할 때에는 출근길에 아직 몽롱한 채로 깨지 못한 내 정신이 맑아진다.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 한강에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저만치 작게 보인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얼마나 많은가 우뚝 솟은 타워가 얼마나 선명하게 잘 보이느냐에 따라 미세먼지의 농도도 가늠할 수 있다. 어쩌다 풍경이 선명하면 그만큼 기쁜 것도 없다.


 매일 거르지 않고 넘실거리며 저 먼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은 희망을 안겨준다. '나를 넘어 이 다리 위를 다 지나고 나면 즐거운 하루가 시작될 거예요!' 하고 한강이 응원하는 느낌이다.


때로는 매일 보는 강이지만 볼 때마다 참 넓다는 생각도 하고, 이 물이 다 말라버리면 서울 사람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강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괜한 상상을 해본다. 둥둥 떠다니는 오리나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보며 어찌나 기특한지, 복잡한 서울에서 그나마 한강에 있는 너희들은 용케도 잘 버텨주고 있다며 마스크 속으로 칭찬을 한다.


조금 애석한 건, 매일 조금씩 다른 매력을 보여주며 반짝이는 한강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는 거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손바닥 위 네모난 화면만 들여다보면서 엄지 손가락만 쓸어 올린다.

며칠 동안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을 쓱 둘러봤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깜깜한 터널이든, 밝아진 풍경이든, 사람들에게 창밖 풍경은 큰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 아주 잠깐만 창밖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렇게 볼 게 많은데 좋은 기회를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혼자 한강의 풍경을 전세내고 보는 것 같아서 내심 기분이 좋다가도,

'아니 왜 이 좋은걸 안 봐요?' 하는 마음인 거다.


 너무 익숙한 풍경이지만 매번 생경하다.

자연은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어떻게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똑같고 볼 게 없는 풍경, 누군가에게는 매일 재밌고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꼭 멀리 떠나야만 자연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길 가다 마주치는 가로수, 한강, 시멘트 바닥 틈을 비집고 자란 민들레 등 얼마든지 보려고 하면 보인다.

익숙하고 당연하다 생각한 풍경을 조금 오랫동안 바라보자. 누가 알겠어, 그런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질지. 그 작디작은 풀 한 포기가, 질리도록 봐왔던 한강의 물이 우리를 다독이고 정신 차리라고 얘기해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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