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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Dec 15. 2020

수영의 맛

그때의 수영과 지금의 수영은 다르다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이 노래는 주 3일 들을 수 있는 곡이다. 혼성그룹 거북이의 '빙고'라는 노래인데, 저녁 8시 정각이 되면 '아~싸!' 하는 인트로와 함께 울려 퍼진다. 무슨 말이냐고? 내가 수영장에 다닐 때 수영 강습 전에 나오는 노래라는 거다.


사실 이것도 옛말이다. 수영을 1년째 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마스크를 쓸 수 없는 수영장은 생각만 해도 위험하니까. 유일하게 좋아하고 흥미를 붙인 운동인데 언제 수영장에 마음 놓고 갈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그립다. 좋지만은 않았던 수영장 물의 소독 냄새도, 고무 수영모에 물을 받아 눈이 10시 10분이 되도록 열심히 끌어당겨 쓰던 우스운 내 모습 마저도.


수영을 처음 시작하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운동회에는 5명끼리 달리기 경주 시간이 있는데 3년 내내 꼴찌를 했다. 결승선에 눈물을 꾹 참고 도착하면 선생님은 손등에 별 모양 도장 하나를 꾹 찍어 주셨다. 1등은 공책 5권, 5등은 공책 1권을 상으로 받았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많았던 내가 상위권에 들지 못한다는 건 억울하고 분한 일이었다. 공책을 좋아하는 데 공책을 한 권만 받는 것도 서러웠다.


"명온아, 폐활량도 기를 겸 수영을 다녀보면 어떻겠니?"


부모님의 권유로 이때부터 관심도 없던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집에서 3분 거리인 수영장을 그동안은 다녀라 다녀라 해도 귓등으로 듣더니만, 패배의 쓴맛을 보자 열의가 불타올랐다. 접영이 있는 줄도 몰랐고, 상급반으로 올라가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달리기를 1등만 하면 강습반 이름이 돌고래든 물개든 상관없었다. 킥판을 잡고 음파음파 숨쉬기부터 시작해 어쩌다 보니 꼬박 2년을 다녔다.



5학년이 된 해, 달리기는 어떻게 되었냐고?



열두 살의 안명온은 달리기 1등을 했다. 그리고 반 여자대표로 이어달리기 주자가 되었다. 짜릿했다. 이때 처음으로 '노력하면 되는구나'를 실감했다. 솔직히 엄격한 호랑이 선생님의 불호령에 배영을 하다가 오줌을 찔끔 싼 적도 있고, 종종 강습 시간이 두렵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못하는 달리기를 잘하게 되었으니 수영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후로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늘어난 공부 시간 때문에 자연스레 수영과 멀어졌다. 그러다 17년이 훌쩍 흘러버렸는데,  문득 레일이 있는 수영장 공기가 그리웠고, 부드럽게 팔다리를 통과하는 물살의 감각이 그리워졌다. 알몸으로 여러 사람이 있는 곳을 싫어해서 목욕탕도 웬만하면 가지 않는데, 용기를 내서 다시 수영 강습에 등록했다. 몸은 다행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날센돌이처럼 잘하던 동작들을 오랜만에 시도할 때에는 겁이 났지만, 힘을 빼고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물에 나를 내던지니 할만했다.


열두 살의 수영과 스물아홉의 수영은 확실히 달랐다. 어렸을 때의 수영은 자신감을 주었고, 숨을 좀 더, 더, 발차기를 좀 더, 더 이어나가며 끈기가 부족한 나에게 버티는 힘을 길러 주었다.


어른의 수영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즐거움이 꽤 크다.


현실에서 맛보기 어려운 달콤함을 수영을 하면서 즐기기 쉽다. 단시간에 내 의지대로 성장하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일을 통해 성장을 갈망하지만, 성장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몇 년의 시간과 업무가 쌓여야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옆에서 누군가가 피드백을 주지 않으면,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이렇게 가는 게 맞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순간도 많다.  하지만 수영은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쉽다.


고개를 수면 밖으로 살짝 뺄 때 수영장의 미터 표시가 있는 천장의 깃발이나 저 멀리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자리에서 발을 굴리는 수면 아래 수강생들의 발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끔은 오리발이란 치트키를 써가며 더 자유롭게 앞을 내다볼 수 있었고, 아 내가 이렇게 능력을 키우면 이런 기분이 드는구나, 하고 미리 경험을 할 수도 있었다.


힘을 빼도 괜찮다. 아니 힘을 주면 탈 난다.

수영을 통해 '현실에서도 이렇게 해야겠다' 하며 지혜를 얻기도 한다. 일을 하다가 훅 몰입해서 에너지를 쏟아내면, 일 처리를 제시간에 마칠 수는 있어도, 주변을 보기 어렵거나 제풀에 지쳐 다음 업무에 쓸 힘을 배분하지 못해서 힘들어한 적도 꽤 된다.


힘을 줄 때와 주지 않을 때를 구분해야 하는 것. 도리어 힘을 너무 많이 주다가는 탈이 나는 것은 수영과 현실계의 공통점이다. 발가락이나 발등에 쓸데없이 힘을 주다가 번번이 쥐가 난적도 있다. 수영에서는 오히려 힘을 줄 신체 부위, 타이밍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부자연스럽다. 힘을 빼고 물살에 몸을 맡길 때에 뒤에서 누군가 나를 밀어주듯 자연스럽게 나아간다. 발차기는 힘 있게 하되, 고개는 제대로 푹 담가야 앞으로 저항을 줄여 나갈 수 있고,  호흡의 박자도 규칙적으로 맞춰야 똑바로 갈 수 있었다. '숨을 못 쉬면 어떡하지?' '물 먹으면 어떡하지?' 하고 약간의 불안감을 속으로 생각하는 순간부터 몸은 귀신같이 알고 몸의 규칙을 흐트러뜨리게 되니까 그런 잡걱정은 조금이라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냥 내 몸뚱이 하나만을 믿으며 동작을 거듭하면 수영이 잘 된다. 수영은 빠르게 가기 위해 적당한 균형을 유지할 때에만 가능한 운동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불안해하지 않아야 안정적으로 레이스를 마칠 수 있다. 생각보다 내 몸은 똑똑하고 강하다고 믿어야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영이 좋다.

안 그래도 쫄보에 걱정 왕이지만, 물속에 있을 때만큼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잘 믿어줄 수 있는 시간이라 행복하다. 그리고 지금의 속도가 굳이 빠르지 않더라도 옳게 가고 있음을, 온몸에 부드럽게 스치는 물결이 마치 나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는 것 같아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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