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최 씨 있잖어. 너 사진 보여줬더니 남자 넷이 덤벼도 상대가 안될 거라던데. 완전 상남자래 너."
"뭔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또."
기센 딸을 뒀다는 최 씨의 말에 괜히 우쭐한 아빠와 달리 나는 께름칙했다. 최 씨는 아빠가 절에서 알게 된 분으로, 왕년에 무당이었다고 했다.
아빠에게 뇌종양이 생기고 몸이 약해진 이유가 ‘물고기를 날 것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라고 얘기해 준 것도 최 씨였다. 아빠는 그 길로 그 좋아하던 송어 횟집에 발길을 끊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아빠는 웬만한 미신을 흘려듣지 못했다. 그런 성격 덕에 나는 고향 집에 가면 이따금 기이한 것과 마주했다.
"무슨 냄새야? 향 피워?"
"아빠가 기도한다고 피웠어."
냄새의 발원지를 찾아 한참 킁킁거린 끝에 발견한 곳은 장식장 위. 까치발을 딛고 보니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를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짙은 향 냄새를 못 이긴 내가 한참을 구시렁거리자 아빠는 마지못해 향을 껐다.
어느 날엔가는 현관에 들어선 나를 묵직한 독이 맞이했다.
"뭐야 이게?"
현관에 웬 독이 놓여 있었다. 아빠는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거실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똑같이 생긴 독이 하나 더 있었다.
"뭔데 저게?"
"이렇게 놔두면 집에 재물이 들어 온대."
조심스레 독을 열어보니 굵은소금이 꽉 차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 인터넷에 ‘현관에 소금’을 검색하니 연관검색어가 수두룩했다. ‘현관 소금항아리, 소금항아리 위치, 현관 소금단지, ‘풍수지리 소금’…
한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킨 독이 머쓱하게, 우리 집 재물운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종교적 믿음도 무교인 나에게는 미신과 헷갈리는 것이었다. 한 번은 부모님의 권유(라기보다는 회유)로 절에서 지내는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에 참석했다. 예수재는 살아생전 다음 생에 받을 과보에 대해 미리 재(齊)를 지내는 의식인데, 장장 6시간이 넘는 큰 행사였다.
예수재의문에 따르면, 우리는 각자 태어난 해에 따라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빚은 불교 경전을 읽어 갚을 빚과 금전적으로 갚을 빚으로 나뉘는데, 경오년(庚午年) 생인 나는 읽어야 할 경전이 20권, 갚아야 할 돈이 62,000관이다. 경전은 그렇다 치고, 갚아야 할 돈이 꽤 된다. 관(貫)이 ‘동전 1천 잎을 꿴 꾸러미’라고 하니, 10원만 대입해도 빚이 6억 2천이다(!!!). 수십억이 넘는 온 가족의 빚을 위해 절하고 시주하는 부모님을 보자니 마음이 혼란했다(절하는 족족 나가는 시줏돈에 심통이 난 것도 같다). 그리고 6시간이 지났을 때 내 인내심은 저승길을 건넜고, "다신 절에 안 오겠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는 믿음은 내게 사치였다.
아빠는 여전히 부처님의 가르침과 미신을 더불어 따른다. 전자 후자 할 것 없이 그 믿음은 너무 견고해서 내가 딴죽 걸 틈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믿음(혹은 정신 승리)이 가끔 안타깝다.
‘아픈 몸은 의사를 믿고, 부족한 돈은 은행을 믿으시지... 다음 생은 알게 뭐람.’
더 솔직히는, 오늘을 살기에 바쁜 나는 그 맑은 믿음이 샘난다. 믿는 대로 다 잘되면 얼마나 좋을까. 안되니 문제지.
'다 잘돼, 사바하’
부모님이 당부해 방문 위에 붙여 논 부적의 글귀다. 스님이 써 준 부적이라는데 또 마음 깊은 속에서는 의심이 돋는다. ‘다 잘될까?’ 다 잘된다는 말은 언제 나에게 얄궂음이 아닌 안정감으로 다가올까. 오늘도 ‘다 잘돼’를 해맑고 단호히 되뇌었을 아빠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