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5일차
학기가 끝나고 여행을 준비할 시간이 약 한 주정도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음에도 난 집을 떠나기 전날까지 채비를 거의 안 했는데, 아마 죽지는 않을 테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그 병상을 딛고 한 달이 새도록 매일 밤 죽고 또 다시 태어나야 했으므로.
호주의 시드니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내 주변인들은 올 때 캥거루 한 마리 채 오라는 말을 많이 해주었다. 그리고 이따금 몇몇 지인은 코알라를 데려오라는 말도 잊지 않었다. 마치 호주에 가면 캥거루와 코알라를 반드시 볼 수 있다고, 혹은 호주에 가면 그것들을 꼭 봐야만 한다고 나 몰래 약속이라도 해놓은 듯했다.
그렇다면 도무지 보이지 않는 당신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떤 곳일지 한참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그런 약속은 만들어 놓지 않은 거냐고 종일 질투하고 따졌다는 말이다.
짐을 풀고 가장 먼저 갔던 곳은 숙소 근처에 있는 공원. 한국과는 다르게 시드니엔 언제든 휴식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 도시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날씨가 일 년 내내 말끔하기에 우리나라보단 공원의 쓸모가 더 두드러지는 것이기도 할 테고, 자그마치 육만 년간 보존된 호주의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고 도시가 자리 잡은 결과이기도 하겠다. 안 그래도 호주에 가면 공원에 누워 책을 맘껏 읽다가 오겠노라 단단히 다짐해 놓은 참이었다.
첫째 날엔 숙소 근처의 벨모어 파크(Belmore Park)와 이스트 시드니 쪽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엘 들렀고, 둘째 날엔 킹스 크로스 옆에 위치한 러쉬커터스 베이 파크(Rushcutters Bay Park)를 갔다 왔다. 벨모어 파크엔 비둘기가 많았다. 하이드 파크는 전쟁기념박물관을 끼고 있었고, 러쉬커터스 베이 파크는 요트가 가득한 항만을 끼고 있었다. 공원들을 정복한답시고 나름 시드니 곳곳을 둘러보았던 셈이다.
그렇게 이틀을 돌아다니고, 나는 처음 목격하는 바깥나라의 새로움보다 한국에서 내가 살던 곳과 시드니의 서로 비슷한 점들을 먼저 마음에 떠올렸다. 시드니의 하늘도 한국의 하늘처럼 파란색이라던가, 시드니의 바다도 울산의 바다처럼 파도를 울컥울컥 토해낸다던가,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고, 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사랑하는 애인의 손을 잡고, 사랑하는 애완견을 산책시킨다는, 그런 것들.
방에 돌아와 너는 여행 체질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속삭이다 이내 사람 사는 게 결국 다 똑같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낯선 곳에 오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기억들을 천천히 곱씹었다. 지구 반대편으로 넘어와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나 물에 한 번 젖어 쪼그라진 시집의 주름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이 객지에서 꼭 한번 신열을 앓아야겠다고 머리맡에 적어둔 채 잠들었다. 꿈 없어 외로운 밤이었다.
호주에 도착한 지 사흘이 되어서야 챙겨 두었던 안내 책자를 펼쳐 보았다. 그래도 들인 돈이 얼만데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심산이었다. 여느 안내 책자가 그렇듯 도입부엔 호주의 역사와 지명 같은 것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약 백오십 년 전 금광을 캐러 백인들이 호주로 몰려와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내용이 아무렇지 않게 적혀 있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원주민들이 육만 년간 살던 곳을 당당하게 꿰차고 쌓아 올린 것들이 지금 호주의 반절이라는 것이다. 그 대목을 읽고 난 후로 나는 시드니 어디를 가든 이상한 위화감이 때때로 나를 덮친다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천문대 언덕으로 향하던 어느 좁은 골목을 걷다가 불현듯 나를 지배하고야 말았는데, 나는 그때 이어폰을 꽂은 채 하늘을 보며 인디언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고 말없이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입자도 이렇게 잔혹한 세입자가 있느냐고, 왜 이곳 사람들은 영어를 쓰며 브런치를 즐기고 또 행복하게 웃는 것인지, 도시의 거리가 왜 백인과 관광객으로 가득한 건지 누가 대답해줄 수 없냐고도 물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영어가 부족한 나로선 마땅한 대답을 들을 수도, 듣는다고 이해할 수도 없었겠다. 남의 집에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나는 그냥 우리 집이 조금 그립고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천문대로 계속 걸어갈 뿐이었다.
셋째 날에는 천문대 언덕에 처음 갔다. 아마 그때부터 시드니가 조금 좋아진 것 같다. 저녁 일곱시 즈음 언덕에 다다랐는데 1월의 남반구는 여름을 지나는 때인지라 이제 막 해가 지는 참이었다.
천문대 언덕의 해 질 녘은 황홀했다. 언덕을 낀 시드니의 서쪽이 모두 한 아름 내려다보이고 그쪽 지평선 위로 해가 숨어드는 광경에 나는 한동안 눈을 그쪽에만 얹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언덕에서 서성이다 해가 지고 숙소로 향하는 긴 골목을 걸으며 여기 오길 참 잘했다고, 여기 참 마음에 드는 곳이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다음 날 저녁에도 천문대 언덕에 갔다. 마땅한 계획이 없었던지라 그저 전날의 기억을 안고 오후에 들렀던 패딩턴 마켓으로부터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그 언덕까지 다짜고짜 걷기 시작했다. 그때의 걸음은 왠지 무거워서 가던 도중 벤치에 주저앉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은 시간을 잘못 잰 탓에 해가 지기 한참 전 언덕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래서 일몰까진 잔디 좋은 곳에 자리를 깔아 누워 있기로 했다. 유독 바람이 센 날이었는데, 해가 들지 않는 곳을 찾아 몸을 뒤척이면서 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을 깨작깨작 읽었다. 슬픈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였다.
바람이 너무 세서 숨을 고르려고 잠깐 자리에 앉았는데 커다란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드니엔 나무가 정말 많은데 그 크기가 우리나라의 웬만한 나무보다 커서 아직 눈에 익진 않았을 때였다. 작은 것은 내가 다니는 학교의 플라타너스만 한 것부터 시작해 크게는 한국의 재개발지역에 있는 오래된 상가를 덮을 수 있을 정도까지, 여름나라의 나무는 다들 이렇게 크게 뻗쳤나 싶을 정도로, 정말이지 그것들은 커도 너무 컸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나무는 언덕에 있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아주 작고 가느다란 나무였지만, 그 역시도 사람 키의 세배 정도는 훌쩍 뛰어넘는 높이였다. 왜 그 나무가 내 눈에 들었던 건진 잘 모르겠다. 다만 나무 본인이 잎을 꽃이라고 착각이라도 한 듯 푸른 잎을 흐드러지게 피운 모습이 언덕배기를 가득 채워 내 망막에 부유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상했다. 암만해도 이상했다. 세상엔 슬픈 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무는 어찌 저렇게 활짝 피어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나무 밑동을 가림막 삼아 숨바꼭질하며 놀던 아이 둘을 양 겨드랑이에 안고 슬픔의 나라로 채어 가기라도 할 것처럼, 언덕의 나무는 활짝이도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