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입었던 옷 입기

중고, 구제, 빈티지 의류

by 면서


구제 舊製

옛적에 만듦. 또는 그런 물건.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 엄마 그리고 언니와 함께 구청에 갔다. 교복을 사러 가는 날이었다. 보통 교복이라 하면 ‘엘리X', '스마X' 등 브랜드 가게에 가서 새 옷을 맞추곤 하는데, 나는 아니었다.


대강당 같은 넓은 공간에 각 학교별 교복이 줄지어있었다. 누군가가 입었던 헌 교복이 나에게는 첫 교복이 된 셈이다. 드디어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닌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2015년 교복 내리사랑 나눔장터(출처; 서울동작지역자활센터)


설렘도 잠시, 나는 당황했다. 입학하고 며칠 등교해 보니 내 교복의 로고와 친구의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새 학교 로고가 바뀐 탓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교복을 입을 때마다 신경 쓰였다.


내 조끼에 달린 로고를 본 친구들은 나에게 질문했다. 왜 내 교복은 다르게 생겼는지... 그럴 때면 대충 핑계를 대며 둘러대곤, 얼른 머리카락과 카디건으로 로고를 가렸다.


친구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는데, 나 혼자서 다른 게 싫었다. 집이 가난해 보일 것 같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닌 일인데, 그때는 한창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 때이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튀기보다는 그들과 동화되고 싶었다.


둘째로 태어나 언니 옷을 물려 입고, 교복도 물려 입고. 그렇게 나는 남이 입은 옷, 쓰던 물건들을 이용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로고도 다르고 주머니도 없던 내 교복


구제 옷을 자발적으로 산 것은 중학교 2학년쯤이다. 친구들과 종종 동네 축제에서 무대를 섰다. 그때는 옷이랄 게 교복뿐인데, 그때만큼은 무대의상이 필요했다. 레드벨벳, 여자친구 언니들이 입는 반짝반짝하고 특별한, 그런 옷이 필요했다.


무대의상을 찾기 위해 동네 구제 옷가게에 밥 먹듯 들렀다. 돈 없는 중학생에게 그 가게는 의류계의 다이소와도 같았다. 다른 곳에서 한 벌 살 돈이면, 여기서는 상하의 세트를 살 수 있었달까! 디자인은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 많진 않았지만, 다양하다는 장점이 컸다. 남다란 옷이 필요했던 내게 제격이었다.


무대에서 입을 옷을 직접 고르고 입어보며, 교복의 통일성이 주는 안정감이 아닌, ’남들과 다른 스타일’이 주는 신선함에 흥미를 느꼈다.


구제 옷으로 코디하고 올라간 무대

구제 옷의 가장 큰 장점은 ‘원 앤 온리’ 아닐까? 어쩌면 세상에서 이 옷을 입는 건 오직 나 하나일지도?


누군가의 옷이-내 옷이 되는 과정이 꽤나 즐겁다. 구제 옷은 사이즈도, 색깔도 고를 수 없다. 하루는 가게에서 원피스를 착용해 보는데, 팔 집어넣기가 어려웠다. “이거 입을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 냉큼 사버렸다(왜냐하면 이 원피스를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그 옷을 입기는 했냐고? 살을 열심히 빼서 입었다. 오로지 그 옷을 입기 위해서! 그 원피스를 입고 외출한 날은 종일 기분이 좋았다. 이제 진짜 내 옷이 된 것 같아서였다.


넥라인과 밑단 프릴 디테일이 귀여운 데님 원피스


동아리 친구 덕분에 스냅사진을 찍게 됐다. 매번 카메라를 들고 남을 찍던 입장인지라, 피사체가 된 건 처음이었다. 늘 남에게 어울리는 장소와 콘셉트, 옷 그런 것들을 고민하다 보니, 나에게 어울리는 걸 찾는 일은 뒷전이었다.


“무슨 옷을 입고 찍을까?“ 그래서 이 고민이 나에게는 꽤나 큰 고민이었다. 마치 나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 같았고, 가장 나다운 옷을 입고 싶었다.


사진 촬영 때 입었던 옷) 언니의 빨간색 니트 집업, 체크 패턴 잠옷, 스무 살에 구매한 흰색 롱 스커트, 엄마가 입던 패턴 스커트, 신발장에 있던 주인 모를 어그부츠

이제는 남이 입던 옷에 부끄러움이 없다. 되려 그것만의 매력과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독특한 디자인, 옷에 이미 묻어있는 애정, 한 벌뿐일지 모른다는 특별함, 구경하는 재미, 착한 가격, 내 옷으로 만드는 짜릿함, 환경을 조금이나마 지키는(?) 뿌듯함까지... 앞으로도 꾸준히 구제 옷을 입을 것 같다. 나만의 스타일과 특별함을 만들기 위해!


p.s. 어제 들렀던 가게에서 (다음에 소개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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