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본 적 있나요. blur - This is a low
"우리, 이제부터 진짜를 찾아보자"
록스타가 소년에게 말했다. 연속되는 투어, 밤마다 흥청대는 파티 속에서 그는 약에 취해 수영장으로 뛰어든다.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 2000>의 한 장면이다. 그가 아는 최고의 찬사는 '진짜'라는 수식어다. 투어에 따라나선 소년에게 이렇게 마음을 전한다. "너는 진짜야"
스타에게 '진짜'라는 건 하나의 판타지일지 모른다.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그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
자기 자신만 아는 '진짜'와 '진짜처럼 보이는 것' 사이의 무수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성공 뒤에 따라오는 부담감, 혹은 자책, 자괴감. 혼란 속에서 길을 잃는다.
수많은 스타들이 벅찬 성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진짜를 감각할 수 없어 세상을 떠났다. 27세로 생을 마감하는 '27 클럽'의 명단은 계속 늘어갔다. 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등
Become an unconscious man (all for the good)
I feel so unnecessary.
(we don't think so, you seem starshaped)
의식 없는 사람이 되어 가 (모두 잘 되기 위한 거야)
내가 불필요해진 기분이 들어
(우린 그렇게 생각 안 해, 너는 스타처럼 보이는 걸)
- Starshaped* 중에서, blur
블러가 3집 앨범 <parklife>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축제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오아시스가 1집 <definitley maybe>를 발표했다. 언론은 그 유명한 '브릿팝 전쟁'에 불을 붙였다. 블러와 오아시스가 어떤 밴드인지 '진짜'는 중요하지 않다. 흥행을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했고, 시선을 빼앗을만한 전략이 있어야 했다. 재빠르게 블러는 '런던 인텔리'로, 오아시스는 '맨체스터 노동자'라는 대결 구도가 만들어졌다. 1960년대 이미 비틀스와 롤링스톤스가 그랬던 것처럼, 브릿팝의 새로운 라이벌들을 급행열차에 태운 질주가 시작되었다.
따져보면 블러나 오아시스나 그저 자기 음악을 할 뿐이었지만, 미디어는 스타를 그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미 거물이 되어버린 두 밴드는 흥행의 압박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장단을 맞춰야 했고 그러다 보니 진짜처럼 되었다. 진짜 서로를 미워하고 경쟁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론은 두 밴드에게 계속 강도 높은 반응을 유도해 냈고 에이즈에 걸려 죽었으면 좋겠다는 폭언이나, 상대의 노래를 개사하여 조롱하는 일들까지 벌어졌다. 이 미친듯한 강박 속에서 블러의 4집 <The Great Escape>와 오아시스의 2집 <Morning Glory?>가 발매되었다. 그래서 결과는? 차트의 성적으로 봤을 때 승리는 오아시스에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라는 찰스 디킨즈의 문장이 떠오르는 시간들이었다. 브릿팝 전쟁에서 승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블러의 데이먼 알반은 패배감에 시달려야 했다. 스트레스는 극도로 심해졌고 공황장애,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블러 멤버들은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팀워크도 약해졌으며 곡도 쓸 수 없었다. '브릿팝 전쟁'이라는 미디어의 이슈 몰이는 끝을 모르고, 정치인들은 브릿팝을 이미지 메이킹에 동원하려 나섰으며, 브릿팝 신은 고만고만한 밴드들이 난립하며 약물과 술에 비틀거리다가 방향을 잃어갔다.
이제 '브릿팝'이라면 신물 날 지경이었다. 블러의 데이먼 알반은 결단을 내렸다.
"브릿팝은 죽었다. Britpop is dead"
브릿팝을 일으켰던 장본인인 그가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즈음 다들 알고 있는 것을 선언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브릿팝'이라는 성을 지은 블러는 허물어져가는 폐허를 어떻게든 복구하려고 매달리지 않았다.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며 기웃대지 않았다. 결별을 선언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기꺼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blur - This is a low*
https://www.youtube.com/watch?v=iZIYAUPo80U
This is a low
But it won't hurt you
When you are alone it will be there with you
Finding ways to stay solo
여기가 밑바닥이야 (저기압이야)
하지만 그것이 널 해치진 않을 거야
네가 홀로일 때 네 곁에 있어 줄 거야
홀로 머물 수 있는 길을 찾도록
- This is a low 중에서, blur
*Starshaped
블러의 2집 <Modern life is rubbish> 수록곡
https://www.youtube.com/watch?v=_s9ra2XYzIU
**This is a low
블러의 3집 <Parklife> 수록곡으로 영국의 일기예보를 떠올리며 쓴 곡으로 알려져 있다.
BBC Radio 4라는 영국 채널의 'Shipping forecast'라는 일기예보 방송이 있는데, 이 곡에도 이 기상예보에서 보이는 몇몇 지명들이 등장한다.
이 일기예보가 수많은 영국 불면증 환자들의 친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