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빗방울처럼 blur -battle
"가슴이 찢어질 때도 있고, 재미있을 때도 있다.
삶을 사는 좋은 방식이다."
-시드니 루멧
좋아하는 일에 평생을 헌신했던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의 말이다. 일이 재미있을 때는 누구나 좋은 인생을 장담하겠지만,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힘든 경험 역시 삶을 사는 좋은 방식이라는 사실은 잊기 쉽다. 아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을 버티지 못해 떠나간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고 해도, 언제나 즐거울 수는 없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좋아하는 그 일에 따라오는 괴로움과 고통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blur -battle
https://www.youtube.com/watch?v=bKlcPMatPLA
battle, battle, battle, battle. battle
battle battle battle someone
battle someone
배틀, 배틀, 배틀, 배틀, 배틀...
누군가와 싸워
평생 순조롭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마음속에 전쟁을 품고 산다. 다른 누군가가 되었든, 상황이든, 혹은 과거의 어떤 고통스러운 기억이든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 내면의 전쟁을 치른다.
어느 편인가 하면, 고통을 아는 사람이 좋다.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 잘 모르는 이가 구구절절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는다면 의심하게 될 것이다. 나 힘들다고 알아줘달라는 호소는 흔한 것이고 과장도 많다. 억지로 드러내려 하다가는 번번이 실패하고 그렇게 알려지게 되지도 않는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누군가가 치르는 전쟁을 엿보게 될 때가 있다. 비가 개인 후, 유리창의 빗방울이 잠깐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순간처럼,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흘러가도록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자연의 이치처럼 그렇게 그것이 사라짐으로써 두 사람 사이 무언가가 달라진다.
'쉽게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전쟁이지만, 우리는 그걸 알아. 그건 특별한 것은 아니고 다들 그만큼은 안고 산다고 생각해.' 그렇게 침묵으로 대화할 수 있는 어떤 것.
이 곡이 수록된 <13> 앨범 커버는 블러의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비 온 후 반짝이는 빗방울처럼 블러가 보낸 전쟁의 시간들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1999년 blur의 멤버 모두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만들어진 앨범. 블러는 이미 자신들이 일으켜 세운 브릿팝에 사망 선고를 내렸고, 무언가 변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데이먼 알반은 오래 만나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어릴 적부터 함께 해 온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과의 관계도 삐걱거렸다. 밴드로서 10년을 함께 해왔다는 것. 거기엔 말로 다 할 수 없는, 세월 이상으로 쌓여온 먼지들이 있다.
언제나 경쾌함을 잃지 않던 그들이었지만, 이 앨범에서는 자신들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블러만의 방식으로 그들은 음악을 계속했다. 애써 억지스러운 화해를 시도하기보다는 덤덤하게 현재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들을 맞추어갔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폭발이나, 우울의 바다에 빠지는 것은 블러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전의 블러 음악과 다른 일레트로닉한 음악으로의 탐구와 실험이 이어진다.
블러의 낮은 읊조림은 어떤 면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를 떠올리게 하는데, 데이먼 알반의 나지막한 보이스는 이런 톤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멜로디 속에는 슬프지만 실망으로 향하지 않는 따뜻한 기대가 심어져 있다.
'mellow song'에서 들리는 헛웃음까지도.
blur- mellow song
https://www.youtube.com/watch?v=bjOdJnLPIQg
Forget where I've been before
Forget you
Is this where I'm going to
We'll see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잊어
너를 잊어
내가 갈 곳이 여기일까
우리는 보게 될 거야
-mellow song 중에서, bl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