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느껴져, 진창으로 흐린 날에도

최악의 날에도 우리는 blur -you're so great

by 베리티

비틀거리는 날이 있다. 언제 찾아올지 몰라도, 이를 대비한 가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적어도 어른이라면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거리를 걷고, 일을 하고, 사람을 대한다. 내 속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들키지 않는다. 가면을 쓰고 감추는 연기를 제법 하다 보면 그게 내 모습인 것도 같다. 어느새 무뎌지는 날이 올 수 있다.


알면서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청춘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렸으니까'라는 변명이 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좀 서툴고 어긋난 모습을 보여도 봐줄 수 있다. 그런 특권은 점점 멀어져 간다. 세월은 훌쩍 지나갔지만 언제 '어른'이라는 말이 내 것처럼 다가올까.


그날 밤 그 기타리스트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라디오에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던 날. 흥행을 위한 '브릿팝 전쟁'이라는 폭풍 속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제 그 정점에 선 주인공이라는 뜻이었다. 끝이 나길 바랐는데 시작이 열렸다. 밴드의 보컬 데이먼 알반은 돌아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기꺼이 정면승부의 패를 던졌고, 정상에 올랐지만 그것이 가져올 결과까지는 몰랐다. 멤버들이 말린 덕에 그날의 추락 사고는 막았지만 모두가 힘든 저녁을 보냈다. 그 길로 모두가 흩어졌다.


정말 힘든 것은 누군가와 나눌 수 없다. 함께 있어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뿐. 보컬 데이먼은 공황장애로 길을 다닐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베이시스트 알렉스는 흥청대는 파티로 모든 걸 잊으려 했다. 드러머 데이브의 결혼생활은 파경에 이르렀다.


뛰어내리려던 그 기타리스트 그레이엄은, 도저히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없어 술에 빠져들었다. 알코올중독의 나날들이 흘러간다.

스스로가 최악이라는 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blur- you're so great

https://www.youtube.com/watch?v=Q2A_GAb6rMM


Sad, drunk, and poorly

Sleeping really late

Sad, drunk, and poorly

Not feeling so great

Wandering lost in a town full of frowns

Sad, drunk, and poorly

Dogs digging in the ground


슬프고, 취하고, 형편없어

아주 늦게 잠들어

슬프고, 취하고, 형편없어

기분이 꽤 좋지 않아

찡그린 얼굴로 길을 잃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네.

슬프고, 취하고 형편없어

개들은 땅을 파고 있네.


"최고의 밴드였는데, 모두가 싫어하는 자리에 섰네요." 데이먼이 말했다.

같은 날 발매 된 오아시스와 블러의 앨범 판매고는 오아시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블러 멤버들의 방황은 계속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왜 그 자리를 만끽하지 못했을까. 오아시스에 밀리긴 했지만 블러의 앨범 역시 호평받았고 영국에서만 백만 장 넘게 팔렸다. 멤버들이 자신의 음악을 별로라고 느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보다 떨어진 퀄리티라는 뜻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남들 한 번도 어렵다는 차트 1위도 하고, 어워드 수상은 이미 여러 차례 했다.

상당한 음반 수입과 명성으로 얼마든지 대저택을 사거나 럭셔리카를 몰 수도 있고, 락스타의 흔한 클리셰처럼 여자들과 파티에 둘러싸여 살 수도 있다.


블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블러 멤버들이 부를 과시하거나 흥청거리는 가십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을 비틀거리게 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그저 깜깜한 날들이 지나갔다. 데이먼은 차츰 공연을 해나갔고 그레이엄도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으며 노래를 끄적였다. 이 곡은 그레이엄의 그 당시의 심정이 잘 드러나있다. 이 곡의 진수는, 끝까지 들어보면 알게 된다.


And I feel the light in the night and in the day

And I feel the light when the sky's just mud and gray

And I feel the light when you tell me, it's okay

'Cause you're so great, and I love you


난 빛을 느껴 낮이나 밤이나

난 빛을 느껴 하늘이 진창으로 흐린 날에도

난 빛을 느껴 네가 나에게 오케이라고 말할 때

너는 아주 멋지고 그래서 너를 사랑해


제목도 그렇고 기타 톤이 경쾌해서 이 노래가 그저 듣기 좋은 러브송인줄 알았지, 이렇게 눈물 나는 곡이라는 건 몰랐다.

이 노래가 멋진 이유는,

진창으로 흐린 날에도 빛을 느낄 수 있다는 고백 때문이다.

세상은 그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


데이먼은 그때를 회상한다.

"그런데, 그 최악의 시점에서 우리는 최고가 되었다고 봐요."


밴드 멤버 중에서 뮤직 비즈니스에 염증을 가장 심하게 느끼던 그레이엄의 고민은, 이전과 다른 기타 톤으로 블러의 다음 앨범을 이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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