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가는 토끼굴

우리들의 음악감상회

by 베리티

내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음악이 있다는 걸 알았다.’

미국 락밴드 바이올런트 팜므(Violent Femmes) 프로듀서의 노트다. ‘옷이나 춤, 이성에 대한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 있었지만, 그건 내가 듣던 음악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유는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기대 혹은 짐작.

우리는 그것을 따라 서성이고 있었다. 이상한 토끼를 따라가다가 토끼굴에 빠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친구가 본 건 어느 음악잡지의 모집 광고였다.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쉼 없는 열정적 자세를 추구하는 회원을 모집합니다.’ 친구 따라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무슨 회사도 아닌데 면접까지 봤다. 시대별 뮤지션 계보라도 읊어야 하는 건가. 음악 퀴즈가 있을까. 입사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긴장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무사통과했다. 혹시 무조건 통과되는 건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돌려보낸 사람들도 있었다. 통과를 하고도 사라져 간 이들은 더 많았다. 회장은 늘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곤 했다. “내가 얘들을 뽑았잖아!” 잘못 뽑은 회원은 아니었나 보다. 좋은 사람들이다.


인터넷은 아직, PC통신이 활발하던 시절. ‘90년대 중반의 홍대와 신촌 일대 라이브클럽이나 LP바에서는 '음악감상회'가 많이 열렸다. 그중 꽤 이름 있던 음악감상회였다. 한 달에 한번, 일요일 오후. 공연을 하지 앉는 한낮의 클럽은 그들의 차지였다. 그날의 회원이 CD를 한 더미 내놓으면 내내 그가 골라온 음악이 플레이된다. 그리고 종이 한 장씩 돌렸다. 손글씨로 대충 쓴 메모에는 앨범 소개나 코멘트들이 간단히 적혀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플레이 리스트가 만들어졌고 결국엔 이 모든 것들이 섞인다.

방에서 크게 들을 수 없던 그 음악은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다. 분명 같은 곡인데 혼자 들을 때와는 다르게 들린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이걸 음감회에서 틀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또 어떤 곳에서는 더 잘 들리는 음악이 있었다. '우드스탁'에서는 6,70년대 록음악이, '스팽글'에서는 ‘90년대 모던락이 그랬다. 또 언젠가는 에릭 클랩튼이 있던 밴드 ’Cream'의 이름을 딴 LP 바를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사이키델릭 록이 기막히게 들렸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주인장들이 좋아했던 시대가 그 장소에, 그 오디오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모든 리스트가 끝나면 간단한 소감들이 오갔다. 때로 진지한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쓸데없는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돌아보면, 취향에 대해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떤 음악을 틀어야 한다는 건 없었다.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규칙이었다. 일본 문화 개방 전이기도 해서, 우리는 몰랐던 일본 음악들을 미리 들을 수도 있었고, 독일의 아트락부터 남미 음악, 클래식, 국악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역시 많이 가지고 오는 것은 당대를 휩쓸던 얼터너티브 락, 모던락이었다.

이제 그 사람 하면 어떤 음악 장르를 들고 올지가 예측이 되었다. 사람이 취향으로 기억된다. 회원들 머리 위로 그들의 테마곡이 둥둥 떠다닌다. 신촌의 우드스탁 주인아저씨는 그 사람이 오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시곤 했다. 그건 우리 방식의 환영인사였다. 미국 락밴드 REM을 좋아하던 한 선배가 오면 어김없이 REM의 곡이 스피커를 울렸다. 어딜 가든 Blues Traveler를 신청하는 선배도 있었다. 어디선가 그 곡에 들리면 혹시 그가 있는 것이 아닌지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PC통신 영화나 음악 감상 동호회의 채팅이 활발했고 담론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신문물에 밝은 이들도 아니었다. 모임에서는 회지를 발간했다. 70페이지가 넘는 제본이 된 책자였다. 음악뿐 아니라, 연극, 영화 TV, 그리고 사회문제까지 총망라한 비평들이 쏟아졌다. 빈 틈 없던 촘촘한 글씨들. 가볍게 훑어볼 책은 아니었다. 대부분 허튼 소리나 하던 선배들은 책 속에서는 달랐다. 함부로 양보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분명 그 글 속에 담겨있었다.

이 모임의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친절이라는 부담’이 없다는 거였다. 규칙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일까. ‘이래야 한다’는 것이 없었다. 모임에 나오라고 권하기는 하지만 안 나온다고 해서 연락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남들 떠들 때 혼자 조용하다고 해서 딱히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누구든 알아서 떠들면 될 일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학생이었지만 졸업하고 일을 하던 선배들도 많았는데, 그들이 직업이 무엇인지 몰랐다. 먼저 말하기 전엔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야기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슬슬 이 편이 점점 더 편해지기 시작했다.


두 어시간 가량 음감회가 끝나면 어김없이 뒤풀이가 이어졌다. 온갖 쓰잘 데 없는 이야기의 향연들. 여느 모임들이 그렇듯이 연애 사건도 있고, 술 먹고 엉뚱한 곳에서 깨어나는 사고들이 있었다. 어느 연말, 종로에서 모였다가 이런 일도 있었다. 자정이 넘어 갑자기 신촌에 가야겠다며 무리 지어 차를 나누어 탔다. 차 문을 열어서 타긴 탔는데, 사람이 계속 들어온다. 이 인원이 타도 되는 것일까? 망설이기도 전에 이미 차는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차는 택시도 아니었다. 내릴 때는 운전자에게 택시처럼 돈까지 지불했다. 모르는 사람의 승용차를 택시처럼 타는 우리는 누구였을까? 또 택시처럼 우리를 태워준 그는 또 누구였을까?

잔뜩 취해서 몰려간 신촌의 LP바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신청곡 목록을 적어내려 갔다. 각자의 신청곡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척 맨지오니의 '산체스의 아이들'(자그마치 13분의 곡이다)의 전주가 들려왔다. 우리는 그 친구를 맹렬히 비난했다. 열 명이 각각 들으려 해도 4분씩 40분인데, 혼자 13분을 차지한다는 무모함에 분노했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이번엔 옆에 앉은 평론가가 레이더망에 걸렸다. 우리는 그를 음악 검색 앱처럼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오는 곡 제목을 물어 모른다는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괴롭혔다. “모른다니. 형, 평론가잖아요.” 사악함이 도는 눈빛으로 킥킥대며 웃었다. 뜬금없이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는 선배도 있었다. 그는 어렴풋이 내 친구에게 실수를 한 것 같았는데, 나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아니라는 대답도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가만히 듣고 보니 그게 중요한 거 같지 않았다. 그는 뭔가 용서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사실 나는 그 실수가 뭔지 알고 있었다. 내 친구도 괜찮다고 털어버린 일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실수를 많이 했다. 뭔가 해보려고 그랬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을. 그런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네가 늘 어렵더라”

취했다고 해서 나를 내 친구로 착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슨 얘기든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런 말을 처음 들은 건 아니었다. 몽롱한 가운데에서도 어떤 순간은 더욱 또렷해진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흩어지던 겨울밤들이 몇 해를 지나갔다.


세월은 우리에게도 닥쳤고 음악감상회도 계속되지 못했다. 회지를 열심히 만들던 몇몇은 음악잡지의 기자, 편집장, 공연기획자가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했던 것들이 자신의 일이 되었다. 꿈꾸던 공연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대형 밴드를 초청하고, 장맛비에 처참히 무너지면서도 몇 년에 걸쳐 록 페스티벌을 이루어냈다. 잡지를 발간하고 컴필레이션을 나누어주며, 우리가 들었던 세계를 확장시켜나갔다. TV에서 떠드는 그런 성공은 아닐지 몰라도, 한 번도 말로 꺼낸 적은 없어도 우리에겐 어떤 연대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내 발자국을 내고 따라간 끝에 발견해낸 것들이었다. 적어도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그런 경험은 삶 속에 스며들었다. 꼭 음악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도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결혼한 모습 따위를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중 몇몇은 결혼도 했다. 직장에 매이게 되고 아이의 교육에도 신경 써야 한다.

함께 음악 듣던 공간의 불빛은 희미해져 갔다. 실수 많고 불안했던, 혹은 굽힐 줄 몰랐던 그때의 시간 위로 먼지들이 쌓여간다. 이따금씩 떠올려 본다. 시간의 먼지를 걷어내면 새로운 것에 목말라했던 말간 얼굴들이 보인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내 손으로 찾으려 했던 나날들. 반짝이던 빛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단테의 문장이 있다.

‘내 눈에는 오래된 불꽃의 흔적만 남았어요’

누군가의 눈에서 그 흔적을 발견하는 날, 나는 음악감상회를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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