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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퍼센트를 내게 줘

스톤로지즈를 듣는 오후

by 베리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내고 말 거예요. 남의 간섭은 전혀 받지 않고!"

누군가 내게 말했다. 나는 바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음... 가능할까요?"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확신을 달라는 뜻이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백 퍼센트를 완성하는 일.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차마 내뱉진 못 했지만, 항상 그려왔던 어떤 세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말. 그 말을 꺼냈던 사람에게서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장소를 발견한다. 노력, 재능, 실력, 그리고 운. 그래, 다 중요하다. 하지만 혹시 용기가 부족한 건 아니었을까.


오늘 스톤로지즈를 들었다. 스톤로지즈는 좋아하는 음악을 말할 때 바로 떠오르는 그런 밴드는 아니다. 라디오나 엘피바에서도 듣게 될 확률은 미미하다. 처음 들었을 때 '와, 이거다' 하는 놀라움이나 강렬함은 없었다. 하지만 이토록 오래도록 듣게 될 줄도 몰랐다. 어떤 음악은 시간을 거슬러도 끄떡없다. 세월이 흘러도 낡지 않는다. 데뷔 연도 '1989'년이라는 숫자가 오히려 신선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UVwLhV1oY1c (The Stone Roses - bye bye bandman)


한국에서 공연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밴드들이 있다. 하지만, 예측이라는 것은 이름 모를 공연기획자의 열정과 밴드의 호기심이 만나 기꺼이 깨진다. 2012년 지산 록 페스티벌에서 의외의 헤드라이너였던 스톤로지즈. 그들의 연주가 울려 퍼지자 잔디가 푹신해졌다. 산들바람처럼 다가오는 기타 멜로디, 건들건들 걸음마다 시선을 잡아끄는 보컬 이안 브라운과 '겉멋'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처럼 기타를 직설적으로 연주하던 존 스콰이어를 비롯한 스톤로지즈 멤버들이 무대를 꽉 채웠다. 객석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영국식 억양의 수다조차 공연의 일부였다.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은 한 여름밤. 누군가는 앞으로 뛰어나가 리듬을 타고 또 연인들은 무대가 멀리 보이는 뒤편의 캠핑의자에 앉아 귓속말을 속삭인다. 기타 음 하나하나에 스톤로지즈의 시간이 바람처럼 실려온다.


스톤로지즈는 영국 맨체스터 출신이다.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팀으로 유명한 바로 그 지역. 쇠락한 도시 맨체스터를 주목하게 만든 '매드체스터(Madchester)'라는 음악 씬이 있었고, (매드체스터는 'mad'와 Manchester의 합성어다) 그 열풍 속에 스톤 로지즈가 있었다. 맨체스터에 불었던 광적인 열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런 이름이 붙을 정도라면 그 지역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애틀 사운드처럼 폭발적이지도, 후에 매드체스터의 영향을 받은 여러 영국 밴드들처럼 쟁글거리는 기타 소리도 아니지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그것.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그들만이 낼 수 있는 소리. 이런 류의 음악은 누군가의 운명을 바꾼다. 스톤 로지즈의 영향을 숨기지 않아 왔던 오아시스(Oasis)의 노엘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처음 스톤로지즈를 보았을 때, 나와 비슷하게 웃을 입은,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라고 느껴졌다. 그때 나는 음악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컬 이안 브라운과 기타 존 스콰이어는 맨체스터에 사는 동네 친구였다. 네 명의 멤버로 틀을 잡은 밴드는 많은 라이브를 하면서 사운드 실험을 거쳐 드디어 1989년 데뷔 앨범을 만들게 된다. 그들은 남들의 간섭이 싫어서 한밤에만 레코딩을 했다. 멤버가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으며 과장도 허풍도 없이 충실했고 레코딩은 짧은 시간에 끝났다. 여러 라이브를 거치고 수많은 리허설 끝에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팝 음악사에 남을 멋진 데뷔 앨범 <The stone roese>가 되었다.

stoneroses.jpg The Stone Roses의 데위 앨범 커버

이 앨범 커버는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의 작품이다. 미술가 잭슨 폴락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데 스톤 로지즈는 '우리 음악의 90퍼센트는 잭슨 폴락에 대한 오마주'라고 말할 정도로 공공연히 애정을 드러냈다. 삼색 컬러는 프랑스 국기에서 가져온 것이고, 68 혁명을 달구던 시위대들이 최루탄에 노출되었을 때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오렌지를 핥거나 그 즙을 눈에 넣어 최루가스를 중화시켰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매캐한 최루탄과 연기가 가득한 거리에서 기성세대의 권위주의를 오렌지로 이겨내던 젊은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다.


데뷔 앨범은 밴드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성공을 위해 버려야 할 것, 더 중요한 지켜야 하는 어떤 것들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다른 일들이 그렇듯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주인공들이 먼저 알게 될 것이다. 리스너들은 그런 데뷔 앨범을 만나는 기쁨을 안다.

스톤로지즈는 이 앨범으로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의 사운드에 길을 터주었다. 데뷔 앨범의 성공 이후,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하고 2집을 내면서 몇몇 좋은 곡들을 만들지만 데뷔 앨범의 성공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쉬움 속에서 스톤로지즈는 1997년 결국 정식으로 해산한다.


매드체스터의 흥분도, 데뷔 앨범의 성공도 이제는 다 옛이야기로 남았지만 이 앨범은 남아서 최근까지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치며 주목받고 있다. 이안 브라운은 스톤로지즈의 음악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세월이 지나 우리의 귓가에 음악으로 다가온다. 묻혔던 그림이 발견된다. 먼지 쌓여있던 책이 재평가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하여 성급하게 실망할 일이 아니다. 세상의 걸작들이 차지하는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그곳에서 수많은 앨범을 찾을 수 있겠지만 멋진 데뷔 앨범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다. 이제 막 발을 떼려는 걸음, 도전과 실험으로 세상에 나선 첫 시작. 우리는 첫 번째 앨범이 갖는 의미를 알고 있다.


어떤 일이 희미해지고 불투명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을 찾는 일에 지쳐갈 때 스톤로지즈는 그 대답을 들려준다. 백 퍼센트의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 그 길을 발견할 거라고 말해준다. 시끄럽던 주변이 고요해지는 순간이다. 투덜거리기를 멈추고, 스톤로지즈를 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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