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스트록스(the Strokes)

라이브 무대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

by 베리티

여기는 인천의 송도. 멀리 바다가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으로 이어진 바다 바람을 맞으며 수많은 관중들이 헤드라이너를 기다리고 있다. 바다와 객석 사이의 거대한 무대에 밴드가 하나둘 들어선다. 노이즈를 가득 머금은 기타 소리가 앰프를 거치자 이 공간에 전기 코드가 꽂힌 것 같다. 어느새 여름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후두둑 제법 굵은 빗방울.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장대 같은 빗줄기다. 관객들은 우비를 걸치긴 했지만 소용없다.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옷은 흠뻑 젖었고 신발은 진흙 범벅이 되었다.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머리가 완전히 젖은 밴드 멤버들도 흐트러짐 없이 연주에 집중한다.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연출이라도 한 것처럼 천둥이 치면 환호성이 터졌다. 2006년 1회 펜타포트 헤드라이너 스트록스의 무대였다.


"비가 오지 않으면 글래스톤베리가 아니죠."


영국의 록페스티벌 글래스톤베리에 가면 다들 하는 말이라고 한다. 한국의 여름 페스티벌은 요즘 더위가 극심해졌지만, 정착되기 전에는 장맛비로 인한 큰 고비를 겪었다. 펜타포트의 전신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을 시도했던 1999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해 역시 어김없이 장맛비가 쏟아졌고 어떻게든 페스티벌을 진행시켜보려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공연도 중단되고 기획사도 거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한국에서도 대형 페스티벌을 즐기고 싶던 팬들은 속옷까지 젖을 정도의 비를 맞고 진흙탕 속을 휘적휘적 실망감으로 돌아서야 했다.


그래서 다들 놀라지 않았다. 기획사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장대비에도 끄떡없는 무대를 해외에서 공수해 왔고 웬만한 비에는 크게 놀라지 않게 되었다. 몇 번의 비를 맞으면서 차라리 우중공연의 로망이 싹텄다. 어차피 비가 오는 시즌이라면, 시원하게 맞고 진흙 범벅으로 진창 놀면 될 일이다. 차라리 그 편이 록페스티벌에 더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좋아하는 밴드의 무대라면 잊지 못할 기억이 되지 않을까.

그 로망을 실현해 준 것이 스트록스다. 예나 지금이나 무대에서 자유롭게 수다를 즐기는 밴드의 태도도 여전했다. 콧대 높은 뉴요커들의 지나친 세련됨이나 시니컬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컬 줄리안은 학교 다니던 때 룸메이트가 한국인이었다며 서태지 노래 한 소절도 들려주었다. 잘 부르려는 계산도 없이 친구에게 들려주듯 갑자기 터뜨려서 깜짝 놀랐던 기억. 이렇게 틀에 박히지 않은 생각과 태도는 더욱 시선을 끌었다. 멘트 없이 노래만 주로 하는 오아시스 같은 공연도 좋고, 수줍은 듯하면서도 다정한 트래비스의 무대도 기억에 남는다. 짜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툭툭 말을 건네는 스트록스의 스타일은 그들만의 것이었다. 그 누구도 스트록스처럼 무대에 서지는 않는다. 라이브 무대를 본다는 것은 그렇다. 밴드의 노래와 함께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들의 태도를 경험하는 것. 꼼꼼하고 크리티컬 한 비평가의 리뷰에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뮤지션과 팬들 사이의 스토리가 있다.


대다수의 (락) 뮤지션들은 내한공연에서 팬들의 열기에 놀라지만 한국에서의 앨범 판매고를 보면 실망하고 다시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2006년 그렇게 스트록스의 무대를 즐긴 팬들은 많아야 3천 명 정도였나. 앨범 판매고는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락이라는 장르는 메인스트림에서 한참 멀어진 시대가 되었다. '개러지 리바이벌'은 과거형이 되었고, 17년이 지나 스트록스는 다시 펜타포트 무대에 섰다. 언제부턴가 비보다는 더위가 복병되었다. 숨이 턱 막히는 한여름의 더위로 티켓팅을 고민한 팬들이 많을 것이다. 페스티벌의 주인들도 바뀌었다. 요즘엔 음악보다는 페스테벌 자체를 즐기는 팬들이 더 많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 그런 얘기는 굳이 하지 말자.

안 가도 되는 이유를 찾자면 수 만 가지다. 하지만, 무슨 상관일까. 스트록스인데! 관객이 적든 많든 앨범이 팔리든 말든 그들은 한국 팬들을 기억하고 있다. 발길은 이미 무대로 향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쿨한 밤"


스트록스의 첫인사였다. 반어법으로 들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낮에 비해서 분명 저녁은 바람이 선선했다. 스트록스 전 무대 검정치마에서부터 그랬다. 그렇게 스트록스의 연주가 이어졌다. 음향에 따른 호불호가 있겠지만 연주는 더 탄탄해졌고 보컬도 선명했다. 스트록스의 곡들은 짧아서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아쉬움이 더했다.

"감사합니데이"


보컬 줄리안의 인사였다. 무대에서 노는 방식은 여전했다. 멤버들에게 이것저것 말을 건네고 거침없이 농담하고 웃었다. 기억에 남는 수다는 'I love you'를 서로 말해보라는 거였는데, 셰익스피어 연극 대사를 떠올린 것 같았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 이런 식의 덧붙임.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여전히 천진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멤버들끼리 즉흥적으로 잼도 하다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중단하기도 했는데, 그걸 보고 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긴장감을 보여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무대를 이끄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혹시 긴장을 감추기 위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긴 했다. 어찌 되었건 스트록스의 방식이 좋다.


셋 리스트는 초반에는 최근 곡들 위주로 하다가 점점 예전 앨범들의 히트 넘버들을 들려주었다. 듣고 싶은 곡들이 너무 많았지만, 시간은 빠르게 간다. 시간을 붙들고 싶은 밤이 지나간다. 우리들의 라이브, 페이지가 그렇게 채워진다.

The Strokes -Last Night

https://www.youtube.com/watch?v=TOypSnKFH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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