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의 paul을 들으며
대학 신입생 때엔 졸업반 선배들이 한참 어른으로 보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메이크업이 점점 짙어지던 시절, '풀메' 장착하고 취업 준비로 바쁜 선배들을 보며, 음- 저 나이 대에는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지금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막상 내가 졸업반이 되었을 때에도 스스로 나이가 많다고 여겼다. 뭐 대학교 안에서 나이가 많은 것이 맞기는 하다. 따져보면 25세가 안 되었는데도 그랬다. 서로 늙었느니 어쩌니 하는 농담도 일상이었으니까.
언젠가 돌잔치에 갔는데, 돌도 안 된 아기가 손뜨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다들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는 사이 모자가 살짝 벗겨졌다. 애기 엄마가 다시 모자를 고쳐 씌우면서 말한다.
"얘는 모자를 써야 어려 보여요!"
속으로 풋 웃음이 났다. 돌도 안 된 아기보다 더 어려 보이는 건 어떤 모습인 건가. 그리고 '진짜 지금 내가 어리고 젊구나' 하고 실감하는 순간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진짜 없는 것인지, 있는데도 잊힌 것인지 금방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라는 노랫말이 귀에 꽂히는 것이다.
어느 날 부쩍 자라난 머리카락 길이에 놀란다. 머리카락은 조금조금씩 자라는 게 아니라, 갑자기 쑥 자란다는 말처럼 낯설게 다가온다. 평소에 나이를 의식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때때로 진짜 스스로의 나이가 어색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게 정말 나의 나이인지 다가오지 않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좀 더 어릴 때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나이 들었다는 실감이 아닐까. 어릴 적 만난 친구가 진짜라는 식의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사람을 오래 만났다고 해서 관계가 돈독해진다고 믿지도 않는다. 어린 시절이 더 순수했고 계산이 없고...과연? 어린 나이지만 자기 잇속 잘 챙기고, 계산이 빠른 친구들을 적어도 다섯 명쯤은 겪었다.
결국엔 시간이다.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느껴도 마음껏 시간을 내어줄 여건까지는 되지 않는다. 아무 목적 없이 그저 같이 있는 것이 좋아서 시간을 보내게 되지 못한다. 아무리 잘 아는 친구라고 해도 시간을 그렇게 같이 쓰자고 한다면 그 역시 어색할 것이다. 그래서 선택적인 모습을 보이고 보여줄 수밖에 없게 된다. 아니, 보여주는 것 이상의 모습까지 알게 되면 오히려 실례가 된다. 그렇게 삶에서 하릴없는 시간이 차지할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마음껏 낭비를 할 시간이 사라진다. 그런데 그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시간을 같이 보내봐야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게 될 때가 많다.
가끔 길을 걸을 때 여유가 있으면 헤드폰을 쓴다. 혁오의 노래가 들려온다.
예전으로 돌아가
예전에 산다면
우린 우리 마음만 돌보자
새벽을 컵에 담아
날이 차오르면
두 잔을 맞대보자
너와 내가 결국엔 우리가
버려버렸네요
한창 어린 밤 같던 우리 마음도
늙어버렸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6VY1DDjlD-s
이 곡이 발표된 것은 혁오가 23세 되던 해였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라고 썼던 이상은도 당시 나이 23세였다. 우리가 젊다고 해서 늘 젊다는 기분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단지 나이의 무게감에 눌려서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은 시간의 일이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