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원서를 내고 오던 날의 쓸쓸함을 달래주던 그 노래
빗줄기가 거세어 창문을 닫는다. 발이 묶여 어디도 나가지 못하는 저녁. 라디오를 튼다. 이럴 땐 무조건 라디오다. DJ의 말소리가 조곤조곤 창밖의 빗소리와 함께 리듬을 탄다. 플레이리스트에 귀를 기울이다가 잊고 있던 노래가 들려오면, 하던 일을 멈추게 된다. 익숙한 전주에 눈빛이 반짝인다. Smashing pumpkins의 '1979'다.
그해 가을 오후, 우리는 여의도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IMF 위기가 한창이던 그해. 대학 졸업반이었던 친구와 나는 입사 원서를 내고 나서 집으로 바로 가지도 못한 채 터덜터덜 계속 걷기만 했다. 둘 다 걷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날은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즈음이 그랬다. 그 발걸음은 그 시기 우리의 상태의 상징이었다. 모두가 입사원서를 들고 어디론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래야만 할 거 같아서 오긴 했는데, 정작 몰랐다. 등 떠밀려서 나오긴 했는데,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것도 같은 묘한 기분.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별다른 말없이 그렇게 계속 걷다가 한강공원에서 멈췄다. 둔치 어딘가 강물이 잘 보이는 곳에 우리는 걸터앉았다. 그리 유쾌하지 않을 때, 헛소리라도 하고 애써 수다를 떨 수도 있었지만 둘 다 그러지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제 막 노을이 지려는 하늘. 뜨거운 태양의 붉은빛이 물결 사이에 찰랑대고 있었다. 친구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그리고 한쪽을 나에게 건넸다. 그렇게 하나씩 이어폰을 나누어 낀 채로 강물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흘러나온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Smashing Punpkins의 1979. 우린 둘 다 스매싱 펌킨스를 좋아했다. 심지어 너바나보다도.
서서히 시작하는 드럼 비트에 맞추어 그 유명한 기타 리프가 들려온다. 일렉 기타의 잔잔한 서막이라고 할까. 언제나 이 곡의 인트로는 최고라고 생각해왔다. 그 비트와 리프가 그날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처럼 들렸다. 당시의 얼터너티브 락 곡들은 대개 직설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고, 스매싱 펌킨스의 다른 곡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곡이 주는 유니크함을 따라올 수는 없다. 곡이 진행되는 내내 한 번도 폭발하지는 않지만, 터뜨리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설렘을 밀고 간다. 아련함을 선사하면서.
그렇게 마음이 흐린 날에는 어떤 곡이 위로가 될까. 누군가에겐 나를 대신해서 울부짖는 강렬한 폭풍 같은 곡일 수 있고, 또 라디오헤드처럼 애절하게 흐느끼는 곡일 수 있다. 가사 없이 한없이 우울로 이끌어 바닥을 치게 만드는 그런 곡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의 우리에겐 스매싱 펌킨스의 1979였다. 요란하지 않게 괜찮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은 노래. 끝도 없이 밀려오던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라고 하기보다, 같이 가보자고 하는 것 같은 노래. '한없이 높은 빌딩 숲 사이 삭막한 도심 속에서 서로 높아지려고 하는 게 현실이지. 그 사이 나가떨어지는 날도 있겠지만 그 역시 우리 모습의 일부겠지. 그냥 그런 거야.'
스매싱펌킨스는 그렇게 그날 우리의 곁에, 여의도의 한강 둔치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음악 뒤에도 우리는 몇 곡을 더 들었다. 한강변의 바람을 맞고, 물결이 치는 것을 보고, 어느새 노을이 하늘 가득 번져가는 장면 속에 음악이 있으니, 지금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몰랐지만,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그 모든 일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마크 러팔로가 키에라 나이틀리에게 했던 대사가 그렇다.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따분한 일상의 순간들까지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게 바로 음악이야."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세월은 흘렀고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방송 녹화를 준비하다가 어느 교수님이 IMF 시절 취업을 못해 힘들었단 얘기를 하셨다. 하버드를 졸업한 그분이 그 시기에 힘들었다고 털어놓으시길래 나도 그 시기를 안다고 거들었다."어떻게든 되던 돼요" 내가 말하자, 교수님은 이렇게 받으셨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아, 그런데 어쩐지 조금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졌다. 분명 좋은 뜻으로 한 얘기일 텐데.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내가 살아남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분은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큰 성취를 이루셨으니까 나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다만, '살아남았다'는 단어는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은 아닐까. 난 그런 쪽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보다 난 그냥 이렇게 된 것이 맞다. 목표를 두고 쫒은 것도 아니고 궤적을 쫒다 보니 여기에 도착했다.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웃음으로 답을 드렸다.
나와 친구가 그날 지원했던 곳은 mbc 방송국이었다. 우리는 PD로 지원했지만, 예상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모른다. 나중에 이렇게 작가로 그곳을 드나들면서 그곳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게 될 줄은. 그럴 때 가끔은 하릴없이 강변을 떠돌던 그날을 떠올리곤 한다.
원하는 곳에 취업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때 가서 또 다른 길이 열릴 것이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보이지 않아 괴로운 나날들이었어도 계속 멈추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마주칠 것이다. 그래서 계속 가야 한다. 나와 다른 길을 간 그 교수님도, 녹화 끝에 이렇게 얘기하셨다.
"좋은 날은 꼭 옵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마음이 흐린 날 함께 할 수 있는 음악 한 두 곡 정도는 꼭 있어야 해요.
<Smashing punkins -1979 /라디오 라이브 버전. 편곡된 기타 리프가 아주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UMlcYIemJ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