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시작된다
언젠가 친구들과 걷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친구가 걷는 건 좋아하는데, 혼자는 잘 안 나가게 된다고 하자 다른 친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좀 이상한데? 걷기를 좋아한다는 건 아무 목적 없이 그저 걷기만을 위해서 나가는 거야. " 이 정도면 걷기 예찬론자의 자격이 충분한가.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이 그렇다. 이유가 없다. 좋으면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든 하게 되는 거다.
다만, 그 친구에겐 같이 걸을 누군가가 더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만날 때마다 걷는다. 걷기 코스를 골라서 약속 장소를 정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 <주말엔 숲으로>에서처럼 숲은 아니라도 가보고 싶은 거리를 걷는다. 같이 걸을 친구가 있다는 건 좋은 거다. 하지만 혼자 걷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누군가 걷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반가워진다. 이미 알던 사람 같다.
킨크스(kinks)의 곡 'Celluloid Heros'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할리우드 대로를 걸어내려가면서는 그레타 가르보 옆을 지나가지 마세요.
그녀는 매우 약하고 부러지기 쉬워 보이죠 그게 바로 그녀가 강해지려고 했던 이유입니다'
(Don't step on Greta Garbo as you walk down the Boulevard
She looks so weak and fragile that's why she tried to be so hard -by the Kinks)
영화 밖에서도 그녀는 스타였다. 락밴드 킨크스가 노래한 건 영화 속이 아닌 거리를 '걷는' 그녀였다.
고혹적인 눈매와 신비로운 분위기로 사람을 끄는 고전 할리우드 배우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그가 걷고 있다면 누구라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라고 한다. 왜?
올리비아 랭의 책 <외로운 도시>를 펼쳐 한 장의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본다. 1955년 뉴욕의 4차선 도로 한 복 판에 멈춰 선 그레타 가르보의 모습. 오버사이즈의 코트를 입고 남자 신발을 신고 성큼성큼 걷는다. 그녀는 매일 걸었다. 미술관에서 호텔까지 이어지는 긴 산책. 왕복 10킬로미터 거리의 워싱턴 스트리트까지 걸었다고 하니, 보통 걷기 고수가 아니다. 진정한 고수의 면모는 이렇게 드러난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서점과 식료품점 진열창을 구경하거나 정처 없이 걷고, 어디에 가기 위한 걸음이 아니라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며, 걷기 자체가 이상적인 활동이었다.' -<외로운 도시> 중에서
193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의 스타가 서른여섯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그토록 원했던 일상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자유롭게 걷는 것. 아직도 뉴욕을 산책하는 그녀의 사진을 몰래 찍은 파파라치컷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레타 가르보는 이렇게 말했다.
"흔히 나는 내 앞에 걷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그냥 따라갔다. 걷지 않았더라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아파트에 스물네 시간 내내 있을 수는 없었다. 밖에 나가서 인간들을 바라본다."
그녀에게 걷기는 삶의 방식이었다. 머물지 않고 이동하면서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녀의 삶이었다.
걷다가 마주친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듯한 사람들이 있다.
비틀스가 영국의 문화를 주도하던 1960년대를 다룬 책 <1963 발칙한 혁명> 속의 사진 한 장. 그 주인공은 패션계의 오드리 헵번으로 불렸던 모델 진 쉬림튼(Jin Shrimpton)이다. 모델답게 스타일이 먼저 눈에 띈다. 극도로 심플한 원피스와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 그런데 가장 놀라운 건 맨발로 걷는 동작이다. 시대의 아이콘임을 드러내고도 남는 진 쉬림튼의 멋진 사진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이 사진을 좋아하는 건, 그녀의 걸음에 시대의 공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비에 젖은 런던 거리를 맨발로 다니는 호기심과 생동감이 보인다. 비틀즈, 보브컷, 미니스커트가 태동하던, 그 시대의 청춘들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1963년의 활력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1925년 발표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댈러웨이 부인은 말한다.
"난 런던의 거리를 걷는 게 좋아요."
소설에서 댈러웨이 부인이 걷는 거리는 시간과 공간의 통로이다. 길을 걷고, 신호등 앞에 멈추고, 공원에 나가고, 벤치에 앉는 사이 과거와 현재가 오간다. 댈러웨이 부인이 태어날 수 있었던 건 울프의 산책길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울프의 일기를 보면 그 역시 걷기 고수였음이 드러난다.
"런던은 쉴 새 없이 나를 매혹하고 자극하고 내게 극을 보여주고 이야기와 시를 들려준다. 두 다리로 부지런히 거리를 누비는 수고를 감내하면 아무것도 걸리적거릴 것 없다. 혼자 런던을 걷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큰 휴식이다." -1928년 5월 31일, 울프의 일기 중에서
걷는다는 것은 바깥의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고, 시대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결국 나와 세계 사이의 소통에 이르는 길이다. 이 모든 것들은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시간을 붙들 수는 없지만, 지금 살아가는 그 시간을 걸어갈 수는 있다. 그 걸음 속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
슬슬 거리의 나뭇잎들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계절이 온다. 바깥으로 나가서 걸어야겠다. 들뜬 걸음으로 런던을 오가던 <댈러웨이 부인>의 클라리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