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 모퉁이의 기록

by 베리티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다.

영화 <스모크>는 브루클린의 어느 길모퉁이 담배가게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가게 주인과 손님이었던 오기와 폴. 거스름돈이나 오가던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찾아온다. 오기가 폴에게 사진첩을 내민 것이다. 자신이 찍은 것이라며 사진을 봐달라는 오기. 느닷없는 제안도 그렇지만 그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은 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찍은 수 십 장의 사진들. 계속되는 똑같은 풍경의 반복. 폴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할 말을 찾고 있는 사이, 오기가 말한다.


"너무 빨리 보고 있어. 천천히 봐야 이해가 된다고."


그 사진들은 오기가 13년 동안 매일 가게 앞으로 나가 같은 거리의 풍경을 담은 것이다. 휴가도 못 갈 정도로 지나치게 규칙적으로 찍어온 사진.

오기의 말을 듣고 폴이 천천히 보게 되었을 때 무언가가 달라진다. 천천히 보면 다르다. 계절도, 사람도, 빛의 각도도. 같은 시간에 담긴 다른 순간들. 사진들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될 무렵 폴은 뜻밖의 발견을 한다.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가 그 거리를 거닐고 있다. 놀라운 우연에 감격할 무렵 폴은 알게 된다.


"나는 깨달았다. 오기는 시간을,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찍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세상의 어느 작은 한 모퉁이에 자신을 심고 자신이 선택한 자신만의 공간을 지킴으로써 그 모퉁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기다리던 시간에 이르자, 오기는 중얼거린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시간은 하찮은 듯한 걸음걸이로 기어간다”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한 구절이 오기의 작업 속에, 두 사람의 일상에서 살아나는 순간이다. 왜 인지도 모르면서 이 장면을 오랫동안 담아두었다.


위대한 일들은 특별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놀랄만한 일들을 쫓아다니던 시간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보다는 매일의 반복을 좀 더 따르게 되었다.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지만 하찮아 보이는 시간의 걸음 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 그것은 발견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준비가 되어있을까.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들 사이에 깃들어있는 차이의 발견.

그런 날들의 기록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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