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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un 10. 2024

오후 5시의 태양 아래 그림은 변한다

한 사람의 무엇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를 안다고 말하게 될까.


부다페스트의 갤러리는 주말이면 제법 손님들이 북적였고, 알바생 수지가 창고에서 먼지를 털어 구조한 작품들에 관심도 높아졌다. 오후 5시의 그 작품 <거리의 악사들> 앞은 마자르의 지정석 같았다. 수지가 메일에서 전했던 것처럼 마자르는 그림을 내 것으로 만드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학생인 줄 알았던 마자르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 옅은 바다색의 셔츠 차림에 약간 흐트러진 짧은 머리가 자연스러운 그는 일이 끝나면 이 갤러리에 들러 그림을 보는 것이 일과였다. 

칸트나 몽테뉴처럼 규칙적인 루틴의 신봉자였는지 평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나타나 새로 들어온 작품을 둘러보다가 나침반처럼 그 작품 앞에서 멈추었다. 친구처럼 편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림에 대해 짧은 얘기들을 주고 받다보니 손님과 알바생보다는 가까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림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 이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내가 아는 사람을 닮았어요." 마주르의 눈동자에 작은 파문이 인다.

"아는 사람요?" 

"이 골목 끝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작은 광장이 나오는데, 일요일이면 분수 옆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곤 했죠."

"그렇다면...혹시, 이 작품의 화가도 이 근처에 사는 거 아녜요?" 갤러리 주변을 자주 산책하는 내게도 호기심이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작가에 대한 정보가 있어요? 호기심의 파장이 이 공간에 번진다. 


수지는 갤러리 한쪽의 책상으로 가서 작품 정보를 열람했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춘다. 

"아, 주소는 없어요. 이름은...초머라고 나오는데, 제작년도는 5년 전. 그리 오래되진 않았어요." 

마주르의 시선이 다시 그림으로 향한다. 

"유명 화가는 아닌 것 같고,..그런데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이 작품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그 바이올린 연주자는 얼핏 남자같았지만 남장한 여자였거든요."

"남장 여자요?"


수지는 그림 가까이 다가가서 그 바이올린 연주자를 다시 본다. 신사모를 쓴 수트 차림이었지만 악단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가는 선으로 그려졌고 알듯말듯 미소가 표현된 것도 같았다. 

 

매일 달라져가는 오후 5시의 태양 아래 지속적인 마자르의 방문은 그림의 어떤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양자역학처럼 마자르의 개입으로 이전과 다른 작품이 되었다. 인물이 살아났다. 작품과 수지의 관계가 달라졌다. 마자르가 이 그림이 주인이 되어가면서 보통의 관람객과 다른 차원을 만든 것일까. 

그것은 작품에 보낸 시간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것이 선물일지 일종의 집착이나 망상 같은 것일지 아직은 알 없다. 그렇지만 어쩐지 따라가보고 싶어졌다.


수지는 이제 마자르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화가와 바이올린 연주자도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안다고 느끼는 순간 모르는 것을 잊기 쉽다. 우리가 모르는 차원은 존재하고 어디에나 바람은 분다. 그 방향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음 날, 수지와 마자르는 이전에 없던 오후 5시를 맞게 된다. 

그 작품 <거리의 악사들>이 갤러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Vampire Weekend -Step

https://www.youtube.com/watch?v=_mDxcDjg9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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