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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ul 08. 2024

달빛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모차르트 소나타의 선율이 달빛 아래 춤을 춘다


이디스길에서 만났던 소년, 지민이를 불러서 레슨을 해주곤 했다. 울퉁불퉁한 시간이 지나가고, 터널 끝에 빛자락이 보인다.지민이의 피아노는 내달리던 질주를 벗어나 숨을 찾아가고 있었다. 자신만의 템포찾아가는 누군가가 앞에 있다는 것은 중요했다.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그것은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들렸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너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 파동이 멀리 퍼진다. 일상의 사물들이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어둑해진 저녁, 나는 레모네이드가 들어있는 유리병 2개와 투박한 빵을 샀다. 샌들 아래로 바짝 달구어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닿는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이 길 어딘가에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뛰놀던 함성이 묻어있는 것 같다. 도로변의 작은 카페의 주인이 차양을 내리고 있다. 가게들의 전등이 하나둘 꺼진다. 달빛에 그림자는 선명해진다. 시계 바늘은 느리게 움직인다. 인적이 드물어진 거리, 저 멀리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있는 이디스가 보인다.    


나는 이디스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대신, 레모네이드병을 건넸다. 이디스의 머리카락이 여름 바람에 날렸다. 그 눈빛이 청량한 파도처럼 일렁인다. 달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머리 위에 있는 듯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디스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다.


"이제 뭐가 좀 보이는 거야?" 

이디스는 고개를 저었다. "달라진 건 없는데...보이는 게 꼭 다는 아니라는 거는 알았지."

"그럼 뭐가 중요한데?"

"달이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닌데...구름 뒤에 있는 거잖아. 그런데, 안 보이면 없다고 생각했지." 이디스는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다시 칠 수 있을 것 같아, 피아노."

"그때는 왜...칠 수가 없었을까? 그때 이디스가 들었던 소리는 뭐야?"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한다는 소리."

"...그게 나빠?"


"아니. 그것만 들으려고 했던 거지, 나에게 들리는 소리에는 귀를 막고. 그래서 내가 치는 소리를 못 들은 거야. 지민이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알게 됐어. 내 소리처럼 들으니까, 들려." 이디스는 슬쩍 웃었다. 

"프로듀서로의 일을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운도 좋았지, 그런다고 흥행하는 아닌데.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이제 흘려보내야지....그리고,"

갑자기 이디스가 일어났다.

"우리, 춤 추자. 이렇게 달빛이 있을 때 춤을 춰서 온 몸에 담고, 달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그 기운으로 잊히지 않게 하자!"

"여기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행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렴 어떤가. 발은 가볍다. 이디스는 음악을 고르고 핸드폰의 볼륨을 살짝 올렸다. 


달빛의 스포트라이트, 궁궐의 돌담은 무대 배경이 된다. 밤바람 사이 가볍게 흔들리는 나뭇 가지 아래 리듬을 맞추어보았다. 태어날 부터 그 리듬을 알았던 것처럼 스텝을 밟고 머리를 움직인다. 어깨가 들썩인다. 이디스와 나는 한참을 춤을 추었다. 츔추지 않는 삶은 어딘가 비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온몸이 달빛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라면서.


음악이 끝나고, 우리가 벤치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지나가는 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 오늘 그 소식 들었어? 마고 노래...? 그거 가짜래"

"그게 무슨 얘기야?"

그날 나는 수지, 그리고 이디스와 연결되어있는 팝스타 마고에 대해 보이지 않는 진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Tracy Chapman - Give me one reason

https://www.youtube.com/watch?v=ItBbngybK3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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