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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ul 11. 2024

파도가 찾아올 때는

거대한 파도가 나를 향해 내리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팝스타 마고의 스타일은 자유로운 서퍼(surfer)의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우뚝 솟은 산을 향해 스피드를 내어 질주하는 삶은 이 세대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마고가 시상식에서 상을 탈 때면 'I'm super chill!'을 외치며 트로피를 흔들곤 했다. 어디인지도 모를 정상을 향해 꾸역꾸역 나아가는 열정보다는 다가오는 파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태도를 노래했고, 그의 대표곡 '덕 앤 다이브(duck & dive)'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덕 앤 다이브'는 서핑 용어로 파도가 칠 때 파도 아래로 잠겨 들어서 파도를 흘려보내는 기술을 말한다. 그러니까 파도가 칠 때는 오히려 그 파도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물에 잠겨있다가 다시 물밖으로 나오는 것.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한 기술이며, 자신을 내던질 줄 알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의 노래를 직접 쓰고 프로듀싱까지 해서 스타덤에 오른 마고는 이렇게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취향과 안목 하나하나가 화제를 몰고 왔고, 워너비들은 늘어만 갔다. 최근 마고의 피드는 부다페스트의 무명 화가 초머가 그린 그림 <거리의 악사들>이 단연 이슈였고, 다가올 공연에 그림의 이미지들을 활용하는 큰 계획이 진행중이었다.


나는 마고의 노래가 가짜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아서 신문기사를 찾아보았다. 마고의 자유분방한 기자회견 태도에 평소 불만을 품었던 어느 기자가 이 사실을 폭로했다.


가짜라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첫째는, 마고 작사작곡으로 알려진 노래들은 다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가 쓴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마고의 소속사의 철저한 기획이며 마케팅이었다. 마고가 숨기려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대로 따른 것은 사실이니 그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둘째는, 마고가 서핑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펑키한 서퍼 패션으로 사랑받았지만, 실은 파도를 타 본 적도 없다. 그동안 수많은 서퍼들과 함께 했던 소셜미디어의 일상은 전부 가짜였다. 이미지메이킹에 지나지 않았다.

이 스토리에는 또 하나의 진실이 있는데, 마고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는 바로 이디스였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유령가수처럼 이디스는 마고의 유령 작곡가였던 셈이다. 나는 기사에 있는 이디스의 이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팬덤은 발칵 뒤집혔지만, 투어 일정은 변함없었다. 여기에서 월드 투어를 취소한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마고는 자신에게 닥친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덕 앤 다이브'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디스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기자들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부다페스트의 광장에도 어제와 다른 바람이 분다. 수지와 마자르가 다시 파란 대문집을 찾아갔을 때 전혀 다른 사람이 문을 열어주어서 깜짝 놀랐다. 초머는 그 집을 떠나 시골로 이사했다. 초머 역시 넉넉한 여건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림 하나 제대로 팔지 못한 화가에게 화구를 사는 것조차 부담으로 다가왔고, 그는 집을 파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배어있는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계속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거리의 악사들>이 자신의 그림이었다는 걸 알렸더라면..."

수지와 마자르는 파란 대문집이 보이는 동네 앞 카페에 앉아있다. 수지의 시선은 파란 대문집에 계속 머물고 있다.

"이사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초머가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유명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건지."

"초머 인터뷰집 발간을 서둘러야겠어요. 아마도..." 마자르는 잠시 생각하다 다시 말을 이엇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죠."

"뭘요?"

"그걸 물어보고 싶어요. 다음에 초머를 만난다면. 왜 쉬운 길을 안 가는지를."

"마고가 이렇게 이슈가 되는 마당에 <거리의 악사들> 그림은 또 어떻게 되는 건지? 파란만장하네요."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죠. 그림까지 가짜인 건 아니니까."


수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난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한국의 갤러리 몇 군데에 메일을 보냈는데, 일해보자는 곳이 있어요. 아직 인턴이지만, 시작해보고 싶어요."

마자르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린다.

"여기서 해야 될 일이 있지 않을까요."

"부다페스트 와서 그동안 많이 배웠죠, 이런 여행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흐릿했던 시야가 조금 또렷해진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마자르는 커피를 길게 마시고 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고맙고... 마자르를 만나지 않았으면... 여행이 어땠을지 그려지지가 않네요."

마자르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앞으로는 그려지나요?"

목소리톤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는 수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마자르의 눈동자 속에 수지가 비친다. 두 사람이 보낸 부다페스트의 시간이 눈동자 속에 아른거린다.


비행기 창문 아래로 양탄자처럼 깔려있는 구름바다가 보인다. 날개 끝이 바람에 살짝 움직이고 있다. 이제 3시간 후면 인천에 도착할 것이다.

마자르의 마지막 한 마디가 좀처럼 수지의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가 그 갤러리에 매일 갔던 건... 그 그림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The Beach Boys - God only knows

https://www.youtube.com/watch?v=NADx3-qRx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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