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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ul 15. 2024

그냥 바람에 흩어지게 해 줘

마고는 올이 풀려 삐져나온 스웨터를 즐겨 입곤 했다.


남다름과 자유분방함의 상징처럼 보이던 그 스타일이 나사 풀린 로봇처럼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이 있다. 한창 진행되는 동안에는 모르다가, 시간이 흘러서야 물음표로 이어지던 의문들이 종지부를 찍게 된다. 19세의 틴에이저 팝스타가 작사 작곡을 했다는데, 인터뷰에서 보여주었던 그 미숙한 태도들은 노래로 쓰인 시적인 가사들과 이상할 정도로 동떨어진 것이었다. 단순히 아직 어려서라고 하기엔 미심쩍었지만, 어쨌든 곡은 좋았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미스터리는 작곡자와 가수가 다른 사람이라고 보면 깔끔해지는 문제였다. 하지만, 대중들이 주목한 것은 마고가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마고는 서핑할 줄 모른대!"


서퍼들의 테마곡으로, 혹은 틴에이저들의 송가로 파티에 울려 퍼지던 마고의 노래는 서랍 속에 구겨 넣은 잡동사니들처럼 처박혀서 언제 빛을 볼지 모르는 처지가 되었다. 

여름은 차게 식었다. 그때 불던 바람은 더 이상 여기에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노래들을 만들었던 이디스의 존재도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마고는 노래 연습만큼은 목에서 피냄새가 날 때까지 하는 애였어."

기사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고 나서야 나는 이디스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한강공원에 나란히 앉아서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디스의 말대로 마고는 즐기면서 여유롭게 노래하는 팝스타의 이미지 뒤에서, 호수의 백조처럼 물밑으로는 치열한 자맥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마고는 괜찮은 건가? 이 폭풍 같은 파도를 잘 통과하고 있을까?"

"전화 안 받다가 어제 처음 통화했어. 말로는 괜찮다는데...그게 되겠어? 아무도 안 만나고 혼자만 있는 거 같아."

이디스는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했다.

"그 얘길 자꾸 하기도 그래서... 딴 얘기로 돌렸지. <거리의 악사들>그 그림을 어떻게 구하게 된 건지."

"뭐래? 누가 훔쳐서 그걸 마고한테 팔았을까?"

"마고는 모나코의 캐롤과 친구였어. 캐롤이 그 그림에 대해 마고한테 얘기한 걸 기억하고 케롤이 비행기 사고 당한 뉴스를 듣고 헝가리 갤러리를 다 뒤져서 그걸 샀대. 마고 말로는 갤러리 주인한테 직접 샀다던데?"

"갤러리 주인? 그럼 그는 왜 도난당했다고 거짓말까지 한 거지?"

나는 허술한 추리력이 들통나는 거 같아 머쓱해졌다.

"마고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대. 모나코의 캐롤 가족들이 그림의 출처를 알면 사겠다고 할 거고 복잡해질까 봐 그랬대."  


그리고 보니, 부다페스트의 그 갤러리 주인이 그림 도난 당하고 돌변했다는 수지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평생 만져보지 못한 액수의 그림 값을 받고 나름 혼신의 연기를 다 했던 것이다. 알바생 수지와  손님 마자르를 쫓아내는 연기까지도 서슴지 않을 만큼 돈은 사람을 바꾸는 것인가.


"이디스는 서운하지 않아?" 이쯤에서 짚고 갈 것이 있다.

"뭐가?"

"유명해질 수 있었잖아. 사실은 마고의 히트곡들은 내가 쓴 거야, 할 수 있잖아."

"지금이라도 데뷔할까?" 이디스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사실 요즘 좀 곡이 떠오르더라고... 이 상황을 보니."

"그냥 두면 날아가지! 올 때 잡아야지. " 내가 부추겼다.

이디스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크게 웃었다. 잔잔한 물결 위로 웃음소리가 번져간다. 이디스의 물처럼 깊은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린다.

"...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냥 바람에 흩어지게 내버려 두자."


그러다, 이디스가 끝이 길게 늘어진 이어폰을 내민다.

"그래도 곡은? 이미 썼지." 

우리는 여고생처럼 한쪽씩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이디스의 데모를 들었다. 이디스가 마고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그저 바람에 흩어지게 내버려두라고.


수지에게 들려줄 이야기타래는 점점 커져간다. 

이제 마고의 공연만이 남아있다.



Brandi Carlile - The Joke

https://www.youtube.com/watch?v=2adTSxUqnc4


You're feeling nervous, aren't you, boy?
With your quiet voice and impeccable style
Don't ever let them steal your joy
And your gentle ways, to keep 'em from running wild

두려워하고 있니

조용한 목소리와 깔끔한 스타일로

그들이 너의 행복을 빼앗지 못하게 해

너만의 다정한 방식으로 그들이 제멋대로 굴지 않도록 해


They can kick dirt in your face
Dress you down, and tell you that your place
Is in the middle, when they hate the way you shine

그들은 네 얼굴에 흙을 찰 수 있어

그들이 네가 빛나는 방식을 싫어할 때 

잘 차려입고 네가 있는 곳이 맞다고 말해줘


I see you tugging on your shirt
Trying to hide inside of it and hide how much it hurts

셔츠를 당겨 그 안에 숨으려 하고 얼마나 많이 상처받았는지를 알아


Let 'em laugh while they can

Let 'em spin, let 'em scatter in the wind
I have been to the movies, I've seen how it ends
And the joke's on them

그들이 웃게 내버려 두자

돌아가게 놔둬 바람처럼 흩어지게 하자

그런 영화들을 본 적이 있는데, 결말이 어떤지를 알아

웃음거리가 된 건 그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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