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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ul 18. 2024

너만의 집을 세울 때까지

마고는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알고 있었다. 티켓이 팔리지 않아 투어가 줄줄이 취소되었다. 한국의 공연도 취소되었을 때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도 없었다. 무너져가는 자신을 그냥 둘 수만은 없었다.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인지는 몰랐지만, 지금 있는 자리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동안 투어를 곧잘 다니곤 했지만 매니저도 스탭도 없이 혼자 떠난 적은 없었다. 추락해 버린 팝스타를 보는 시선이라는 것이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던진 계란도 맞았다. 가는 곳마다 터지는 웃음들이 모두 자신을 향한 조롱처럼 들렸다.

화장실에서 혼자 옷에 묻은 얼룩을 빨아내며 눈물이 났지만, 왕창 울고 나니 오히려 시원해졌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 치고는 미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노래만 히트하면 다른 것들은 사소해졌다. 결과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은 점점 무감각해져 갔다. 비로소, 사실이 밝혀진 것이 지금의 마고에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마고가 서울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거리의 악사들> 그림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이디스에게 수지의 이야기를 듣고, 수지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갤러리에 기증했다. 수지는 이 모든 일들이 얼떨떨했지만, 마자르에게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알렸다. 마자르는 초머의 인터뷰집이 일주일 후에 출간된다고 했다. <거리의 악사들>에 담긴 이야기는 이제 모두에게 알려질 것이다. 마자르는 인터뷰집이 출간 되는 날, 수지의 갤러리에서 북토크를 하기로 했다. 그의 첫 한국 방문이다.


이디스는 마고의 기분을 알고 있다. 프로듀서를 관두고 자신 안의 허물어진 무언가를 직시하고 싶었을 때, 무작정 서울에 돌아와 찾아낸 어느 재개발 단지의 폐허에서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떠올렸다.

부서진 시멘트 사이 뼈대가 드러난 집들, 오갈 데 없이 나뒹구는 부엌의 냄비와 솥, 모서리가 닳아버린 테이블, 날개가 조각난 선풍기 옆의 꽃무늬가 그려진 낡은 자가드 소파. 그곳에서 이디스는 자신의 내면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디스는 마고의 추락에 대한 책임의 일부가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동안은 집안의 빚을 갚는다는 목표를 향해 질주했지만, 그 질주가 누군가를 밟고 가는 일인지는 몰랐다. 마고의 페르소나에는 이디스가 들어있다. 회사에서 거짓 기획을 했을 때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무언의 동조자였던 셈이다. 그가 자신의 피아노 소리를 견디지 못하게 되었던 것은 이런 진실에 대한 감각과 관련이 있다. 

어떤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How you gonna win, when you ain't right within?

(네가 옳지 않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 사이 잡초도 무성하게 돋아나고, 덩굴들이 옷장의 문짝을 휘감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완전 철거 날짜가 적혀있었다. 이제 일주일 후면, 이 모든 풍경들도 갈아엎고 사라진다. 

이디스가 이곳을 다시 가자고 했을 때,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 낡은 자가드 소파에 함께 앉아서 아무 말도 없이 바람소리를 듣고 있었다. 

한참을 있다 보니 멀리서 다가오는 흐릿한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디스를 보았다. 이디스가 웃고 있었다. 기타를 맨 마고였다.


마고는 일주일이면 사라질 그 폐허에서 노래를 불렀다. 

나와 이디스는 소파를 마고에게 내주고, 맞은편 바닥에 앉았다. 놀던 아이들 세 명이 달려와 앉았다.

낡은 소파에 앉아 통기타를 든 마고의 노래는 나와 이디스, 아이들 이렇게 다섯 명의 관객에게 먼저 찾아왔다.

이 노래는 진짜였다. 마고는 혼자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골목 너머 행인들은 이곳에서 새어나가는 노랫소리를 들었을까.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집을 세우기 위해 봐야 할 것이 있었다. 상처 나고 보잘것없고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지만,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서 허물어야 할 과거를 외면할 수는 없다. 도시에서 버려진 폐허는 그래서 아늑했다. 그곳에는 아직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들려주지 못한 노래가 잠들어있다. 누군가 이를 알아채고 그것들을 깨워준다면 폐허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 서성이고 있다.


노래는 바람처럼 멀어져 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낯선 이가 된다.


Lauryn hill - Just want you around 

 https://www.youtube.com/watch?v=pNH5xrfB_sI&list=PLBxu7MPeD3MwcDAHuCz8fU09F4YAJTVhM&index=13


*그동안 이 연재에 들러주시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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