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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거리를 좋아했던 이유

1960년대 런던과 1970년대 뉴욕의 젊은이들

by 베리티 Mar 06. 2025

"돈이 없어도 런던에서 신나게 살 수 있었다."


디자이너 폴스미스의 책을 뒤적이다가 멈춘다. 누가 요즘 이렇게 말한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살인적인 물가에 무뎌지며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최근 런던에 머물고 있는 친구의 메시지다. 인플레이션이야 세계적 흐름이라 해도, 유독 비싼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대도시들에서 버티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처럼 아득하지만 폴스미스가 20대이던 1960년대의 런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스무 살, 런던에서의 삶은 흥미로웠다. 당시 그곳엔 에너지가 충만했다. 우리는 우리 세대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1960년대의 런던을 휩쓸던 그 에너지가 몰고 온 파장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시기를 언제부턴가 '스윙잉 런던 (Swinging London)'이라 부른다. 그저 젊은 활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오기 좋은 시절이었던 것이다. 전후 역대급 인구 폭발을 타고 베이비붐 세대들이 세상을 재건해 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도전장을 내밀던 때였다. 스스로 월급을 받아 TV, 냉장고, 자동차, 옷을 샀다.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이 정치, 과학기술, 문화 전반 어우러져 변화가 갱신되었다. 그 젊은이들은 상류사회의 누군가가 자신들을 초대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스스로가 뛰어들 무대에 직접 초대하는 새로운 실력주의가 등장했다. 이미 익숙해진 '세상을 주도하는 젊은이들의 역사'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1963 발칙한 혁명>이라는 책에서는 당대의 인물들이 시대를 증언한다. 


"전 그해 머릿속에서 제가 잘 해내고 싶은 것, 다른 사람이 듣고 싶어 할 법한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아요. 그냥 제가 미쳤구나 싶었어요. 그 소리가 들렸거든요. (...) 뭔가 다른 일들이 일어나야만 했어요.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그냥 멋지게 변할 수는 없는 거죠. 이상한 기운, 우리는 이상한 소용돌이에 빠져있었어요."

-롤링스톤즈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


"그 시절의 일부였다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에요. '나는 엄청 성공했어'라는 자신감과는 굉장히 다른, 뭐랄까 특별하다는 기분이랄까요. 정신이 미친놈처럼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그저 다음에 뭐가 올건지 생각하면서 계속 열심히 할 뿐이었어요." 

- 디자이너 비달 사순


스윙잉 런던을 몰고 온 그 시대의 바람은 그저 성공할 것만 같은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다. 죽도록 이걸 해내서 이루겠다는 야망보다는 지금 이것을 해내고 나면 뭔지는 몰라도 다음에 근사한 것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가까웠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거나 뼈를 깎는 노력 같은 기성세대의의 가치관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당연히 야망 따위는 없었고, 모두가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돈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어요. 그냥 집세를 내고 신발과 옷을 살 돈만 필요했죠. 오직 그런 것들만 중요했어요. 토요일에 킹스로드를 배회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일이 없었어요." 

-모델 패티 보이드


그저 거리를 쏘다니는 것만으로도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사람들의 패션과 새로 문 열고 닫는 가게들, 울퉁불퉁한 도로 위 미세한 바람과 계절마다 다른 가로수들까지도 거리의 표정으로 기억된다. 젊은이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언가를 얻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어쩌면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에는 일종의 그 도시의 정체성이 깃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밴드 Elbow의 'Newyork Morning'이라는 곡에는 하나의 회고담이 있다. 이제는 티셔츠를 즐겨 입는 어느 노부부가 1970년대의 뉴욕을 돌아본다. 각종 수집품과 바이닐 가득한 그들의 집을 나서서 드라이브를 하며 그 시절 쏘다니던 거리를 떠올린다. 1975년 뉴욕에 도착한 이후, 그들이 거리에서 처음 만났던 사람들과 그곳을 사랑하게 만든 모든 것들을 이야기한다. 

뉴욕 경찰에 대한 평가는 뉴욕의 첫밤을 어디에서 보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로 시작된 이야기들은 부부의 만남이 있던 그리니치 빌리지 거리를 떠돈다. 같은 레코드 컬렉션을 가졌고, CBGB 클럽에서 첫 데이트를 했던 그때. 뮤지션들이 어떻게 창작을 하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 자신들이 돈을 쓰는 방식이었다고 고백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 거리에 머물며 보냈었나에 대해 말하는 그들의 눈빛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qnIbueM5fE


세상을 놀라게 하는 변화를 주도하는 도시들에는 그렇게 추억으로 남을 거리가 있다. 도시계획이나 정비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것들.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옛것에 대한 존중을 보일 수 있는 태도는 거리의 구석구석을 채운다. 런던이나 뉴욕 같은 세계적인 도시가 아니더라도 숨겨진 거리의 이야기들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세상과 만나기를 기대한다. 또 앞으로도 새롭게 쓰이길 바란다. 역사상 처음으로 젊은이들이 세상의 변화를 주도했던 1960년대의 런던. <1963 발칙한 혁명>은 이렇게 요약했다. 

'그렇게 청춘들은 자신의 역사를 가지기 시작했다.'


폴스미스는 자신의 디자인철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폴스미스 옷은 아주 잘 팔린다. 지나치게 비싸지도 않지만, 절대로 싼 편도 아니다. 우리 컬렉션은 엘리트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 고객들은 본인들 눈에 보이는 그 옷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우리 옷을 구매한다.'

이런 취향은 어쩌면 '스윙잉런던'을 지나면서, 런던의 그 거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든 것은 아닐까 싶다. 80세 노인에게도 18세 학생에게도 팔 수 있는 디자인. 엘리트 미디어가 선호하는 방향으로는 맞출 수도 없고 그렇게 한다 해도 사람들은 믿지도 않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얼마 전 우연히 마음에 들어서 고른 빈티지 안경테가 알고 보니 폴스미스의 디자인이었다. 나 역시 그의 말처럼 그저 그 안경이 마음에 들어서 그걸 집어 들었을 뿐이다. 그의 디자인 철학이 나도 모르는 사이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다. 오늘은 그 안경을 쓰고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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