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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친구와 20세기의 작은 순간들

허클베리 프렌드에 대하여

by 베리티

"요즘 아이들에게 동네친구가 있을까요?"


방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들리는 목소리. DJ가 던진 질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라디오를 듣기는 할까. 동네친구?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본 것이 언제였을까.

해 질 녘 노을 아래서 왁자하게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스쳐간다. 의식한 적은 없었지만 무언가가 제 자리에 있다는 안도감과 다르지 않았다. 아련히 멀어져 갈 때의 아득함은 담요처럼 포근하고 보드라웠다.

동네친구가 없는 것이 아이들 탓만은 아닐 테니 좀 씁쓸해진다. 같은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라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과 같이 놀 일이 있을까. 꼭 같이 놀아야 친구냐고 묻는다면, 바로 답할 수는 없지만 같이 놀지도 않는데 그 관계를 친구라고 할 수는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일을 같이 한다고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찮고 별 것 아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 그 관계가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렇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은 어렸을 때 좀 많이 놀아본 사람들이 좋다고 했다. 어떤 사람에게서 놀 줄 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또 하나의 문을 여는 것 같다.


그 디제이가 그 얘기를 꺼낸 것은 지금 알고 있는 음악들은 동네친구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놀다가 알게 된 형, 혹은 친구가 이런 질문을 꺼내게 되면 이제 하나의 문 앞에 도착한 것이다.

"너, 그 음악 들어봤어?"

음악에 다른 것들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식으로 세계가 태어난다.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찾아올 때가 많다. 오히려 기대를 하고, 목표를 가지고 다가가게 되면 실망할 일이 늘어난다. 때때로 좋아하는 유명인을 만날 일이 있을 때 망설여지는 이유가 있다.


영화감독 짐 자무시가 자란 뉴욕주 애크런의 동네친구들의 관심사는 주로 로큰롤과 자동차였다. 그러다가, 뉴욕 시티의 이스트 빌리지로 오면서 새로운 문을 발견한다. 60~70년대의 뉴욕으로 상징되는 그 동네에서 그는 친구를 만나 작업의 길로 향한다. 그들이 만난 것은 매일 밤 공연이 열리던 클럽 CBGB's였다.


"크리스 파커는 거리에서 만난 친구예요.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열네 살이었는데, 당시에 우린 거의 매일 밤 CBGB's에 가곤 했어요. 70년대 후반이었죠... 그는 CBGB's의 소유주인 필리 크리스털과 그 무렵 아는 사이였어요. 크리스는 그럭저럭 안으로 들어가서는, 제가 들어갈 수 있게 뮤지션들이 장비를 옮길 때 사용하는 뒷문을 열어주었어요. 우린 입장료를 낼 돈이 없었거든요. 매일 밤 돈을 낼 능력은 안 됐죠."


주머니 사정을 알고 몰래 들어가게 해주는 친구. 우리는 알고 있다. 친구의 결속력은 이럴 때 가장 강력해진다는 것을. 둘 만의 어떤 비밀 같은 사건으로 끈끈해진다.

그 시절의 이스트 빌리지 사람들이라면, 뮤지션 패티 스미스를 빼놓을 수가 없다. 어느 바에 모여 수다를 한창 떨고 있을 때였다. '마법'에 대해 붕 떠있는 몽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전사처럼 나타난 친구 해리가 등장하여 망치로 깨부수는 멘트를 날린다.


"너네 삼류 마법사들 중 한라도 지금 당장 돈을 만들어내 술값을 낼 수 있느냔 말이야."

그렇다. 마법 중에 최고는 돈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아닌가. 그제야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제정신의 세계인 현실로 끌어내릴' 기사, 페기가 있어야 했다.


'난 정확하게 페기가 뭘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일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중 정규직 노동자는 페기와 나뿐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페기는 까만 피부에 눈동자가 까맣고 꽉 묶은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친절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유쾌한 사람으로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정신을 차리게 해 줄 친구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가까워진 네 명의 친구들. 하지만 술값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을 우정을 지탱해 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 넷은 모이면 엄청나게 수다를 떨었는데 서로 자기 얘기하느라 바쁘고, 반박하고 논쟁하며 의견도 안 맞고 싸우는 듯 보여도 넷 다 서로를 좋아하고 이 우정을 소중히 생각했다.'


간단한 말처럼 들려도 막상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오랜 우정도 어느 한순간의 어긋남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흔한데, 그럼에도 그 친구들은 서로를 좋아했다. 이런 존중은 일을 하면서도 경험할 수 있는데,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하는지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짐 자무시가 선배 닉(니콜라스 레이)의 조교로 일할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전 당시에 제 첫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다른 버전의 시나리오를 닉에게 보여줬는데, 그때마다 저에게 그러는 거예요. 영화에 액션을 좀 더 넣으라고요. 하지만 저는 닉이 그 얘기를 할 때마다 집으로 돌아가서 시나리오에 액션을 좀 더 뺐어요. 시나리오를 좀 더 수종적으로 만들면서 말이에요."


도움말을 주었는데,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어떨까. 그들은 서로를 인정 못하고 깨졌을까. 나이가 한참 차이나는 선배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다. 사실, 일을 할 때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닉은 의도를 알아차렸다. 후배는 선배를 모방하고 싶지 않았다. 남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만 해서는 자신의 것을 지켜갈 수 없다. 한 사람의 태도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그들은 그래서 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중에 닉은 짐에게 영화를 같이 작업하자고 부탁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햅번이 창가에 앉아 기타를 튕기는 그 장면은 언제나 우리에게 친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노래에 '허클베리 프렌드'라는 단어에서 한참을 머물게 된다.


"We're after the same rainbow's end...

Waitin' 'round the bend...

My Huckleberry Friend, Moon River, and me."


물결을 따라 한참을 흘러도 지치지 않을 모험을 나눌 수 있는 허클베리 프렌드의 추억이 남아있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uirBWk-qd9A



*참고 자료

<짐 자무쉬>, 루드비그 헤르츠베리

<저스트 키즈>, 패티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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