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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 돈을 손에 넣죠

야심 없기로 유명한 그의 말에 대하여

by 베리티

마룻바닥에 그대로 앉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에 안락하고 푹신한 자리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재지 않고 그대로 앉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주는 곳은 흔하지 않다. 소탈하고 미니멀한 공간을 즐기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틀 이탈리아 지역과 바우어리 거리가 만나는 부근의 어느 두드러지게 활기 없어 보이는 한 건물의 7층. 그곳에 그의 집이 있다.


'그는 여느 교외 주택가의 회사원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마룻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우편물을 읽는다. 그에겐 즐겨 찾는 바가 하나 있는데, 예술가들이나 노동자, 어린 친구들이 단골이다. 바닥은 기울어 있고, 벽에는 막 전성기에 집어들 무렵의 프랭크 시나트라의 커다란 사진이 붙어있다. 낯선 손님이 쉽사리 발을 들여놓을 분위기가 아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소도시의 아파트에 터를 잡고, 집에 돌아오면 마룻바닥에 앉아 우편물을 읽으며 종종 즐겨 찾는 바를 찾는 일상. 그 사진을 요즘 소셜미디어에 올린다면 '좋아요'를 받을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상상조차 쓸데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그 사진을 공개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관심을 구걸하지 않았어도 이미 그의 영화를 보러 사람들은 극장을 찾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그의 영화에 보이는 그 화려할 것 하나 없는 공간들이 어째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는지는 미스터리이다.


그가 살고 있다는 집은 아마도 영화 <천국보다 낯선>의 이민자 윌리의 방과 비슷하지 않을까. 단순한 침대와 식탁 위 TV가 있던 작은 방 말이다. <영원한 휴가>의 방은 여기서 더 미니멀하다. 마룻바닥에 매트리스와 작은 스툴 의자, 창 아래 스팀만 보인다. 아, 한쪽 구석에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이 있기는 했다.

<패터슨>의 부부가 살고 있는 교외의 오두막 같은 작은 집, 그리고 강아지와 산책 가는 동네의 작은 바. 그 모든 공간들은 그의 일상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공원을 걷다가 마당이 있는 카페를 마주친다. 자무쉬. 분명 그의 이름이다. 영화감독 짐 자무쉬의 팬이 여기 또 있다. 오랜 한옥을 개조한 기와지붕 아래 자갈과 돌이 깔린 마당이 있다. 나무 아래 걸쳐놓은 전구 빛을 따라 한옥으로 들어가니 천정의 서까래와 신발을 놓던 디딤돌의 흔적들, 나무 결이 살아있는 기둥들이 가옥을 받치고 있다. 중앙은 긴 바로 둘러있고 그 안에서 커피나 스낵을 내는데, 천정으로 걸어놓은 타프가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그대로 주저앉을 마룻바닥 대신 신발을 벗고 올라갈 수 있는 작은 다락도 있다. 자무시의 공간에 대한 한국적인 상상일까.


그의 인터뷰집을 읽다가 잠시 멈춘다. 저자는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야심 없기로 유명한' 서른세 살 난 애크런 출생의 감독. '오, 제발 당신의 영화에 돈을 대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사람들을 거느리면서.

심지어 이런 질문을 던지기까지 한다.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았나요?"

그의 아버지는 법대에 가거나 비즈니스 스쿨을 가길 원해서 서로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영화가 반응을 얻은 이후로 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덧붙인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었더라면 훨씬 기뻐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첫 영화를 보고 이런 반응을 보이셨다.

"내가 영화 전체를 다 본 게 아니지?"

"다 보신 거예요."

"글쎄다, 뭔가 빠진 것 같은데."


야심이 없다는 말만으로는 공허할 수 있다. 종종 더 큰 목표를 향한 수사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말이 미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일으킨다. 오히려 뭔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조금 뻔뻔해 보여도 차라리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적어도 사기꾼은 아니겠구나 싶어진다. 오히려 솔직하다고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말 어려울지 몰라도 그렇게 살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니, 어렵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 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고 쉬운 일이다. 그의 이유는 단순하다.


"돈을 얻으려고 삶 전체의 스케줄을 거기에 맞춰 짜느니, 그냥 빈털터리가 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전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생을 걸고 노리는, 그리고 또 실패하는 그런 기회가 저한테 찾아왔는데도 말이죠. "


이런 생각은 영화 속 캐릭터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의 영화에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캐릭터는 보이지 않는다. 그 인물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돈을 위해 매일같이 계획을 세워 살거나, 돈을 중심에 두고 자신의 삶 전체를 조직하지 않아요. 그들은 필요할 때 돈을 손에 넣죠. 아마도 이건 제 모든 영화의 주제가 될 거예요."


필요할 때 돈이 들어온다. 그전까지는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며 산다. 이것이 자무쉬 영화에 드러난 태도이다. 어쩌다 도박이나 횡재 같은 운들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돈이 이 세계에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죽어라 쫓는다고 해서 반드시 손에 들어오는 것일까 하는 질문. 정작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저는 이 캐릭터들을 좋아해요. 자신의 방식대로 사물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저에겐 중요해요. 그들은 소외된 사람들이지만, 생활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달하지 않죠. 그들은 그저 변화를 바랄 뿐이에요. 새로운 카드게임이나 뭐 그런 것들을 기대하는 거죠."


어쩌면 남다른 방식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 역시도 모순을 인정한다.

"제 유일한 소망은 그저 계속 영화 일을 할 수 있고, 집세를 낼 수 있고, 크게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게 정말 저의 가장 큰 야망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일종의 모순이죠."


오래전 인터뷰이지만 시대를 통틀어 변하지 않는 태도이기도 하다. 어느 암벽 등반가의 말을 기억한다.

"내가 흐름 속에 있음을 인식하는 거예요. 흐르는 것의 목표는 계속 흐르는 거예요. 정상이나 유토피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 안에 머무는 거예요.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계속 흐르는 거예요. 그 흐름을 지속하기 위해 오르는 거죠."


대단원의 드라마도 스펙터클도 없는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것을 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고 자료

<짐 자무쉬, 인디영화의 대명사> , 루드비그 헤르츠베리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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