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한 질문에 대답하는 법
무슨 일을 하세요?
살면서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답하겠지만 또 어떤 이들은 잠시 주춤한다.
"제 직업이요? 설명하긴 힘들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는 있지는 않거든요."
살아있는 동시에 살아있지 않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아니고, 하고 있는데 하고 있지 않다는 이 대답은 무엇일까. 어떤 경우에는 그 대답 자체보다 대답하는 방식이 그 사람을 드러낸다. 영화 <프란시스 하>의 스물일곱 살 무용수 연습생 프란시스의 상황은 그렇다. 무용수라고 답하기는 이르고, 그렇다고 연습생이라고 하긴 멋쩍다. 정확히는 무용단에 속해 있기는 한데 무대에 서지는 않는다. 몇 년째 대기 중 상황이지만, 언젠가 무용수라고 짧게 대답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그런 시기가 이십 대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이 반갑지 않은 한 아이의 아빠가 있다. 이미 소설가로 데뷔했지만 지금은 소설가라고 답하기 곤란한 상황이다. 심지어 수상까지 했었지만, 후속 작이 없어 흥신소에서 겨우겨우 용돈을 벌고 있는 신세다. 세상의 주목을 받고 어머니의 자랑이 되던 순간도 잠시, 료타는 도박 중독에다가 남들 불륜 사진을 찍으며 다니는 철들지 못한 아빠이기도 하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 인상적인 농담 장면이 있다.
료타가 어머니의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 어머니는 베란다의 화초에 물을 주며 말한다.
"이 귤나무 기억하니?"
비리비리해 보이는 엉성한 나무에도 어머니는 듬뿍 물을 뿌려준다.
"고등학교 때 네가 귤씨 심은 거네. 꽃도 열매도 안 생기지만 너라고 생각하고 물 주고 있어."
따뜻한 손길로 무참한 팩트 폭격을 가하는 어머니의 캐릭터가 배우 키키 키린의 말투로 살아난다. 아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말씀 얄밉게 하시네."
여기서 물러날 어머니가 아니다.
"그래도 애벌레가 이 잎을 먹고 자랐단다.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어."
볼품없고 열매도 없는 귤나무지만,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애벌레를 먹여 살리고 있다. 웃기면서도 씁쓸한 현실. 이 장르는 블랙코미디인가.
아이는 천진하게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어?"
머리가 제법 컸다고 동네를 어슬렁대는 교복 입은 일진들도 덤벼든다.
"아저씨 같은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아요!"
한 대 맞은 것처럼 얼얼한 질문들이 무차별적으로 폭풍처럼 찾아오는 시기가 있다. 차마 내보일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 없었으면 하지만 어떤 일들은 일어난다. 그 애매한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영화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이대로 소설가가 되지 못한다면 료타는 잘못 살아온 것인가. 만일 프란시스가 무대에 못 서면 행복하지 못한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책에 어느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가 있다.
"원래는 의미를 묻기 전에 기분 좋게 살았다는 실감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 주변의 자연과 접하며 생기 넘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사는 의미를 말해야죠. 태어났을 때부터 무언가를 위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살면, 사춘기가 되어 사는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할 때 곧장 그 생각이 뒤집혀 훌륭하게 죽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 <주오코론> 중에서, 노다 마사아키
어떤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이 주변 사물과 연결되어 기분 좋게 지내고 있다는 실감. 그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목표를 향해 달리다가 어긋날 때 모든 의미가 사라졌다고 믿고 죽음으로 향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한다. 의미가 전부가 되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삶의 이유도 잃게 된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라면, 그 실감은 좀 더 쉬울 수 있다. 생태학자 웬델 베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치고 더워하는 말에게 땀에 절은 마구를 벗겨 주는 게 특별히 주목할 일은 아닐 것이다. 찬 비를 맞으며 바깥에 서 있는 양에게 외양간의 문을 열여주는 것, 닭에게 모이 몇 알을 던져 주는 것은 작은 일이다. 신문에서 보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정말 중요한 존재는 아닐지 모르지만,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자기가 하는 일을 누가 썩 알아주거나 관심을 가져주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속으로 좋은 느낌을 갖고 있으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리 가축이나 작물이나 밭이나 숲이나 텃밭 같은 게 모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속에 좋은 느낌이 들면서 나한테 어떤 일이 닥칠 지에 대한 걱정은 별로 하지 않게 된다. '
자연과의 조화만큼 사람들과의 어울림 역시 하나의 실감을 준다. 도시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동분서주하는 프란시스에게도 '지금 이 순간'이 있다. 자신의 직업을 설명했던 자신만의 태도가 사람들을 보는 시선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누구와의 관계에서 제가 원하는 어떤 순간이 있어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만이 아는 그런 세계. 이번 생에 그 사람이 내 사람이어서 거기에 존재하는 비밀스러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거죠."
내가 신문에 날만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주변과 잘 어울리고 있다는 실감에서 오는 좋은 느낌으로 편안해진다.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전해지는 충만감이 사람을 기쁘게 한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세계관을 이렇게 압축한다.
"의미 있는 죽음보다 의미 없는 풍성한 삶을 발견한다."
당신 같은 어른은 되지 않겠다는 동네 아이들에게 료타는 맞선다.
"쉽게 원하는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냐는 아들의 질문에도 답한다.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못 되고는 문제가 아니야.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
여전히 무용수로 데뷔하지 못한 프란시스는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이사를 하고 친구들과도 헤어진다. 다시 문패를 달아본다. 명패 자리가 작아서 이름도 다 쓰지 못하고 잘린 채로 끼워 넣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료타가 아들과 모처럼 시간을 보내는 날 태풍이 몰아친다. 나무도 흔들리고 집이 온통 들썩거릴 폭풍우가 정신없이 몰아친다. 엉망진창이다. 이대로 다 끝난 것인가.
태풍은 지나간다. 아침은 빛날 것이다.
가까이에 누가, 무엇이 있는지 더 깨끗하게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노아 바움백, <프란시스 하>
고레에다 히로카즈, <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웬델 베리 <온 삶을 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