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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려고 하는 건 안 멋져

영국 밴드 PULP의 자비스 코커에 대하여

by 베리티


"무대에서 관심을 끌려면 어느 정도 괴짜여야 해.

아름다워도 추해도 되는데, 평범해선 안 돼."


그는 괜히 레전드가 아니었다. 밥 딜런은 알고 있었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밥 딜런이 된 티모시 살라메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누가 가르쳐준다고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안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직관적으로 무대의 룰을 체득한다. 그 세계에 들어오기 가장 어려운 부류는 무난한 이들이라는 진리를.

그렇다고 구독자수 올리겠다고 온갖 퍼포먼스를 동원하는 유튜버처럼 해본들, 잠깐 시선은 받을지 몰라도 지속될 수는 없다. 대중들은 알아본다. 중요한 것은 그 퍼포먼스들이 음악, 혹은 뮤지션과 자연스러운 맥락을 갖고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익숙하지는 않겠지만.


가늘고 긴 기럭지에 깜장 뿔테 안경. 시니컬한 얇은 입술이 돋보이는 입매, 춤이라고 하기엔 찌그러진 퍼포먼스. 휘청대는 동작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90년대 브릿팝씬에서 오아시스와 블러가 한창 언론이 부추기는 전쟁에 휘말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흐느적거리며 무대를 차지하고 있는 밴드가 있었다. 펄프의 프런트맨 자비스 코커는 한 눈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온갖 독설로 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던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와도, 너드 느낌이 강하던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와도, 곱상한 외모 뒤로 곧잘 똘끼를 시전 하여 팬들을 놀라게 하던 블러와도 또 다른 '이상함'이었다. 이렇게 돌아보니, 자비스 코커야말로 '이 구역의 미친 X' 자리를 조용히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브릿팝씬의 밴드들은 하나같이 독창적이고 지적이었다. 음악잡지 페이지를 넘기면 하루가 멀다 하고 가십들이 쏟아졌다. 음악을 들을 때는 즐거웠고 듣지 않을 때는 그들이 왜 그랬을까 생각해야 했다. 그 음악은 애티튜드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밴드의 말은 단순한 쇼가 아니었고, 그들의 수다와 기행, 싸움까지도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주었다. 자비스 코커가 단숨에 이상함(weird)의 제왕이 된 것은 단연 그 사건이 결정적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무대 사건. 그가 빌보드 및 온갖 차트를 장악하고 경이로운 앨범 판매고를 생신하고 있을 무렵- 'heal the world'나 'we are the world' 같은 노래로 세계 평화의 메신저라도 된 것처럼 굴고 있을 때, 어느 어워드 축하자리에서 마이클 잭슨이 아이들과 함께 한 무대에 자비스 코커가 난입하여 fuck you 퍼포먼스를 시전 했다.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이게 무슨 상황인가 했고, 축하 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지만, 점차 자비스 코커에 공감하게 되었다. 도를 넘어선 마이클 잭슨의 선함 코스프레가 역겨워진 것이다. 분명 다시 생각해 볼 일이었다. 그래, 당신이 팝의 황제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세상의 구원자는 아니잖아. 언젠가 본 책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일갈했다.

"당신은 자신 스스로를 팝의 황제로 인정하는 자에게 믿음이 가는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별로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시절 그의 쇼는 분명 지나친 면이 있었다. 후에 언론은 이 사건을 예술가의 항의로 인정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자타공인 황제를 까면서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이 정도에 올라섰을 때, 알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냥 병아리나 망나니 정도로 여기고 해프닝에 그쳤겠지만, 자비스는 이미 자신의 독보적인 철학과 사회적 시선으로 채워진 인물이었다. 농담 하나, 실수 하나에 아무나 위트를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펄프의 대표곡 중 하나인 'common people'은 부유층 예술 지망생 여성의 서민 코스프레를 유머를 곁들어 날카롭게 비틀어댄다.

가사의 스토리를 요약해 보면, 세인트 마틴 같은 명문대 다니는 그리스 출신 그녀가, 멋진 가난을 동경하며 그를 데리고 서민 체험을 하며 즐거워한다. 돈 없는 척해보라며, 너 되게 재밌다며 웃는 그녀를 향해 던지는 말들이다. 그녀는 늘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TMWgOduFM

you will never understand how it feels to live your life.
with no meaning or control
and with nowhere left to go
you are amazed that they exist
and they burn so bright whilst you can only wonder why

그렇게 살아가는 게 어떤지 넌 결코 이해 못 할 거야.
의미 없고 통제되지도 않고
갈 곳도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말이야.
넌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는 게 놀랍겠지
네가 그 이유를 궁금해할 때 그들은 밝게 타버릴 거야.

- Common people 중에서, pulp

You

이 노래에 대한 자비스 코커의 인터뷰도 흥미롭다. 실제로 세인트 마틴 재학생이던 그는 그곳에서 만난 여학생을 떠올리며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저는 특히나 오래된 시대에 뒤떨어져 있어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곡이 있는데 그것을 지나치게 한다면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공기 중에 떠도는 것 같아요. 사회적 빈민가 탐방을 통해 우쭐해지는 것이요. 저는 저임금과 소외계층이 매력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를테면, 저는 블러(blur)의 <parklife>나 <올리버 스톤의 킬러>를 통해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는 고귀한 야만인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하지만 공영주택 단지를 거닐다 보면 야만성만 많지 고귀함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셰필드에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common하다고 말한다면, 저속하고 음탕하고 천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Q Magazin 1996 인터뷰 중에서


자비스의 가사는 상류층 허위의식을 건드리지만 당대 한창 유행하던 시애틀 사운드처럼 폭발하는 분노는 아니었다. 그저 너의 특권의식을 직시하자는 차갑고 은유적인 유머는 계급과 위선을 기막힌 관찰력으로 꿰뚫는 발자크나 볼테르의 방식을 닮았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보들레르처럼 사회를 관찰했다.


이런 음악으로 무대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하나의 의미가 된다. 팔을 이상하게 휘두르고 허리를 꺾으며 다른 사람과 닮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자신감을 잃지 않는 태도. 가만히 보다 보면 전달된다.

'내가 못 춰서 이러는 게 아니라, 세상이 너무 멋만 부리니까 한번 망가져주는 거야.'

자비스는 자신의 어색함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세상에 멋진 놈들은 차고 넘쳐도 나 같은 놈은 없을걸.


펄프의 음악을 들으며 생각해 본다. 왜 멋지려 할수록 멋이 없을까.

자비스가 추구했던 것은 멋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Cool is not a costume. It's not a pose. It's when you're just OK with who you are"


펄프의 음악이 과거형이 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지금도 그런 세상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올여름, 우리는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흐느적거리는 그 무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한 가지 더,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펄프는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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