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오새요
"한참 찾았잖아."
어느 골목에서 치근대는 병사들을 만나 당황하는 소피에게 누군가 다가온다. 짧은 그 한마디가 이렇게 달콤하다니.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골목을 거닐던 두 사람은 둥실 날아오르고 하늘을 산책한다. 두근대는 심장 박동을 닮은 왈츠 리듬의 멜로디를 따라 이어지는 황홀한 발걸음. 지금 우리는 하늘을 날고 있다. 이건 꿈이 아니다. 세상은 발아래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와 하울이 처음 만나게 되는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히사이시 조의 스코어로 꿈결같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모든 것들이 아찔하다. 그래, 이런 순간이 있었지. 하늘을 나는 것만 같은 순간들. 각자의 기억 속에 소피의 시간이 살아난다. 온몸의 세포 속에 설렘이 파동처럼 반짝거리며 흔들린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행복은 아주 잠시. 그래서 온전히 기뻐하기가 두렵기도 하다. 이 행복이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소피는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마녀의 저주를 순식간에 마주한다. 거울 속에는 왠 노인이 하나 있다. 머리는 온통 백발에다가 주름만 가득한 얼굴. 뚱뚱하고 펑퍼짐한 몸매. 한 발짝 떼기도 힘든 노인의 걸음. 그게 나다. 하울은 여전히 아름답고 로맨스는 이제 막 시작되려 하는데, 나만 폭싹 늙어버렸다. 이보다 더한 재난이 있을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할머니가 된 소피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일, 그러니까 저주지 정도로 넘겼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처럼 그 장면에 대한 질문이 점점 짙어져 간다.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이보다 가혹한 절망이 없구나. 만약에 내가 소피라면, 젊음을 잃고 아름다움마저 사라진다면, 나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하울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울의 성에 사는 꼬마는 늙은 마녀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사랑을 해본 적 있나요?"
로맨스만 문제가 아니다. 30대만 지나도, 이따금씩 무대에서 밀려났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새로운 세대에게 조명이 쏟아지고, 나와 함께 했던 것들이 낡아진 것은 아닌가 의심도 해본다. 그러다가 어느 날 흰머리카락을 발견하는 날이 온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놀람과 체념 사이의 묘한 감정을 경험한다. 어릴 적 어깨를 주물러드리면 시원해하시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더 세게 두드리라는 그 말 뜻을.
아, 이제는 더 알기 싫다. 얼마나 더 알아야 하는 것인지 덜컥 겁도 난다.
미술관에서 오랫동안 발길을 잡아끄는 그림을 만난다. 베레모를 쓴 노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어딘가 조금 침울해 보이는 표정이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보인다. 머리는 희어졌고 주름으로 빚어진 얼굴의 굴곡들. 평범한 망토를 걸치고 손은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죽기전 마지막으로 그린 63세 램브란트의 <1669년의 자화상>이다. 한 눈에 확 띄는 아름다움이라고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노인의 모습에 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젊은 날의 생동감넘치는 자화상보다 왜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일까.
작가 프루스트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램브란트 청년시절의 자화상은 언급하지 않는 반면, 빛에 허덕이고 파산을 피하기 위해 매일 붓을 들어야 했던 비참한 말년에 남긴 늙은 화가의 자화상을 주목한다. 젊은 시절에는 당당하고 과시하기 위한 기술들이 많이 보였다면, 노년의 자화상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와 고요한 성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당대의 화가들이 추구하던 아름다움에서 비켜나서 램브란트는 거울처럼 자신을 들여다보며 붓질을 했다. 그는 멋지게 보이는 노년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보이는 대로 주름진 이마, 처진 눈꺼풀, 느슨한 입매가 그대로 드러난다. 짙은 명암 속에서 시간이 지나온 흔적은 더욱 깊어진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맞이한 내면의 풍경이다. 램브란트의 노년의 자화상은 미술사를 바꿔놓았다.
"램브란트가 노후에 그린 그림들에서는 그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황금빛 날, 그래서 그토록 생산적이고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날이 이제 그에게 현실의 모두가 되었으며, 그는 그것을 가장 고통스럽게, 완전하게 번역하려는 노력만을 기울였음을 볼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어떤 아름다움이나 외부적인 진리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그것만이 그에게 중요함을 깨닫고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램브란트> 중에서, 마르셸 프루스트
램브란트는 더 이상 의뢰인의 만족을 위해 그리기를 그만둔다. 젊었을 때 그 역시 다른 사람의 인정으로부터 오는 명성과 부를 즐기는 화가들처럼 살았다. 존 버거는 20대 시절 작품에 그려진 램브란트 자신을 보며 '전통적 연기를 하는 새로운 배우 스타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림을 팔아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이 그려야 하는 것을 해야 했다. 그는 새로운 아름다움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늙음이 어떻게 아름다움이 되는지를 그리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램브란트의 자화상들을 일종의 독특한 자서전이라고 보았다. 1669년 생을 마감하면서 램브란트가 남긴 것은 헌 옷 몇 벌과 화구가 전부였다. 남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일에 충실했던 삶. 어떤 물질적 보상도 명예도, 세상이 기대하는 아름다움도 없었지만 그는 그것을 살았다.
젊은 날 느닷없이 닥친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무나 늙어버린 스스로를 거울로 마주하면서 소피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울고 불고 눈물을 한 바가지쯤 쏟았을까. 마녀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칼을 갈아야했을까. 놀라서 종종걸음을 치긴 했어도 그녀는 침착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소피는 자신을 주름을 매만져보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할멈. 건강해 보이고 옷도 잘 어울려."
다른 사람들이 놀랄 것을 염려하여 멀리 떠나는 뒷모습은 조금 쓸쓸해 보이지만, 그렇게 계속 나아간다.
하울은 이제 소피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천연덕스럽게 새로운 청소부 할멈이라고 대꾸하는 소피. 누구도 자신을 주목하지 않지만, 청소도 해주고 음식도 챙기며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매일 밤 전쟁을 치르며 돌아오는 하울은 이런 말도 한다.
"아름다움이 없다면 존재의 의미가 없어."
늙어서 좋은 것은 울 일도 줄고 놀랄 일도 없는 거구나. 소피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어쩐 일인지 소피의 주변에는 딸린 식구들이 늘어간다.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은 늙은 황야의 마녀에게까지 수프를 떠먹이고, 순무대가리 허수아비, 늙어서 켕 소리 내는 스파이 강아지도 늘 주변을 맴돈다. 하울은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모습을 들키려 하지 않지만, 소피는 속삭인다. "나는 하울이 괴물이라도 너를 좋아할 거야"
아마도 소피가 늙어보지 않았다면 이런 감정을 알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할 때 그것을 끌어안을 수 있었을까.
소피의 저주가 약해지는 순간이 있다. 호기심을 갖거나 희망을 품을 때, 소피는 잠깐씩 다시 원래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하울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 연기를 하기도 하고, 먼 과거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하울의 과거 속에서 심장의 비밀을 알게 되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손을 흔든다.
"미래에서 너를 기다릴게"
소년 시절에서 미래로 나아오면서 흩어지던 소피의 눈물 방울들을 기억한다. 걸어가기는 하겠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 이 짧은 한 마디는 세월의 무게를 전해준다. 젊음과 늙음 사이에 남모르는 무수한 눈물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걸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니.
늙는다는 것은 모든 나이의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언제 그 마음을 끄집어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누구든 친구로 만들 수 있는 것. 젊기만 했다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것들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것. 때로 후회의 감정이 폭풍처럼 밀려온다고 해도, 한번 더 나아가볼 수 있는 것.
멋진 풍경 앞에서 찻잔을 들며 소피는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와준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늙었다고 슬퍼하기엔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고, 감탄할 것들은 바닥나지 않는다. 나이 들고 늙었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저주를 퍼부은 마녀까지도 끌어안고 입을 맞출 수 있을 만큼의 미지의 감정까지도 품게 되었을 수 있다. 저주로 노인이 되었지만 외모에 매이지 않게 되었고, 눈치 보고 움츠렸던 젊은 날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주도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젊고 아름답지만 사실 겁쟁이라고 고백했던 하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소피가 하울의 심장을 찾아주었을 때 그는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 눈을 뜨고 소피를 바라본다.
"소피 머리가 별빛으로 물들었네. 아름다워!"
하울도 이제는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함께 지낸 시간 속에서, 오가는 마음과 눈빛 속에서 잠들었던 세계가 깨어난다. 모두가 알지만 실제로 받아들이기까지의 간극은 별과 별사이 처럼 멀다.
인생의 회전목마는 계속 돌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소피를 만났던 하울의 첫마디를 기억하게 된다. 그건 우연도 아니고, 첫만남도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하울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오랫동안 소피를 찾아다닌 것이다. 미래에서 기다린다고 했던 그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아온 것이다. 그 기다림으로 누군가의 인생에 닿게 되었고, 그 무게로 짧은 한마디는 그 어떤 수사 가득한 고백보다도 반짝인다.
"한참 찾았잖아."
한 사람에게서 별빛을 발견하기까지 이렇게 멀리 와버렸다. 거저 쉽게 주어지는 흔한 것이 아니다. 젊음과 늙음 사이에서 때때로 비틀거릴 때 하울과 소피를 찾아야겠다.
언제가 와본 듯 하다는 소피의 고백처럼 오래도록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