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7] 위험하지 않은 것은 결코 위대하지 않다
존 버거가 인용한 하이쿠는 짙은 인상을 남겼다.
Writing shit about new snow 새 눈에 대해 너절한 글을 쓰는 것은
for the rich 부자들을 위해
is not art. 예술이 아니다.
-코바야시 잇사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50여 년 전에 출판된 책이니, 요즘의 시대 감각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꽤 강렬한 메시지다. BBC 다큐멘터리 연작을 지면으로 옮긴 이 책은 미술을 보는 기존 아카데미적 시선에서 좀 더 나아가 계급, 인종, 젠더, 소유, 후원, 정치 경제적 차원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열어주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하나의 작품이 오직 작품으로만 평가받는 그런 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통렬한 신념 없이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동화 같은 망상일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대부분 패트론의 주문에 따라 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일을 했다. 말하자면, 장인인 기술자 정도의 지위였지 독보적인 예술가로서 주체성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은 평생 다방면에 걸친 호기심과 집요한 탐구로 수많은 노트를 남기고, 마감일 준수보다는 작업 과정 자체에 몰입하는 작업 방식으로 인해 완성작은 비교적 적었다. 하지만 그가 이런 연구나 작업과 더불어 늘 고민했던 그 시대의 문제의식이 있었다. 아놀드 하우저는 '미술가의 지위가 점차 상승한 것을 가장 잘 반영해 주는 것은 다빈치의 생애'라고 기록했다. 다빈치는 서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공방에서 수련하고 후원자를 찾아가며 일하다가, 인생 후반기에는 세력이 있는 정치가들의 수석 기술자가 되었고 마지막은 프랑스왕이 총애하는 화가이자 측근으로서 삶을 마쳤다. 그 이후 라파엘로는 한 사람의 화가에서 더 나아가 귀족 계급과 같은 대우를 받았고, 타치아노는 세습 귀족의 권한을 누렸으며, 왕후 귀족들이 초상화를 얻으려 줄 섰지만 소수만이 그에게 작품을 맡길 수 있었다. 예술가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른 것은 미켈란젤로였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의 씨앗은 무엇일까.
예술가들의 새로운 자기의식과 독자적인 창작활동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징표의 하나는, 그들이 이제 직접 주문에서 해방되기 시작하고 주문받은 일을 종전처럼 그렇게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예술적인 과제의 해결을 일체의 주문 없이 자발적으로 해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문확과 예술의 사회사> 중에서, 아놀드 하우저
사회적인 인식이 널리 퍼지기까지 화가들의 고집, 자발성이 있었다. 주문 제작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때로 주문자의 뜻을 거스르기도 하면서 올라서고 싶었던 단계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다빈치는 마감일을 지키지 못하는 방식 때문에 피렌체에서 일이 많지 않았다. 물론 인정받은 화가였지만, 더 착실히 마감을 지켜서 해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빈치의 신비스러운 면모는 그의 글쓰기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왼손잡이는 그는 글자를 작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서 한눈에 보면 읽을 수가 없어서 거울을 비춰보아야 알 수 있게 했다. 왜 굳이 이렇게 했을지 그 이유는 오직 다빈치만이 알겠지만, 아마도 자신의 이단적인 생각들을 쉽게 내보이지 않고 싶었던 심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동설을 언급했다가 감옥에서 고문당한 갈릴레오와 같은 길을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앞서간 선구자들이 흔히 그렇듯 자신이 알아낸 진리를 계속 숨길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토록 몰입했던 것들을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흔적들이 다빈치 노트 곳곳에 발견된다. 그중 하나는 이런 생각이다.
다빈치의 주장에 의하면, 회화는 한편으로는 일종의 정밀한 자연과학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학문 위에 군림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학문이 '모방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서 비인격적인 것인 반면 예술은 개인 및 개인의 타고난 재능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에서, 아놀드 하우저
학문은 비인격적인 반면 예술은 사적인 것이다. 그렇다. 예술 작업에 대한 평가가 작품의 주인인 개인에 대한 평가처럼 들리는 이유다. 학문의 결과가 틀리면 역시 좌절이 있지만 예술은 개인에 대한 처절한 실패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다빈치는 그 이유를 재능과 직결된 부분이 더 큰 것으로 보았고,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라 그 때문에 예술의 지위가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봐도 놀라움을 주는 의견이다. 그는 여기에 고대 그리스 시인 씨모니데스의 격언을 가져왔다.
"회화는 말 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회화"
다빈치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회화의 결점이라고 한다면, 똑같은 의미에서 시 역시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점을 찾을 수 있냐고 반문한다. 인문주의자와 좀 더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예술가라면 이런 이단자적 주장을 감히 입 밖에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에서, 아놀드 하우저
당대의 지식과 사상의 주류였던 인문주의자들을 거스르지 않으려면 굳이 이런 논란은 일으키지 않는 편이 순탄할 것이다. 하지만 다빈치의 이 생각은 앞으로도 수 세기에 걸쳐 계속되는 논쟁의 서막을 열었다. 말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런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성격이었다면 우리가 아는 그 다빈치가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마케아벨리가 했다는 그 말을 다시 떠올린다.
'위험하지 않은 것은 결코 위대하지 않다.'
존 버거가 전하고 싶던 메시지 역시 다빈치의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어디에 몰두하고 있는가. 위의 하이쿠처럼 내가 지켜야 하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존 버거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오늘 우리는 거울처럼 옛사람을 비추어본다.
"계속 싸워나가시기 바랍니다."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다음엔 머리를 식힐 겸 좀 가벼운 글을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