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의 말을 떠올리며
철컥. 둔탁한 소리가 반복된다.
종이 커터로 대본을 자른다. 후배 작가가 종이 대본을 큐카드에 붙인다. 순서가 헷갈리지 않도록 번호를 매긴다. 최종 대본의 큐카드를 만드는 중이다. 제작사 대표님도 옆자리에 앉으신다. 힘쓰는 일은 맡기라며 커터를 척척 내린다. 방송 녹화 전날의 흔한 풍경이다. 팀은 컨베이어 벨트처럼 척척 움직인다. 굳이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일을 하다 보면 왜 이런 일까지 하는지 모를 때가 있지. 그럴 땐 그냥 하는 거야."
대표님이 농담처럼 가볍게 툭 건네는 말에 웃는다. 이제 갓 일을 시작한 후배작가는 무슨 뜻인지 알았을까. 눈만 땡그래진다.
그저 글만 쓰고 대본을 보내면 끝인 깔끔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방송작가의 일에 실망할 것이다. 정말 그렇다. 왜 이런 일까지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시간을 거쳐야 대본 쓸 기회라도 주어진다. 큐카드 아니라 때로 소품도 만들고, 프롬프터도 눈치껏 잘 만져야 하며, 내 잘못 아닌 일에도 사과를 잘해야 한다. PD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했어도 현장에 가면 언제나 예상밖의 일이 터진다. 현장에서 쏟아지는 모든 질문에 답을 주어야 한다. 어떤 영화감독은 촬영 날 현장에 가기 싫어서 도착해서도 차 안에 한참 있다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발을 뗀다고 했는데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에 안 그런 일이 있을까. 언젠가 김영하 작가의 농담에 웃었다.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알았더라면 안 했을 사람 많아요." 어느 건축가가 일의 실체를 알고 나서 푸념하듯 던진 말에 대한 답이었다. 시작한 지 몇 달 안 된 후배 작가도 뭔가 눈치를 챈 듯하다. 나 역시 앞으로는 더 여건이 좋아질 거라는 말은 해줄 수가 없다. 앞으로도 알게 될 것들이 많다.
그저 이렇게 가볍게 웃어 넘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젠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조금 짐을 덜었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어떻게 하면 오래 일할 수 있느냐, 특별한 기술이 없어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라고 했고, 거기에 “그냥 꾸역꾸역 하면 된다”라고 답했다는 거였다. “하다 보면 치사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야.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고. 그럴 때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꾸역꾸역 하면 돼.”
문제는 질문 자체가 아니다.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에 대한 질문이 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질문이 찾아올 때마다 깊이 빠져든다고 해서 항상 답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꾸역꾸역 하는 것이 답이 될 때가 있다. 멈추기보다 어떻게든 가다 보면 답은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당장에 해결되거나 알 수 없는 일들이 은하수처럼 가득하다. 그러니 질문 자체도 사실 중요하다. 좀 더 해결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면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대기업에 취직하길 원하는 사람은 대기업 직원의 일상이 어떨지 잘 이해하고 있을까?
연봉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연봉을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할지 생각해 보았을까?
제현주 작가의 책에서 일을 대하는 마음을 읽는다. 일에 자신이 받는 급여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는 일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어리석은 일일까. 괜히 남 좋은 일이나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가 나였다. 윗사람의 지시가 맥락이 맞지 않아서 투덜거리는 날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영리하게 자기 일만 쏙 하고 빠지는 사람보다 어떻게든 잘 되게 해 보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게 된 것은 왜일까.
그럼에도 필요 이상을 하게 되는 어떤 마음이 있다. 돈으로 돌아오지 않을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마음, 내 몫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떨치는 쪽이 영리한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걸 안다 해도 일에 쏟아서는 안 되는, 그 갈 곳 없는 마음은 어째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까? 우리에게 남은 활동이라고는 노동뿐인 이 시대에도 우리에겐 유용한 것을 창조하고, 사람들 속에서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제현주
사실 일 자체가 힘든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알다시피, 우리가 힘들어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사람에서 온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에 열심히 하게 되는 이유는 무언인가 창조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인정 욕구 때문이다. 이를 사람의 본성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이를 잘 살려서 내가 원하는 자리에 도착하는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사람에서 비롯된 고민이라면 역시 그 해법도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특정한 하나의 직업에서 스스로 마비되기보다는, 어떤 특정한 네트워크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라는 빌게이츠의 말을 인용한다.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과 회의를 할 때 시너지가 나온다고 하잖아요. 어떤 경우에 어떤 사람은 아예 없는 게 나아요. 그 사람이 못해서가 아니라 코드가 안 맞거나 언어를 같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에요. 어떨 때는 이 사람과 맞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때는 저 사람과 맞을 수도 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
그렇다면, 그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도착하는 가장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를 연마해야 할까.
감성을 연마한다는 것은 결국 직감을 단련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작품 속에서 마음 깊이 전해지는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 창작에서는 모래 안에서 금을 발견하는 듯한 이런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직감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느끼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음악감독 히사이시 조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직관이다. 가르쳐준다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경험을 통해 단련되어야 알 수 있는 그 어떤 것. 그런데 그렇게 잘 된 일들은 주변에 누가 있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 내가 누구의 손이 되고, 내 손이 누구의 일이 되느냐 하는 지점이다.
저비용 구조로 자신의 욕구를 재편하고 싶다면 다른 장소와 다른 관계망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상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지,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지가 우리 욕구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다른 조율의 활동을 하고, 다른 종류의 관계를 맺고, 다른 종류의 경험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다른 종류의 욕구가 생길 리 만무하다...(중략)
일과 놀이를 가르는 세상의 기준에 갇히지 않기를 바랐다. 열심히 돈을 번 다음 놀려고 돈을 쓰느니, 그냥 돈은 덜 벌리더라도 놀이 같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결국은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제현주
예전부터 늘 해오던 생각이다. 놀이와 일을 가를 필요 없이 어느 쪽이든 몰입한다면 도달하게 되는 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수당에 대해서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포기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지 모두에게 다 좋은 길이란 세상에 없으니까.
일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비틀거리지 않고 휘청이지 않으면서 얻게 되는 것은 없다. 어느 쪽이든 나아가려 한다면 스스로 걸어야 한다. 훈수나 이론, 비판만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돈키호테와 산초가 어느 여관에 머물 때 어느 지식인이 그들을 조롱한다. 현실세계에 도무지 맞지도 않는 '기사도'라는 것이 가당킨 한 것인가. 그 지식인의 말이 백번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젠 돈키호테의 편이 된다.
"하지만 기사의 길로 들어온 적도 없고 그 길을 밟은 적도 없는 학생이 나를 멍청이로 본다면 나는 콧방귀도 안 뀔 테요!"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에서
*참고 자료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일하는 마음> 제현주
<일하는 사람의 생각>, 박웅현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히사이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