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는 거 알아.
"불완전한 것이 감정을 일으키지요."
영화를 만드는 빔 벤더스 감독의 말을 오랫동안 생각해 본다.
어떤 일의 마지막 목표처럼 여겨지는 하나의 찬사. "완벽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향해 달려간다. 언젠가 그 지점에 서 있을 자신을 그리며 뛰고 또 뛴다. 완벽함이 싫다는 사람 있을까.
그런데, 빔 벤더스의 말은 그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감정을 일으킨다고만 했다. 그다음은 당신이 알아서 발견해 보세요. 말줄임표로 생략된 말이 있을 것 같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게 쓰일 수 있는 공간이지 않을까.
'실무 현장에서 우리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골치 아픈 일선의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나름대로 특징이 있는 일을 한다. 그럼에도 악기 만드는 일이라면 스트라디바리의 명품의 음질을 잊을 수 없듯이, 과학자라면 아인슈타인의 포부를 잊을 수 없다.'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에 대해 탐구하는 런던정경대의 리처드 세넷의 저서 <장인>의 한 페이지에서 멈춘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일을 한다. 현대 사회는 복잡해서 한 가지 일에 여러 속성들이 있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어떤 보장도 없이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어떤 순간들. 스트라디바리의 음질일 떠올리며 악기를 만들고, 매번 실패하는 실험 속에서도 앞서간 과학자의 포부를 기억한다. 각자의 자리는 다르더라도 그래서 계속 그 길을 간다. 세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은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서넛의 질문은 이어진다. '우리 인간은 이런저런 잣대로 볼 때 불완전한 존재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모습 속에서 우리가 인간이란 것(즉, 인간성)에 대한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계몽주의의 유쾌하고 지적인 전사 볼테르의 소설 <쟈디그>의 주인공의 탁월함은 그렇게 드러난다.
'자기만이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삼갔고, 인간의 약점을 존중할 줄 알았다.'
쟈디그는 선하고 지혜로운 인물인데도 어찌 된 일인지 늘 불행 속에 허덕여야 했다. 그가 지혜를 발휘할수록 일이 꼬였다. 보통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모호하고 흐릿한 세계를 밝혀서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쟈디그의 재능이었는데, 점점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 속으로 빠져들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완벽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이 세계의 질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쟈디그가 당하는 고통은 그의 재능으로 인한 것이었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존중할 줄 알아서 쟈디그가 탁월해진 것인지, 그가 탁월했기 때문에 인간의 약점을 존중하는 것인지 경계가 그리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의 또 다른 소설 <깡디드>는 어떤가. 깡디드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을 겪고 있을 때 그의 스승 팡글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 거야. 화산이 있으니까 도시가 무너지지."
물론, 지금의 시련이 후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그저 이렇게 덮어두는 것은 괜찮은가. 화산이 있으면 도시가 무너져도 되는가. 전쟁을 겪을 때도, 추방당하고, 고문... 이 모든 시련이 이어질 때도 스승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건 모두 앞으로 잘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야.
어쩐지 영웅병에라도 걸린 코미디 같다. 사람들이 쓰러지고 죽어가는데 최종적으로는 좋은 날이 올 거라며,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하면 잘 될 거라고만 한다. 아마도, 경제학자 케인즈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유명한 말을 한번 더 외치지 않았을까.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고 없다.'
낙관주의가 지나치면 현실의 고통을 무시하고 덮어둘 우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리처드 세넷은 볼테르가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한다.
'완벽의 추구는 인간에게 진보가 아니라, 비통을 갖다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손으로 만지는 장인의 작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징에 주목한다. 입자 사이에 거품이 끼어들건 표면이 고르지 못한 유리제품에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반면, 완벽한 표준을 고집하면 실험과 변화의 여지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경고다.
세넷은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경험의 실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나치게 관념에 얽매이기보다 당장 바깥으로 한 걸음이라도 발을 떼어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하나같이 불완전한 사람들이 거리를 지난다. 그래도 기본적인 인간의 능력이 불완전한 세계를 연결한다. 그 사이에 희망과 가능성이 반짝인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부딪히는 일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새겨놓는다."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거리의 가판대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한 남자가 허공에 대고 말을 건넨다. 세상으로 들어와야 하는지 사람들 주위를 서성이는 보이지 않는 천상의 존재에게 전하는 초대의 말이다.
"좋은 일은 아주 많아.
하지만 자네는 여기 없고 난 이곳에 있어.
이곳으로 와서 내게 말을 해봐.
난 친구니까.
동료라고."
*참고 자료
<장인,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리처드 세넷
<쟈디그>, <깡디드>, 볼테르
<베를린 천사의 시>, 빔 벤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