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공모하여 목격자도 없이

[다빈치 1]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밤

by 베리티

그 책은 남편의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벽돌책인지라 쉽게 손이 가지 않았지만, 문득 손을 대어본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사실 좀 화가 나기도 했다. 분명 그런 책들이 있다. 왜 이런 책을 이제서야 읽었을까 탄식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곰브로비치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사 입문의 고전으로 통한다. 전공자들은 이미 섭렵했을테지만, 나는 꽤 늦게 이 책을 알게 된 셈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 사이로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번이 아니라 두고두고 읽어야하는 책이라는 메시지가 읽힌다. 남편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는 듯 시큰둥하지만, 난 그 이후로 언제나 닮고 싶은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곰브리치를 꼽는다. <서양미술사>는 이제 내 책장으로 이사왔다. 그 책은 곰브로비치의 다른 책들도 불러왔다. 오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기록에서 잠시 멈춘다.


그는 학자들의 책에서 얻은 지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라틴어는 거의 모르고 그리스어는 전혀 몰랐다. 대학의 학자들이 존경받는 고대 저술가의 권위에 의지하고 있을 때에 화가인 레오나르도는 자기가 읽은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권위자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언제나 그것을 실험으로 해결하였다. 그는 자연에 깊은 호기심을 느꼈고 창의적 정신으로 모든 것에 도전했다.

-<서양미술사>중에서, E.H. 곰브로비치


오늘날 천재의 대명사가 된 다빈치는 그저 이탈리아 작은 농가의 하녀에게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정규적인 교육을 받을만한 신분이 아니어서 그 이름처럼 '빈치'마을의 이름없는 사람으로 잊혀지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당대의 지식인층의 언어였던 라틴어도 몰랐고 그리스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엘리트층을 동경하고 추앙했을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며 채우려고 안달했을까.


하지만 그의 독창성은 오히려 이런 악조건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기존의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직접 해보는 것으로 지식을 쌓았다. 뉴튼의 그 유명한 말처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사람도 있지만, 거인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곰브로비치는 다빈치를 '책에 써놓은 지식에 크게 기대지 않고 자연의 모든 현상을 실험에 의해 해명하려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는 하나하나 자신의 손을 거쳤다. 그 방법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천재는 한 개인의 능력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천재의 능력과 그 발전 단계의 적절한 시기가 일치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빈치의 이런 성향은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정신과 맞아떨어졌다. 곰브로비치의 말대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지 그 누구에게도 의견을 묻건 찬동을 구하지 않는 인간, 낡은 책을 뒤적이면서 전통적 관습인 풍습을 따지는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으로 움켜질줄 아는 인간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만일 다빈치가 살던 나라나 시대가 전통에 얽매이는 사회였다면 그의 천재성은 드러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출신, 직업, 종교, 국적 등이 비교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풍토에서 그는 스스로를 키워나갈 수 있었을 것이고 열린 마음의 사람들은 이를 알아보았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를 지원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메디치 가문의 식탁은 그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메디치 가문에서는 연장자나 신분 높은 사람이 상석에 앉아야 한다는 식사 예법이 없었다, 아무리 나이 어린 화가라도 먼저 오면 주인 옆에 앉고, 외교관이라도 늦게 오면 아래쪽에 앉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이런 예법은 흔하지 않다!


다빈치의 창의적 접근법은 이런 사회와도 잘 맞아떨어졌고 시대정신은 이를 반영한다. 철저히 경험주의에 기반한 탐구자이자 르네상스의 과학적 정신의 상징이다.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난 말이 있다.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온다. 나는 글자가 아니라 사물과 대화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다빈치가 금기시되었던 시체를 만졌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는 인간의 몸을 신성시해서 해부를 금했지만, 다빈치는 의사친구들과 몰래 한 밤중에 병원에 잠입하여 30구가 넘는 시체들을 직접 만지면서 공부했다. 이렇게 해서 팔, 손, 다리 근육의 원리가 노트에 기록되었고 근육, 혈관, 심장, 내장의 움직임까지 세세히 알게 되었다. 심지어 자궁의 태아까지 그려져있다. 심장 판막에 대한 묘사는 19세기 의학보다 앞선 것이었다.


르네상스의 또다른 천재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미켈란젤로도 인체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원리를 알아야한다는 것을 간파했고, 몰래 시체를 공부했다. 세기의 천재들에게는 시대의 금기라는 것은 자신들의 이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시체 연구에는 차이가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연구는 예술적 표현을 위한 것으로 조각가로서 형태와 감정 표현에 의존한 것이었다면, 다빈치는 인체의 원리에 대한 호기심 그 자체로 과학자의 마인드를 드러낸다. 자신의 드로잉 기술을 과학의 표현으로 사용한 것이다. 다빈치의 노트에 기록된 스케치는 인체의 구조에 집중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연구가 조각가로서 '완벽한 인간의 형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다빈치는 과학적으로 '인간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고 싶어했다.

다빈치의 대표적인 <비투루비우스적인 인간>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왔다. 인간 비율의 수학적조화가 표현되어 원과 정사각형 안에 위치한 그림에서 신비가 느껴진다. 그 비밀은 철저히 과학적인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체를 해부하고 손으로 만지는 일. 그저 금기를 뛰어넘는 일 정도로 슬쩍 넘어가기엔 너무나 큰 충격이다. 뜻을 알아주는 절친도 있어야 했고, 그에 합당한 시체들도 갖추어져야 하고, 그 썩는 냄새와 정신적 쇼크, 무엇보다도 감염의 위험은 없었을까. 들키면 어떤 처벌을 감수해야 했을까.

아마도 외계인을 마주하는 것처럼 미지의 세상을 직접 만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위험을 호기심과 열정으로 감수한 셈이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다가갈 수 있는 정신세계가 아니다. 다빈치의 모든 것을 연구한 세르주 브람리의 책에는 기억할만한 문장이 있다.


“Je doute, ô Grecs, qu’on puisse faire le récit de mes exploits,
quoique vous les connaissiez,
car je les ai faits sans témoin,
avec les ténèbres de la nuit pour complice.”

“오, 그리스인들이여,
그대들이 내 업적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말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소.
왜냐하면 나는 그 일을 목격자 없이
밤의 어둠을 공모자로 삼아 해왔기 때문이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중에서, 세르주 브람리


세르주 브람리는 다빈치가 '밤의 어둠을 공모하여 목격자도 없이' 해냈다고 썼다. 다빈치는 그리스어를 알지 못했지만 르네상스가 우러르던 고대의 정신, 그리스인과 이미 같은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밤의 신비와 고독감, 어떤 금기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창조성. 모두가 권위에 의존하라고 할 때 자연에 스스로 귀기울이는 법을 배웠던 다빈치의 어둡고도 신비스러운 밤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다빈치는 이런 공부법을 어떻게 배우게 되었을까.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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