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2]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공부법
(전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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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과거를 되새기지도 말고, 미래에 기대하지도 말고, 지금을 살아가야만 해."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준세이는 말한다. 그 말에 가장 들어맞는 장소가 있다면 피렌체가 맞다.
중세 말기 종교 중심으로 기울어있던 시대정신이 들썩인다. 내세를 위하여 현재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 맞는가? 1400년대 이후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낡은 고전을 뒤적이며 고대 문명에 빠져들었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저작을 파고들며 아테네, 로마의 문화를 다시 바라보았다.
고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했고, 현재를 살았다. 그리스 어로 '아레테(Arete)' 즉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갈 가치관으로 자리잡았다. 중세는 저물어가고, 그렇게 르네상스의 동이 터오르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에서 자랐다. 이미 보티첼리와 같은 대가들이 한창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고 여러 공방들에서 선구자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신분이 낮은 다빈치의 부모는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킬 여건이 되지 못해 조부모에게 다빈치를 보냈고, 다행히도 그는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갔다. 베로키오는 르네상스 선구자들의 업적을 계승한 사람이었고 그 공방의 일꾼들 역시 실력이 뛰어났다.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 실험으로 부딪혀서 직접 알아내려 했던 다빈치의 공부법에 영향을 미친 스승은 알베르티였다. 그는 어린 다빈치에게 인습에 얽매이지 말며 자신만의 강점과 개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위대한 사람을 따라 하라. 하지만 그런 사람은 드물다. 그저 스승이라 해서 그대로 따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샘을 찾아야지 고작 물병을 따라가서야 되겠는가?"
단순히 만족할 수 없는 호기심과 흥미, 시체 썩는 냄새를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열정과 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탐구 정신. 그 모든 것들 위에 책에서 얻은 것에 의지하지 않으려 부단히 실험과 관찰로 이어갔던 모든 과정들이 탁월한 지점으로 다빈치를 이끌었다.
그는 자연의 모든 것을 연구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인 아립인들이 남긴 책을 뒤적이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 실제와 일치하는지를 항상 확인하려 했다. 그렇게 눈을 크게 떴기에 예전의 누구보다도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사물을 그저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때문이었다.
- <곰브로비치 세계사> 중에서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스케치하며 연구하는 그는 비행기의 가능성을 내다보았고, 인간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했다. 또, 바닷속에서 사람이 오랫 동안 머물 수 있는 방법도 예측했지만, 인간이 이를 위험하게 남용할 가능성도 감지하고 자세하게 기록해놓지 않았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미 지동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다빈치의 노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시대에 이를 자세히 파고들면 어떤 파장을 몰고 올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비밀스럽게 한 문장으로만 적어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언젠가 카이스트의 교수님과 이야기하다가 들은 말이 떠오른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의 견해다.
위대한 사람을 따라하지 말라는 알베르티의 가르침은 예술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문 교육에 포함시킬 수 있는 기술(Art)와 손으로 하는 일을 구분하였다. 손으로 하는 일은 비천다기 때문에 신사의 품위에 걸맞지 않는다고 했고, 그림 역시 손으로 하는 일이니 낮게 보고 예술로 보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한여름밤의 꿈>에 등장인물들 중 가구공이나 땜쟁이 같은 기술자들의 캐릭터가 묘사된 부분들이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다.
다빈치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록한 고대의 속물주의에 반대했다. 그는 '그림 또한 학예에 포함되어야 하며 손으로 하는 노동도 시를 쓸 때 손을 쓰는 노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이것이 사회가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다빈치의 야심이자 도전이었다. 그토록 자연을 철저히 탐구하고 과학적으로 파고든 것은 당대의 비천했던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는 그의 예술을 과학적인 토대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그가 사랑하는 회화 예술을 비천한 기술로부터 존경받고 신사다운 작업으로 변경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빈치는 학문과 예술의 탐구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진리를 추구하며 시대를 앞서간 인물에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한 재능과 남다른 생각으로 인한 장벽은 없었을까. 탁월함이 오로지 장점으로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장점은 어떤 면에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연구노트는 점점 쌓여갔지만, 그림을 그리다가 궁금한 것에 파고드는 성향때문에 납기일은 매번 넘기기 일쑤였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자신의 이상은 충돌하는 일이 빈번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서른 살을 바라보게 된 다빈치에게 다른 선택이 절실했다. 자신을 알아봐줄 사람이 있어야했다. 그는 피렌체를 떠나기로 한다.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곰브로비치 세계사>, 곰브로비치
<서양미술사>, 곰브로비치
<아트인문학여행>, 김태진,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