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바른 빵을 흰 접시에 올리는 일에 대하여
논두렁 사이를 털털거리며 트럭이 다가온다.
TV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쉴 새 없이 모내기하던 허리가 이제 펴진다. 벌게진 얼굴들이 트럭을 보더니 표정이 환해진다. 트럭에서 새참이 내려지고 파릇한 논 사이에 쟁반이 내려진다. 냄비와 반찬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한낮의 상차림. 모두가 둘러앉아 뚜껑을 열고 그릇을 나누고 나서야 식사가 시작된다. 땀범벅인 한나절이었지만, 밥상 하나로 피로가 씻겨진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간단해도 장소가 어디든 상차림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은 손에 닿는 대로 허겁지겁 밥을 뜨거나, 서서 반찬을 씹지 않는다. 밖에서 먹는 새참이라 해도 그릇에 덜고, 가지런히 배열하고, 젓가락을 나누어서 식사를 한다. 이 일은 인류가 지켜온 역사이자 하나의 규칙이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의 어느 식탁도 그랬다.
바닥은 깨끗하다. 그리고 우리의 손도, 그리고 컵도.
종 한 명이 우리 머리에 화관을 씌우고,
다른 하나는 접시 위에 몰약을 돌린다, 향기를 위해서.
음식을 섞는 그릇과 꿀처럼 달콤한 와인이 담긴 단지 그리고 꽃향기가 우리 가운데 머문다.
방은 유향 내음으로 그득하고, 와인을 위한 샘물은 차고 신선하고 순수하다.
황금색 빵 덩이와, 꿀과 치즈도 있다.
탁자 가운데 제단에는 꽃 한 다발이 놓여있다.
-<크네노파스의 애가> 중에서, 코로폰
식탁의 경쾌한 리듬이 들리는 것 같다. 별다를 것 없는 한 끼를 준비하는 상차림. 음식은 단출하지만 차갑고 신선한 샘물이 정신을 맑게 해주는 듯하다. 빵과 치즈, 꽃향기만으로도 얼마든지 근사한 식탁이다. 정물화를 문장으로 펼쳐놓은 듯한 장면이다.
클로드 레비트로스에 따르면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식사 예절을 발전시키면서 인류는 야생에서 문명으로, 자연에서 문화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성경에서 식탁은 다양한 상징과 중요성이 드러나있다. 인류는 태고적부터 사냥꾼과 농부의 제사를 야만과 구별했고, 그리스도 사역의 첫 번째 기적은 가나의 결혼식에서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사람이 식사를 할 때 아무렇게나 먹지 않고 상차림을 갖추는 것은 일종의 기념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감사, 죽은 자를 위한 제사, 신에게 바치는 제의로부터 유래했다. 단순히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존중의 형식이 깃들어있다. 우리가 너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식사 시간만큼은 테이블을 따로 챙기는 이유가 있다.
가이 대븐포드는 저서 <스틸라이프>에서 정물화의 기원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정물화 (still life)는 말 그대로 정지된 생명을 뜻하며 기억되고, 바쳐지고, 기리는 생명으로서의 해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정지된 생명'이지 결코 '죽은 생명'이 아니다. 생의 일상이자 죽음의 형식이기도 한 음식이 그림 안에서 '멈춰진 시간'으로 남은 것이 바로 정물화라는 시선이다. 삶과 죽음 사이 잠깐의 멈추어진 순간. 우리는 그 고요를 'still life'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사과는 그냥 과일이 아니라 금단의 유혹과 인류의 기원을, 물병과 잔은 성찬식과 공동체 의식을, 정갈하게 차려진 상은 '눈으로 보는 잔치'이자 '신께 드리는 예배'이기도 하다.
알랭드보통은 '우리는 아이를 위해 빵에 버터를 바르고, 이부자리를 펴는 일이 경이로운 일임을 자주 잊는다.'라고 했다. 시간에 쫓겨 휘리릭 빵을 집어 들고 피로에 지쳐 이부자리에 털썩 눕는다 해도 오래전부터 인류가 이어온 일상의 경이로움, 세속적인 것들의 장엄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치고 피곤한 날일수록 테이블을 조금씩 갖추어 보는 것으로도 어쩌면 잊고 있던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빵에 버터를 슥슥 발라서 흰 접시에 올리고 스스로를 대접하거나 옆사람에게 주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말이다.
우리의 식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나 혹은 동료, 가족. 사람들과의 연결도 전부가 아니다. 그 너머의 더 큰 세계가 접시와 음식들 사이를 지난다. 농경사회에서 비롯된 음식 문화는 날씨, 더 넘어서 우주로 나아간다.
강은 양쪽으로 변덕스럽게 흐르고, 태양과 달은 하늘에서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인간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선 행복할 수 없다. 각고의 노력으로 인간은 신들을 설득하여 주기성, 즉 낮과 밤, 계절, 일정한 임신 및 월경기간, 달과 년, 그리고 수명을 만들었다. 그 대가로 인간은 신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로 했고, 그 중심이 식탁예절이 있다....(중략)
음식을 가지런히 차려먹는 것은 별들의 순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인간이 동의한 합의사항이었다.
-<스틸라이프> 중에서, 가이 대븐포트
날씨가 농사의 운명이 되던 시절,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규칙을 만들었다. 그것은 거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 신중함이 따라야 하는 것이었고 그 중심은 식탁예절이었다. 그러니까 상차림 예절은 별들의 순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과 우주의 변화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식탁 예절이 있다. 별들의 순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음식을 가지런히 차려서 먹는다. 신선하고 단순한 식탁 위 하나씩 접시가 놓인다. 물컵이 올라오고, 빈자리가 채워진다. 천정너머 저 먼 하늘의 별들도 조금씩 나아간다.
별빛아래 조금씩 내일이 열린다.
*참고 자료
<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드
<불안>, 알랭드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