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자극을 주는 친구

[다빈치 4] 레오나르도가 그런 사람이었지

by 베리티

우정을 빼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볼테르는 생각했다.


친구 좋다는 걸 누가 모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말하자면 그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정이라고 본 것이다.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랑조차도 우정에 기반하지 않으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국의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인생의 대부분은 우정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다.

"친구를 보면 어떤 사람을 내 인생의 무대에 초대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친구는 내가 직접 캐스팅한 인생극장의 공동주연입니다. 내가 지금의 나인 것도 친구들 덕분이죠."


자신을 알아봐 줄 사람을 찾아 밀라노에 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선택은 옳았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의 신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 세력이 있는 든든한 주군 아래서 그를 도우며 남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피렌체에서 사람을 만나지 못한 그는 과감하게 밀라노로 떠났다.

스포르체스코 성의 루도비코 공작은 증축 공사를 함께 할 여러 예술가들을 모집했고 그 리스트 중에 다빈치가 있었다. 피렌체 못지않은 화려한 예술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싶었던 과시욕이 남달랐던 루도비코는 자신의 조카 결혼식의 이벤트를 다빈치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 쇼의 성공으로 다빈치는 단단히 주군의 눈에 들게 되었다.


궁궐의 뜰에서 펼쳐지는 우주쇼. 다빈치가 보여준 그날의 기획은 '일 파라디소', 즉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우주쇼의 총감독이 된 다빈치의 우주쇼 스케일은 어땠을까. 촘촘한 노트 기록에서 보듯 꼼꼼히 연구하고 알아낸 과학적 지식과 독특한 발상이 펼쳐질 제대로 된 판을 만난 것이다.

별빛처럼 반짝이듯 금으로 덮인 반구로 만든 천장 조명 아래 벽에는 행성 일곱 개가 걸려있었고 유리로 빛을 비추며 그 주변으로 열두 별자리가 움직인다. 여기에 관객들에게 시를 들려주었다고 전하니, 관객들의 넋을 빼놓는 쇼였을 것이다.


다빈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평전과 기록에 따르면, 옷을 잘 입었고 류트 연주를 즐겼으며 유머감각이 있어서 사람들을 잘 놀라게 했다. 요즘 시대라면 연예인처럼 튀는 타입이 아니었을까. 패션과 음악센스에 유머까지 갖추었으면 톱스타감이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의 전형적 캐릭터와 겹쳐진다. 외모도 수려했다고 하는데, 다빈치의 스승이었던 베로키오가 남긴 조각상 '다비드'의 모델이 열다섯 살의 다빈치였다.

하지만 피렌체에서 보낸 젊은 시절의 다빈치와 밀라노에 온 그가 다른 사람이었을까?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인정받으며,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으면 사람은 변한다. 밀라노의 다빈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일 파라디소' 이벤트로 소문이 퍼져나갔고 루도비코는 원하는 것을 손에 쥔 셈이었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였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여러 일들을 함께 논의했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주군 아래서 다빈치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루도비코는 늘 유쾌하고 지적 자극을 던져주는 다빈치를 좋아했다. 평소 다빈치의 과학, 철학, 해부학, 기하학 등 다양한 관심사와 집요한 탐구정신으로 이루어진 대화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또 한 사람이 나타 한다. 루도비코가 결혼하면서 맞게 되는 아내 베아트리체. 일찍부터 정략결혼으로 준비된 절차에 따라 교육받고 소양을 갖추었는데, 그녀는 그저 양가집 규수라는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직접 말을 타고 나가 사냥을 하기도 하고, 남편 대신 회의에도 참석하여 정치력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녀 역시 예술을 사랑하는 환경에서 자라 다빈치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의 열린 마음과 태도에 매료되었다. 루도비코와 베아트리체, 다빈치는 이렇게 삼각형의 우정을 나누었고 다빈치가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다빈치는 지식만 쌓는 고리타분한 학자 타입도 아니었다. 당대의 금기를 뛰어넘기를 주저하지 않던 발상과 아이디어들은 어떤 미스터리가 되어 그를 돋보이게 했을 것이다. 궁의 한 저택에는 지붕에 비행기를 매달아 놓았다. 이런 행동 속에서 다빈치의 평소 생각이 드러난다.

다빈치는 새들이 나는 모습을 연구해서 인간도 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려 했다. 그는 인공새, 즉 비행기의 가능성을 정밀하고 상세하게 연구한 최고의 사람이었다. 인간이 언젠가 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밀라노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면서 다빈치를 신비하고도 엉뚱한 인물로 여겼다. 하지만 다빈치의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왼손잡이였던 다빈치는 글자를 거꾸로 썼고 글씨도 아주 작았기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곰브로비치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보았다. 당시 지배층이 갖는 견해에서 벗어난 생각으로 분명 이단자 취급을 받기 쉬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다빈치의 노트와 스케치북)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한 인간이 각기 다른 연구 분야에서 이토록 탁월할 수가 있으며 또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었는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아마도 그렇게 경탄하게 되는 이유의 하나는 레오나르도가 교육받은 학자가 아니라 피렌체의 한 미술가라고 생각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예술가의 임무는 더 철저하게, 그리고 더 열정적으로 더 정확하게 눈에 보이는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양미술사> 중에서, 곰브로비치


다빈치 연구자들은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돌아보곤 한다. 하지만 그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베아트리체는 출산을 하다가 숨을 거두고, 루도비코 역시 프랑스군과 싸우다가 감옥으로 가게 된다.

친구를 잃은 다빈치는 다시 갈 곳을 잃고 10여 년 동안 방랑 생활을 한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가 평생에 걸쳐 기록해 온 노트와 습작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는 걸어야 했다.


(다음 편에서 다빈치의 미스터리한 면모와 작업에 대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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