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5 ]모나리자 미스터리 그리고 뱅크시
한 해 천만 명 가까운 사람이 찾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 작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하지만 흔히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그림이기도 하다고. 더불어 가장 실망스러운 그림으로 설문조사에 꼽히기도 했다.
오래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비행기로 날아와 어렵게 예약하고 몇 시간씩 줄 서서 대기한 끝에 겨우겨우 <모나리자> 앞에 섰다.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이지만, 문제는 그 순간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감격에 겨워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고 거의 떠밀리다시피 하여 옆자리로 이동한다. 진정으로 그 작품을 한참을 바라보며 찬찬히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할까?
그 작품을 그리던 손길과 고민, 세월, 정성 그 모든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할 수 있는 관객이 있을까.
루브르는 지나치게 몰려드는 관객 때문에 감상의 본질적인 기능을 잃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유명 미술관이라면 모두 해당되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라도 조금 유명 전시를 찾아가면 어쩔 수 없이 인파에 떠밀려 핸드폰으로 찍고 이동하는 반복을 거치게 된다. 그나마 바로 앞에서 붓터치라도 잠깐 볼 수 있으면 다행이지, 다른 관객들의 뒤통수만 실컷 보고 그림은 핸드폰이 보고 오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남는 것이 없는 기분이 든다. 눈에만 담고 싶어도, 사진으로라도 남기지 않으면 발을 떼면 그림과도 안녕하는 것 같다. 이렇게 결국 핸드폰을 들게 된다. 이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이렇게 인기폭발인 작품 <모나리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의 작품은 그 인물의 생애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딘가 신비스러운 면모가 있었던 다빈치의 작품 역시 세상에 나오면서 어떤 미스터리를 거친다.
1911년 8월 파리의 가판대가 들썩였다. 신문에는 텅 빈 루브르의 벽면 사진이 크게 실렸다. 그 벽은 <모나리자>가 걸려있던 자리였다. 그 사진은 강렬하게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았다.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신문에 거의 3주 도배되며 동안 프랑스를 뒤흔들었고, 루브르의 수많은 명작 중 하나 정도로 지나치던 그 그림이 갑자기 간절해졌다. 당시만 해도 이 정도로 유명한 그림은 아니었다. 그저 전문가들만 알아주는 정도였던 <모나리자>가 갑자기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범인은 어느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그는 이토록 걸작이 프랑스 낯선 땅에 걸려있는 것이 못마땅했고 피렌체의 우피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우피치에 이 그림을 팔려고 하는 순간 검거되어 루브르는 2년 만에 <모나리자>를 되찾았다. 이렇게 돌아온 <모나리자>는 더 이상 예전의 그 그림이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모나리자>가 된 것은 불과 백여 년 전의 일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 작품이나 다빈치나 그전까지 이렇게까지 주목받은 인물은 아니었다.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뒤 루브르에 몰려든 군중들은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을 입증해 주었다.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이란 물이라는 텅 빈 장소, 다시 말해 미술작품과 그것이 점하고 있는 장소 사이의 틈새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 <모나리자 훔치기> 중에서, 다리안 리더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온전히 순수하게 작품성으로만 유명해지는 일이 가능한가?
<모나리자>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이 사건은 실제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여러 이슈들을 가져왔다. 한편으로 현대미술의 맥락에서도 한 가지 퍼포먼스처럼 바라볼 수도 있다.
이미 그 주제를 맹렬하게 쫓던 현대미술가가 존재하지 않나. 이제는 비싼 작가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 영국의 작가 뱅크시는 직접 미술관에 뛰어들어 이를 증명했다.
뱅크시는 수염을 달고 변장한 채 대영박물관에 들어가서 몰래 쪼개진 돌을 벽에 걸어놓았다. 돌 위에는 쇼핑 카트와 원시인, 화살 맞은 소를 낙서해 놓고 '쇼핑하는 원시인'이라는 작품명으로 설명서까지 붙였다. 뉴욕 현대미술관에도 같은 방법으로 들어가서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그림 비슷하게 '테스코 깡통 수프'를 걸어놓았다. 자연사박물관에는 '미사일을 딴 딱정벌레'라는 묘한 장난감을 붙여놓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자연사박물관, 대영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을 다니는 동안 나도 이 정도는 그릴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실제로 시도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 뱅크시
3일이든 5일이든 관객이든 미술관 관계자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 퍼포먼스로 순식간에 뱅크시는 스타가 되었다. 그가 가짜로 걸어놓은 작품들이 비싸게 팔렸다. 이 일로 사람들은 과연 유명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위트를 가진 작가라면 여기서 이대로 진지해질 리가 없다. 뱅크시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이번 역사적 사건이 미술계를 놀라게 할 어떤 목적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가짜 수염과 초강력 접착제에 대한 현명한 사용법과 관련이 있을 뿐이다."
알다시피 뱅크시는 거리 낙서, 그라피티 작가다. 담벼락 낙서가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영국의 동네 골목마다 뱅크시의 낙서의 손길을 기다린다. 순식간에 핫플레이스가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브래드 피트 같은 스타들이 앞다투어 그의 작품을 사들인다. 이제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 못지 않게 뱅크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쩌면 다빈치가 부럽지 않을지도 모른다.
뱅크시의 에피소드가 유명함에 대한 하나의 질문일 뿐, 그렇다고 미술관의 모든 그림들이 거기에 걸렸기 때문에 유명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중 어떤 작품들은 이유를 모르겠지만 거기에 걸려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쨌든 유명하기 때문에 더 유명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다. 속이 텅 비었든 꽉 차있든 사람들은 남들이 열광하는 것에 열광한다. 비어있기 때문에 더 열광하기도 한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미스터리했던 그의 삶만큼이나 세상에 나와서 작품으로서의 생을 겪어야 했다. (정말로 작품은 작가를 닮아서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그 그림자체가 미묘한 미소를 품고 있을뿐더러, 그 미소를 그리기까지 수많은 노트의 연습을 거쳤을 것이다. 어쩌면 그 작품을 너무나 아껴서 훔치기까지 했던 광팬의 열정이 호기심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세상이 감당하기에 벅찬 그림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음 편에 다빈치의 모나리자 본격적 이야기로 갑니다. 쓰다 보니 다른 내용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