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호텔의 천정 높고 우아한 방에서
언젠가 글이 잘 써지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친구는 비행기에서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 된다고 느낀다고 했다. 지상에서 점점 멀어져 공중으로, 하늘로 붕 떠있는 그 설렘이 창작에 대한 박동으로 이어진다. 투덕투덕 노트북의 자판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하늘에서는 다른 사람이 된다.
나는 호텔에 있을 때 잘 써진다. 일단 집을 떠나 낯선 공간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집안일에서 멀어졌다는 해방감이 좋다. 커다란 창 너머로 노을이 지는 풍경이 보이면 거대한 이야기 속에 잠겨있는 도시의 일원이 된 기분이 든다. 여행지에서는 온종일 방에만 머물지 않으므로, 바깥으로 다니다 다시 돌아와서 테이블에 앉는 그 리듬감도 좋다. 그래서 여기저기 많이 찍으며 다니는 여행보다는 마음에 드는 동네를 골라 오래 머무는 로컬스타일 여행을 더 좋아한다.
카프카는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지 않았다. 그는 알려진 것보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 평생 프라하에서 살긴 했어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닐 궁리를 꽤 했던 것 같다. 특히 좋아했던 괴테를 기리며 바이마르에 머물던 여행 기록이 있다.
사랑하는 누이들, 그리고 부모님, 우리는 무사히 바이마르에 도착해 (평방 이 미터 크기의) 정원이 내다보이는 조용하고 멋진 호텔에 방을 얻어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게 편지를 쓴다. 바이마르, 1912. 6.30
어떤 것들이 여행의 목적이 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사람을 좋아하면 그가 사는 동네를 가보고 싶어진다. 그가 발 딛던 동네의 길을 걷고, 산책하던 곳, 일하던 장소, 식당이나 카페까지 돌아다녀보고 싶어진다. 카프카의 경우에는 괴테였다. 카프카에게 괴테는 숭배를 넘어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1912년 6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그 여름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와 함께 괴테 문학여행을 떠났다. 사건 사고가 기다리고 있는 직장이 아니라, 자신이 동경하는 작가를 쫓아 낯선 땅에 도착한 카프카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을 것이다.
밤중에 괴테의 집으로 걸어갔다. 즉시 그 집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온통 황갈색빛이었다... 나는 그 집의 벽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피부를 만지는 것 같았다. 그 집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지만, 그 안에 깃든 거대한 존재감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괴테의 집의 공식 관람을 마치고 나서도, 카프카는홀로 밤에 그곳을 다시 찾아갔다. 황갈색의 신비로운 빛으로 덮인 벽의 감촉을 손으로 더듬으며 거장과 연결되고 싶어했다. 압도적인 전율... 그 뒤에 찾아오는 것들을 알고 있다.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감각하고 난 뒤에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한없이 작은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괴테의 열성팬이었던 카프카 역시 그랬다.
정원을 걸었다. 괴테가 밟았을 그 흙 위에 내 발을 올려두는 것이 송구스러웠다. 이 정원의 모든 나무와 꽃들은 그의 시선 아래서 자라났다. 나는 이곳에서 그가 느꼈을 평온함의 백 분의 일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일 뿐이다.
거장의 거대한 존재감 앞에서 카프카는 자신은 역시 보험국의 직원일 뿐인가 하는 자격지심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다.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괴테의 문장을 '강렬한 혈액의 흐름', '완결된 우주'로 표현했다. 자신처럼 하숙방에서 간신히 글을 쓰는 사람과는 다르다고 보았다.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와 함께 바이마르의 호텔 헴니티우스(Hotel Chemnitius)라는 곳에 묵었다. 그는 공간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일기나 편지에 공간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그는 호텔의 큰 창과 묵직한 가구들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호텔 헴니티우스의 우리 방은 무척이나 컸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구석에 놓인 짙은 색의 육중한 옷장과 나무 책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성(城) 같았다. 가구들은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채 정중하게 나를 맞이했고, 그 위엄 있는 정적 덕분에 나는 보험국의 소음에서 완전히 격리될 수 있었다.
여행의 목적은 결국 그것이었다. 보험국 직원이라는 신분을 벗고 온전히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맞아주는 장소. 그는 안락한 숙소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짙은 색의 옷장과 나무 책상 가운데에서 프라하의 직장인으로서 억눌려있던 스스로를 다시 발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프카가 특히 좋아하던 물건이 그 방에 있다. 일기는 이어진다.
"특히 그 넓은 책상 위에 호텔 로고가 박힌 편지지를 펼쳐 놓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요즘에도 종종 볼 수 있는 호텔방 책상 한쪽에 놓여있는 로고가 박혀있는 메모장! 카프카는 그 메모장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 메모장에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이 보험국의 직원이 아니라 자유로운 여행객이자 작가라는 인식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나도 호텔 로고 메모장을 쓰곤 했는데, 카프카처럼 글을 써볼 욕심을 내보았던가. 주로 간단한 메모나 맛집 같은 기록들을 남기곤 했었다. 하지만 그 종이를 쓴다면 평소와 다른 것들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바깥으로 낯선 카페를, 호텔을 찾아 떠나는 걸까.
카프카는 공간이 주는 권위와 해방감을 자신의 글쓰기에 적극적으로 가져왔다. 호텔의 우아한 이미지를 빌려와 여행자이자 작가로서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호텔 메모장은 언젠가 떠날 장소의 기록이다. 사라진다는 느낌이 훨씬 자유롭고 생생한 문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가 종종 집 밖을 나와 카페나 호텔을 찾는 것은 카프카처럼 장소가 주는 마법의 힘을 빌어 창작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때로 종이 한 장의 차이로도 새로움을 찾아낼 수 있다.
나의 노트북에는 몇몇 카페의 와이파이들이 저장되어 있다. 수고스럽게 비번을 찾아내어 입력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노트북을 펼치면 바로 와이파이에 연결된다. 때로, 별자리처럼 이어진 나의 작업 카페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제는 호텔 메모장에도 낙서 말고 좀 색다른 것들을 끄적여봐야겠다. 100년 전 바이마르 헴니티우스호텔의 카프카처럼.
(호텔 메모장에 어떤 글을 썼는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