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에게도, 일의 기쁨과 슬픔
(지난 글에 이어집니다)
사람은 언제부터 시계를 보게 되었을까.
흙바닥에 막대를 꽂아 만들었던 해시계를 보면 고대를 떠올리게 되지만, 의외로 현대인들처럼 바쁘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시계를 보며 종종거리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 기차의 등장 이후였다.
기차와 시계? 기차와 시간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기차는 눈에 보이는 '빠름'이었다. 날아가는 새도, 공중의 화살도 다 빠르지만, 사람이 빨라질 수 있다는 신호탄 같은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개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 실체가 드디어 눈앞으로 튀어나왔다.
기차가 없던 시절에는 마을마다 시간이 조금 달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서울의 정오와 부산의 정오는 해의 각도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으므로,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기껏해야 말을 타거나 걷는 이동수단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오히려 정확히 도착하고 출발한다는 것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기차는 달랐다.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간이 다르면 여러 기차들이 엉켜 충돌의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애초에 같은 기준의 시계가 필요했다. 이때 유럽은 기차표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표준시를 정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사람은 기차를 놓치면 큰 일이라는 관념이 생겼고, 이제 시계를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위대한 일은 사소한 일상을 가장하여 찾아오는가. 시계를 맞추는 일을 하던 그 사람은 시간의 과학자가 되었다. 이 기차표 시계 맞추는 것을 업무로 하던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특허청에 근무하면서 지역마다 다른 시계를 동기화하는 기술을 심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직업적으로 기차를 더욱 빠르게 달리게 하려고 시간을 통일했지만, 맡겨진 업무가 끝난다고 해서 업무 종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일은 질문을 더욱 키웠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일찍부터 정규교육제도의 모범생과는 거리가 한참 먼 그가 이 질문에 파고드는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그는 몰래 서랍 속에 자신의 연구 노트를 숨겨 놓고 상사가 보지 않을 때 꺼내서 보았다. 인류 역사상 위대함의 대명사인 인물이 커닝하는 학생도 아니고, 상사 눈치 보면서 서랍을 열고 닫았을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난다. 하지만 애초에 특허청에 취직을 한 것도 대학 시절 교수들의 호의를 얻지 못해 조교 자리 하나 구하지 못해서였다. 강의실에도 나타나지 않고 혼자 카페에서 물리학 논문을 보고 있는 학생을 좋게 보는 교수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훌륭한 점이 여기에 있었다. 그는 '놀 줄 아는 사람'이었다. 권위자들이 내리는 평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았다. 위트 있는 언행들, 장난기 넘치는 혀를 내민 사진들에 평소 태도가 드러난다. 그는 왜 그들의 표준이 나와 다를까 고민하지 않았다. 유연하게 여러 생각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가지고 놀았다. 이런 식이었다.
그 서랍 속의 노트는 후에 상대성이론의 기초가 되었고, 그는 그 서랍을 이렇게 불렀다. "나의 이론 물리학 학과(Department of Theoretical Physics)". 국가기관인 특허청 안에서 딴짓하던 서랍을 하나 두고 자신만의 대학교로 삼았던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맡은 업무를 잘 해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워낙 천재였으니까. 하고 단정해버리기엔 아인슈타인이라고 해서 모든 것들이 다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프카가 2시에 퇴근했다 해도 직장생활의 고단함이 없었을까. 그들도 일의 슬픔과 기쁨을 아는 직장인들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근무하는 특허청을 '속세의 신발공장(worldly shoemaker's shop)'이라고 불렀다. 먹고살기 위해 기계적으로 일해야 하는 장소라는 뜻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서신과 전기에서 그 기록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이 신발공장에서 매일 8시간 동안 쓰레기 같은 서류를 뒤지며 내 머리를 썩히고 있네."
"하루종일 남의 사무실에 앉아 남의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나면 정작 내 우주를 돌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 퇴근 후에는 솜사탕처럼 멍해진다네."
다른 일을 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하는 이중생활에서 찾아오는 갈등은 천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도 결함을 찾아내는 기술적인 업무가 자신의 창의적 에너지를 앗아간다고 느꼈고, 생업에서 소진되는 능력에 대해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그러면, 온전히 원하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직업을 얻으면 이런 불만들은 없어졌을까.
후에 교수가 되었을 때 아인슈타인은 이제야 연구에 몰입할 수 있다고 기뻐했을까. 뜻박의 대답이 들린다.
"베른의 특허청은 내가 진정으로 위대한 아이디어를 낳았던 곳이자,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비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학계 유명인사가 되고 끊임없는 강연 요청과 논문 심사, 정치적 활동에 시달려야 했다. 오히려 아무도 자신을 주목하지 않던 특허청 시절이 오로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특허청은 자신에게 오히려 세속적인 수도원이었다고 고백했다. 카프카나 아인슈타인에게 직장은 자신의 작업을 지켜나가기 위한 비용을 지불하는 정거장 같은 곳이었다.
지금, 바로 여기만 벗어나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사람이 가장 흔하게 하게 되는 착각이 아닐까 생각해보곤 한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오는 것이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환경이란 그저 희망사항이지는 않을까. 사람은 너무 쉽게 그 사실을 잊는다.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과학자가 되려는 후배들에게 이런 조언을 남겼다.
"생계를 위해서는 등대지기나 수선공 같은 소박한 직업을 가져라. 그래야 남는 시간에 진정으로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
카페에서 고민을 나누던 밴드 멤버들에게 힌트가 될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온전히 음악에만 매달린다고 해서 음악이 더 좋아질 확률은 기대만큼은 못 미칠 수도 있다. 더구나, 이렇게 가끔씩은 친구를 만나 대화하며 숨통을 틀 수 있으려면 비용이 필요할 텐데, 그 시간조차 의지로 끊어버릴 수 있까.
시간만 많이 주어지면 모든 일이 잘 될 것 역시 기대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많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다 들어맞는 법칙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어차피 편한 일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디폴트로 받아들이고 지금은 지금의 고민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보험국의 일을 하며 관료제의 현실을 자신의 생활로 겪어 소설 속에 녹여내고, 표준시를 맞추는 업무를 하다가 시간의 원리를 발견한 일들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일상과 업무는 세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한 사람의 생애를 움직인다.
그렇게 위대함은 우연을 가장하여 찾아온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거 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 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줄 것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드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