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글쓰기로 연결시키는 법

괴테의 마법과 '마가레테적 순간'을 기억하며

by 베리티

(지난 글에 이어집니다.)


한 번쯤 기대하게 되는 여행의 판타지가 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와 셀린느는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인가. 영화나 소설의 영원한 테마인 한 그 사건이 왜 나에게만 유독 일어나지 않는가! '나에게만 오지 않는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때로 그 기대는 분개하는 결말 혹은 체념으로 향하게 된다. 이럴 때 소설가들의 위트 섞인 문장이 조금 위로가 될까.


"기차 옆자리에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말을 걸어오는 일 따위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대개는 땀 냄새나는 중년 남성이나 쉴 새 없이 떠드는 단체 관광객이 앉기 마련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비행기 옆자리의 로맨스는 영화 속 이야기일 뿐, 현실의 옆자리는 대개 팔걸이 침범 전쟁을 벌여야 하는 타인의 영역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나에게만 오지 않는 행운인 것은 맞지만, 다행인 것은 그 '나'는 오직 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럴 때 다행이란 말을 쓰는 건가?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하면서 체념한다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나, 그렇게 아무 기대 없는 여행이 흥미로울지는 미지수이다.


기차의 옆자리는 아닐지라도, 카프카에게는 그 행운이 찾아왔다. 바이마르의 괴테하우스를 한창 둘러보고 있을 때, 그는 로테를 사랑했던 베르테르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한 소녀를 바라보게 된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동생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순수한 모습에 반하는데, 카프카는 정원에서 해맑게 웃는 마가레테에 끌리게 된다. 괴테하우스라는 그가 사랑하는 공간에서 빚어낸 환상처럼 카프카는 그 소녀를 보자마자, 관료주의에 찌든 자신을 잊게 하는 단순하고도 투명한 문학의 세계에 도착한 것이다. 시공간이 뒤섞인다. 18세기 괴테의 공간과 20세기 카프카의 시간이 만났다. 괴테하우스의 고전적 유무들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소녀를 마주쳤다. 이제 생동감으로 반짝이는 길이 남겨져있다. 카프카는 '괴테의 세계에서 걸어 나온 듯한 생동감'을 느꼈다고 일기에 적었다.


마가레테는 괴테하우스 관리인의 딸이었고 방문객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카프카가 머물던 헴니티우스호텔의 창밖으로는 괴테하우스의 정원이 보였다. 숙소에 머물면서 카프카는 창가에서 마가레테를 보게 되었다. 창문이라는 프레임은 잠깐의 만남을 스토리로 이어주었다. 카프카는 펜을 들었다. 호텔 로고가 있는 그 메모장에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오늘 오후 내내, 그리고 저녁이 다 될 때까지 내 방 창가에 서서 당신이 정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당신이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하고, 이따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그 모든 순간을요...혹시 저에게 몇 마디 글을 남겨주실 수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카프카가 마가레테에게 보내는 편지


호텔 로고가 있는 메모장은 쓴 사람이 이방인이며 곧 떠날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고, 받는 사람에게 한결 부담 없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 편지는 호텔 관리인에게 전해졌고, 답장도 받았다. 그리고 정원에서 마가레테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아마도, 카프카의 생애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카프카는 낯선 사람 앞에 선뜻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여행에 동행했던 막스 브로트가 이를 답답히 여겨 마가레테의 부모님에게 제안하여, 드디어 사진 촬영이 이루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장소는 마가레테의 집 정원이었고, 카프카는 평소보다 잘 차려입고 왔다고 되어있다. 감출 수 없었던 미소가 인상적인 사진이라고 하는데 오래되어서 선명하지는 않다. 흥미로운 것은 소녀의 바로 옆에 앉기 보다, 팔걸이에 걸터앉은 적당한 거리감이다. 조심스럽고 예의바른 그의 성품이 엿보인다. 함께 사진을 찍은 날, 카프카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마가레테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어깨가 내 팔에 살짝 닿았을 때, 나는 바이마르의 모든 유령(문호들)이 우리를 축복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


프라하 보험국을 잊은 여행자의 설레는 미소가 사진으로 남았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괴테는 로테를 향한 파멸적 사랑으로 뛰어들었지만, 언제나 관찰자였던 카프카는 창문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는 그 시간이 괴테의 마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없을 '마가레테적 순간'을 기억했다. 호텔 로고가 박힌 메모지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행자의 시간이요, 이방인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당시, 29세의 카프카가 16세의 마가레테에게 보낸 감정은 문학적 세계 안에서의 호감이었을 것이다. 문학적 휴가였고,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카프카는 자신에게 말하듯 일기에 썼다.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창가에 서서 그녀가 부서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1912년 7월 15일, 바이마르를 떠나는 기차 안에서 카프카는 마가레테에게 엽서를 썼다.


"나는 이제 떠납니다. 하지만 바이마르에서의 이 며칠을, 그리고 당신의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이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습니다."


프라하의 연금술사 골목, 작은 방에 다시 불이 켜졌다. 카프카는 마지막으로 소식을 남긴다.


"당신이 보낸 답장을 다시 읽으며, 당신이 있는 그 정원의 풍경을 프라하의 내 방으로 옮겨오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괴테의 마법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이제 카프카의 책상에 내려앉았다. 그는 바이마르 여행을 마치고 나서 소설 <판결>을 써 내려갔다. 바이바르의 헴니티우스호텔 창가에서 바라본 세상은 그의 작품 속으로 녹아들었다.


카프카의 괴테를 기리는 바이마르 여행의 에피소드는 몇 가지 카프카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한다. 카프카는 직접적 만남보다 거리감을 둔 관찰에서 영감을 얻는 작가이다. 그의 일기나 편지에 창가에서 바라본 풍경에 대한 기록이 많은 것은 그런 카프카의 성향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는 '무목적성 글쓰기'에 대한 활용이다. 완성된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시작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우연히 마주친 호텔 로고가 있는 메모장이나 영수증, 냅킨에 적어둔 낙서 같은 메모들이 아무 의미 없어 보여도 나중에 어떤 어떻게 쓰일지는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끄적이는 그 순간만큼은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다는 사실이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