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카프카의 또 다른 원고지

서가의 꿈과 욕망의 책장 사이에서

by 베리티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보는가.


너무 답이 뻔해서 시시한 질문일까. 어릴 적 친구집에 갈 때부터 항상 그랬다. 그 방의 책장을 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느새 책장 앞을 서성이고 있다. 그러다 책을 서로 바꿔 빌리거나, 이야기로 이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책장의 책이 서로 뒤바뀌기도 하고, 어디서 왔는지 기억이 안 나는 책도 꽂혀있다. 지금은 안 만나는 친구의 책도 보인다. 책장이야말로 그 주인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근데, 그걸 다 읽는 사람도 있어요?"

세상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 책들을 다 읽는다는 가정은 의미 없다. 그보다는 앞으로 이런 책들을 읽을 것이고, 이런 책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라는 쪽으로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책장은 자아의 환상적인 근거를 구성한다는 문장을 읽었다. 공감이 가는 해석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전자책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소장목록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왜 굳이 종이책의 책장이 필요한가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그런 집에는 오래 머물기 어려울 것입니다. 숨이 막혀서. 왜냐하면 그 방에 사는 사람의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달라'는 정보가 너무 없기 때문입니다.'


책장에서 한 사람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그 유명한 개츠비의 책장이 떠오른다. '올빼미 눈(owl eyes)'이라는 사람이 개츠비의 서가를 보며 이렇게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다 진짜입니다. 페이지도 빠진 게 없어요. 난 저 책들이 딱딱한 판지만 붙여서 겉만 번드레하게 꾸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진짜 책이더란 말입니다. 여기 보세요. 한번 보여드리지요!"
그는 우리가 미심쩍어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듯이 서가로 달려가 <스토더드 강의록> 제1권을 뽑아서 가져왔다. "보세요!" 그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진짜로 인쇄된 정본입니다. 이건 나를 깜빡 속아 넘겼어요. 이 친구는 진정한 벨라스코입니다. 이건 대단합니다. 정말 완벽합니다. 이 놀라운 사실주의! 언제 멈춰야 할지도 알고 있습니다. 페이지를 종이칼로 베지도 않았어요. 여기서 뭘 더 원합니까. 더 이상 뭘 바랍니까?"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이게 무슨 얘기일까? 책이 진짜라는 건가, 페이지를 베지 않아서 가짜라는 건가, 도대체 뭔 소리인가?

(이런 특징들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소설 전체가 그렇듯 이 단락 역시도 개츠비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뜻을 알 수 있다.)

조사를 해보니 그 시대에는 나무통으로 책처럼 만들어서 책장을 장식하던 관습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책은 중요한 인테리어 역할을 하니까. 그래서 올빼미눈은 우선, 진짜 종이책이라는 것에 놀란다. 요즘에도 책장을 거칠게 마감처리하는 원서들을 볼 수 있는데, 19세기초 전지를 책으로 이어서 붙이는 출판기술로 인해 페이퍼 나이프로 붙은 책장을 뜯어가면서 읽는 책들이 있었다고 한다.

진짜 종이책인 데다가, 페이지를 베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뜯지도 않았다는, 그러니까 안 읽었다는 뜻이다. 나무통이 아닌 진짜 손도 안 댄 깨끗한 양장본들로 책장을 채웠다는 의미에서 그는 개츠비의 사실주의- 완벽한 연출을 칭송하고 있다. 당대 최고 연극연출가인 벨라스코에 비유했다. 이 완벽한 연극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유일한 꿈인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낭만은 이렇게 세세한 디테일로 드러났다. 그는 책장에 책 하나 허투루 꽂는 사람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진짜를 택했다. 아직 뜯지 않았다는 것조차 그의 순수함의 상징일지 모른다. 이렇게 높은 지성과 신분을 뒷받침해야 했다. 개츠비의 책장은 그렇게 읽히지 않는 책들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방향에 서 있는 카프카의 책장은? 그 책장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있었을까.

카프카는 피츠제랄드처럼 소설에서 서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일기와 기록을 많이 남긴 덕분에 그의 독서 목록을 살펴볼 수 있다. 카프카 사후 유품과 장서를 정리된 목록이 있다.


앞서 괴테하우스로 여행한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 괴테의 작품집과 서신이 대량으로 있었고,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을 특히 좋아해서 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카프카는 그의 완벽주의 문체를 동경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의 일기를 열심히 읽었는데, 그의 독신에 대한 고민에 공감했던 것으로 보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인간의 심연을 다룬 러시아 문학도 카프카의 책장을 채웠다. 법학 박사인 카프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탐독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엇보다도, 카프카는 영적이고 철학적인 탐구에 깊이 들어갔다. 특히 성경을 열심히 읽었고 이를 자신의 문학의 뿌리로 삼았다.(이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뤄보고 싶다)


연금술사 골목의 작은 하숙방 같은 작은 공간을 주로, 작업실로 썼던 카프카가 규모 있는 책장을 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좋아하는 책들을 깊이 여러 번 읽는 독서가였다. 위의 아끼는 책들이 있던 책장에는 직장인으로서 법률 및 보험 서적, 업무 보고서도, 또 채식주의 관련 책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여러 번 읽어 닳은 책들이 많았고, 책 페이지에는 엄청난 가필과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는 책 여백에 자신의 생각이나 떠오르는 문장들을 적어 넣었다. 책 자체가 카프카에게는 또 다른 원고지인 셈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페이지 위에 자신의 생각을 보탠 대화가 더해서, 그야말로 나만의 책이 되었다.


구스타프 야누흐가 쓴 <카프카와의 대화>에는 스무 살 아래 청년 야누흐와 카프카가 책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다. 청년은 스무 살 열정 그대로 카프카가 언급한 책들을 기억했다가, 읽고 난 후 그를 만났을 때 질문도 하고 의견도 나누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 감탄이 흘러나온다. 스무 살 즈음 책을 읽으며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카프카 같은 사람을 친구로 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느 날, 야누흐가 카프카의 책상 위로 자신의 가방을 털어 가지고 있는 책들을 보여준다. 대부분은 신간서적들이다. 카프카가 이 책을 모두 읽을 거냐고 묻자 청년은 고개를 끄덕인다. 카프카는 말한다.


"당신은 하루살이들 때문에 지나치게 수고를 하는군요. 이러한 현대서적의 대다수는 현대를 순간적으로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아요. 이 현대서적들은 무척 빨리 소멸하죠. 당신은 옛날 서적을 더 많이 읽어야 해요. 고전을. 괴테를요. 고전은 가장 심오한 가치를 외부로 발산하죠. 그것이 바로 영속성이라는 것이죠. 단지 새롭기만 한 것은 덧없죠. 그것은 오늘은 아름답지만 내일은 가소롭게 보이죠. 이것이 문예의 길이예요."

-<카프카와의 대화>, 구스타프 야누흐


책의 취향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청년의 삶은 분명 그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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