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수트를 입은 고딕 예술가의 밤 (1/3)

카프카와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에릭 사티

by 베리티

지독한 추위가 예고된 한 주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꽁꽁 얼어붙은 길고 긴 겨울밤, 창 너머 바람소리만 들리는 뾰족한 첨탑이 있는 고딕스타일의 오래된 성에 밝혀진 세 개의 불빛. 그곳에 아주 짙은 밤의 동반자, 세 사람이 있다. 블랙 수트를 즐겨 입는 각기 다른 시대의 이 세 사람은 시린 겨울을 견디게 해 줄 자기만의 방을 밝히고 있다.


#1. 룸 넘버 13.

이곳은 에드거 앨런 포의 방이다. 포는 평생 가난에 시달렸지만, 언제나 뻣뻣하게 다려진 검은색 프록코트와 정갈한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그 칠흑 같은 검은 옷은 넓은 이마와 움푹한 두 눈을 더 돋보이게 했다. 얇은 입매에 웃음기는 없지만, 눈동자는 아이처럼 늘 총총 빛나고 있었다.

그 방의 한쪽 난로엔 장작들이 타고 있다. 이제 창밖에는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창가엔 뿌옇게 수증기가 입김처럼 닿는다. 낡은 책상 위엔 수지 양초가 가느다란 빛을 내며 타들어가고 있다.

1826년, 열일곱 살의의 포는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하여 '서부 산맥(West Range) 13호' 방에 머물렀다. 포는 양아버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고, 그 때문에 늘 생활이 어려웠다. 땔감을 살 여력조차 없었다. 마지막 장작이 타들어갈 때, 다 꺼져가는 불씨를 마주할 수 없었다. 깊은 절망에 굴복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나무 테이블을 부수었다. 쪼개지고 어긋난 나무들을 난로로 던졌다. 어떤 학생에게는 공부조차 사치로 다가왔다. 그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글을 쓰던 나무테이블도, 종이까지 다 난로에 던져버리고 이제는 모두 타버린 절망을 피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장작으로 다 타버린 숯을 집어 들었다. 손에 거뭇한 재가 묻었다. 그는 비어있는 벽에 다가가 그림을 그리고 써 내려갔다. 잿더미의 매캐한 냄새와 자욱한 연기 너머로 기괴한 그림들이 검은 얼굴을 하고 그 방을 내려다보았다. 생존을 위한 제사가 그렇게 마쳐졌다.


#2. 룸넘버 29

1914년. 시곗바늘은 오후 3시를 향해 가고 있다. 한낮의 창밖은 눈부실만큼 환하다. 방 문을 열고 검은 양복과 실크 모자를 쓴 남자가 들어온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옷차림을 좋아한다. 열린 창문을 닫고, 벽의 히터를 틀어놓는다. 옷걸이에 옷을 걸고, 한참 창밖을 내다본다. 성 아래로 아이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본다.

그 방은 프라하의 연금술사 골목 22번지의 하숙방을 닮았다. 작은 침대와 옷걸이, 책상과 한쪽 끝에 책장들이 보인다. 카프카는 의자에 다리를 뻗고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책상 위에 놓인 책을 집어든다. 에드거 앨런 포의 선집이다. 얼마 전 구스타프 야누흐가 선물한 바로 그 책. 그는 야누흐에게 말해주었다.


"포는 환자였어요. 그는 무방비상태에서 세상과 맞섰던 가련한 사람이었어요...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환상에는 현실에서처럼 그렇게 함정이 많지 않아요."

카프카는 포의 몇몇 소설을 읽어보았다. 그는 포가 꿈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꿈속에는 언제나 가공되지 않은 일상의 경험들이 무수히 많이 들어 있지요."

우리의 삶은 '일상도 아니고 꿈도 아닌, 꿈과 일상 사이에 떠도는, 꿈과 일상 사이에서 빚어진 무엇'이 아닐까. 그날 밤, 카프카의 일기는 이렇게 쓰였다.


5시 무렵, 최후의 잠 한 조각까지도 모두 소진되어 버리고 나면, 그때부터는 오직 꿈을 꿀 뿐이다. 그것은 깨어있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

-1914년 일기


#3. 성 밖의 밤하늘

그들이 머무는 성 너머로 멀리 까마귀가 날아간다. 눈 내리는 밤은 더욱 짙고 깊다. 새의 울음은 경계가 희미해진 하늘과 어둠 너머로 길게 들려온다.

카프카와 에드거 앨런 포,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끈이 있는 것 같다. 혹시 '까마귀'라는 단어 때문일까.

'카프카(Kafka)'는 체코어로 '갈까마귀(Kavka)'라는 뜻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유명 시 역시 '갈까마귀(The Raven)'이다. 두 사람의 내면 어느 한 구석에 이렇게 까마귀들이 날개를 접고 있었을까. 까마귀도 여러 종류가 많을 텐데, 어떻게 동시에 '갈까마귀'인가.

같은 갈까마귀라는 이름이어도 유럽과 미국이라는 자연환경은 또 달랐으니 생물학적으로나 문학적 의미로나 좀 다른 듯하다. 카프카의 갈까마귀는 우리가 아는 보통 까마귀보다 좀 작고 회색빛이 도는 종이고, 포의 갈까마귀는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무덤가에 모여드는 덩치 크고 아주 까만 종류이다. Raven은 불길하고 무서운 존재인데 비해 kafka는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사람들 주변을 맴돌기는 하나 다가가지 않는 까마귀이다.


"나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새죠." 그는 말했다.
"내 날개는 위축되어 있으니까요. 이 때문에 내게는 높이도 없고 거리도 없어요.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인간들 사이를 뛰어다니죠. 인간들은 나를 의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봐요. 아무튼 나는 위험한 새요, 도둑이요, 까마귀예요. 그러나 가상에 불과하죠. 실제로 나는 물건에 대한 감각이 없어요. 그래서 번쩍이는 검은 날개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나는 재처럼 회색이에요. 돌들 사이로 사라지기를 동경하는 까마귀 한 마리예요. 그러나 이것은 요즘 내가 얼마나 비참하게 지내는지를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농담에 불과해요."

- <카프카와의 대화> 구스타프 야누흐

번쩍이는 검은 날개를 가져본 적 없는 까마귀.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농담을 던지며 그는 돌들 사이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그 밤엔, 뾰족한 첨탑 너머로 툭 떨어지는 커다란 깃털을 본 것 같다. 어쩌면, 밤의 환영이었을까.


멀리, 성을 향해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경의를 담아 블랙 수트를 즐겨 입곤 했다. 몽마르트르의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그 카바레의 이름 역시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중절모를 쓰고 우산을 지팡이처럼 지닌 그는 좀 괴팍한 연주자이다.

그가 그리는 마을 풍경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공상으로 가득하며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개인 소유의 작은 중세풍 마을, 주철로 지어진, 안락하고 오래된, 수상쩍은 가옥, 무서운 외관에 험궂은 정원이 딸린 (마법사를 위한) 낡고 조잡한 가구와 함께'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사이나 료스케


그의 방은 중세풍 마을 너머에 있었을까. 룸넘버 0번. 다섯 평도 채 되지 않는 그의 방에 피아노는 벽을 보고 있다. 에릭 사티는 사실상 자신의 피아노가 없는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코트 깃을 한번 여미고 성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누구도, 그 방에 초대된 적이 없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카프카의 일기>, <카프카와의 대화>, <폴 콜린스의 에드가 앨런 포 평전>,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