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퇴근은 2시였지만
(지난 글에 이어집니다)
무슨 목적일까요? 이 일은 제게 맞지도 않고, 보상으로 독립성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일을 버리지 않는 걸까요?
- <그리고 네게 편지를 쓴다>, 카프카
카프카는 '퇴근 후 글쓰기'의 아이콘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퇴근 후 무언가 하겠다는 꿈을 안고 직장생활을 하지만, 막상 현실은 쉽지 않다. 6시에 칼퇴한다고 해도 집에 오면 대략 7시, 저녁 먹고 씻다 보면 금세 9시가 된다. 그때부터 글을 쓰면 될까? 알다시피,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고 코드를 콘센트에 연결한 것처럼 글이 바로 시작되지 않는다. 딴짓하며 여기저기 기웃대는 예열 시간이 좀 필요한 것이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여러 유명 작가들도 이 시간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하루는 저물어간다. 야근하는 날, 또 집까지 일을 가져오는 날, 회식 등등이 끼어들테니, 그런 날들 제하고 나면 뭘 할 수 있을까.
퇴근 후 글쓰기가 되지 않는다고 마냥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카프카의 퇴근은 좀 달랐다.
그는 오후 2시의 종소리를 기다렸다. 카프카가 근무하던 보헤미아 왕국 산업재해 보험국은 8시에 출근하여 점심시간 없이 계속 일하고 2시에 퇴근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19세기 중반에서부터 20세기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영향권 공공기관들은 이러한 연속근무제 체계 아래 있었다.
당시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이른 아침 근무를 선호하면서 이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고, 점차 관료제가 비대해지면서 정착되었다. 당시 지식인층들 사이 집중력이 오후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고, 또 점심식사를 정찬으로 하는 문화가 퍼져있어서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먹는 것을 배려하였다. 오후 시간엔 카페에 모여 지적 토론을 하는 카페문화 역시 이러한 시대의 산물이었다.
카프카의 첫 직장인 보험회사는 오늘날처럼 일반적인 긴 근무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1908년부터 이직한 산재보험국은 공공기관이었으므로 이 제도에 따라 2시에는 퇴근할 수 있었다. 박사 출신 고위직이라는 조건도 있었을 것이다.
점심시간 없는 2시 퇴근. 꽤 매력적이다. 8시에 출근해도 2시 퇴근이 전제가 되는 일이라면, 하나의 다른 일을 충분히 할만한 여유가 된다. 카프카는 이렇게 해서 일을 마치고 작은 방에 돌아와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물론, 이른 퇴근이라고 해서 직장생활이 마냥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일기와 편지에는 상사, 일에 대한 투덜거림이 가득하다.
"사무실은 내게 소름 끼치는 곳이다. 나는 거기서 내 살점을 잘라내는 기분으로 앉아있다."
"글쓰기는 나에게 유일한 구원이지만, 사무실에서의 6시간은 나를 너무 평범하고 멍청하게 만든다.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이미 내 정신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 있다."
이른 퇴근이라 해도 몸과 마음이 탈탈 털려서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글쓰기에 자신의 시계를 맞추었다. 카프카의 소설은 초인적인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연속근무제라는 제도적인 행운도 따라주었다. 오늘날에 적용한다면 유연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중요한 것은 직장생활이니 퇴근이니 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나의 시간을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다. 변화를 위해서 무작정 의지를 바꾸겠다는 결심이 가장 의미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환경을 바꾸어주는 것이 우선인지 모른다.
한편, 카프카가 일기나 편지에 그렇게 직장생활을 끔찍하게, 때로는 블랙 유머로 묘사했으면서도 동시에 초고속 승진을 하는 겉보기에 멀쩡한, 아니 아주 훌륭한 직장인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는 헌신적이고 유능한 직원으로 평가되었으며 병으로 아팠을 때에도 상사들이 그를 너그러이 대우하여 집에서 일하도록 배려했을 정도였다. 아마도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만일, 온전히 편안하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없이 생활했다면 관료주의의 폐해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성>이나 <소송> 같은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소름 끼치고 숨 막히는 그 생활이 어떤 면에서는 글쓰기의 동기부여로 작용한 것이다.
또,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태도는 관리들의 문서 작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카프카는 서류 문서를 쓸 때도 그만의 간결하고 정돈된 문체를 써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평판이 나면 회사 생활이 훨씬 유리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불필요한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일처리가 정확하고 빨라지면 업무 시간 외 불필요한 방해가 끼어들 일도 없어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카프카는 이런 이중생활을 1908년부터 1922년 병을 얻어 일을 그만둘 때까지 14년 동안 지켜왔다는 사실이다. 유능한 직장인이니, 승진이니, 이른 퇴근 시간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 14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글을 계속 쓴다면, 어떻게 될까?
걸작이니 어쩌니 하는 결과물을 떠나서 그 사람 자체가 분명히 달라진다. 카프카는, 겉보기에 번듯한 직장인이었지만 점점 범상한 삶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위협하는 생활적인 모든 요소들을 우려했다. 그가 평생을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이방인의 정서로 살아온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나는 이제 비유를 들어 말한다면 경작이 이루어지는 땅과 같은 평범한 세계에 비하면 사막 같은 이 다른 세계의 시민으로 살면서 -나는 40년 동안이나 가나안을 떠나 살고 있다-외국인으로서 뒤를 돌아보고 있다.
-1022년 1월 18일 카프카의 일기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표를 높게 설정하여 끊임없이 실패하고, 다른 사람과도 조화로운 삶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
이것이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 카프카 본인이었다. <성>에서 그토록 헤매며 섞이지 못하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K의 발걸음에 주저함으로 옅은 한숨을 짓는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 모든 것은 극심한 고통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은 삶에 늘 있는 사소한 고통에 속했고, 또 K가 추구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영예롭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성>, 카프카
영예롭고 평화로운 삶, 그것이 카프카의 성은 아니었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