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끝판왕 카프카 박사님의 직장생활
카프카는 유능한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 글 쓰는 이중생활을 했지만 낮의 일터에서도 승진의 사다리를 잘 오르고 있었다. 1908년 보험공사에 입사한 이래 14년 동안 승승장구하는 이력을 보여준다.
1908년 임시직 서기로 입사
1910년 정규직 서기(Concipist) 승진
1913년 부서기관(Vizesekretär) 승진
1917년 비서관(Sekretär) 승진
1922년 수석비서관(Obersekretär) 승진
폐결핵으로 더 이상 일할 수 없어 그만 두기까지, 카프카는 수석비서관까지 올랐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공공기관 상무 급 고위행정직이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그는 출세를 바라는 아버지에 대한 방패막으로 직업을 선택했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일을 잘한 것일까? '퇴근 후 글 쓰는 삶'의 상징인 카프카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무엇일까. 글 따위 안 쓰고 오로지 출세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도 이 정도 하기는 쉽지 않다.
대개 사람은, 높은 직급과 안정적 수입을 얻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안락함에 빠져들게 된다. 카프카가 '보험국 고위 간부'라는 사회적 지위가 주는 달콤함을 몰랐을 리가 없다. 더구나 사회적 지위는 곧 자신의 정체성이다. 직급으로 호칭하는 문화가 사람을 규정한다.
카프카는 자신의 승진에 대해서도 그의 소설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블랙유머를 종종 보여준다.
내가 승진했다네. 이제 나는 더 높은 곳에서 더 정중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얻었지. 내 책상이 조금 더 넓어졌는데, 덕분에 내가 글을 못쓰는 이유를 변명할 공간도 넓어졌다네.
-1920. 4.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
승진하는 순간에도 글쓰기를 생각했다! 이 것이 하나의 단서이지 않을까. 승진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다는 먼저 글 쓰는 일상을 떠올렸다. 승진이 과연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변명의 이유도 그만큼 커졌다는 사실이다. 승진하지 않아도 글쓰기를 못할 백만 가지 이유들이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승진까지 한 마당에 글쓰기를 좀 놓는다 한들 뭐 그리 큰 일일까. 하지만 카프카에게는 큰 일이었다.
카프카의 일기나 편지에는 자신의 일터를 '감옥'이나 '지옥'에 비유한 표현들을 볼 수 있다. 요즘 직장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사무실은 나에게 지옥이다. 그곳은 나를 글쓰기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고문기구와 같다. -1911. 3.28. 카프카의 일기
나는 이 서커스의 단원이 아니며, 단지 구경꾼으로 남고 싶으나, 채찍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 막스 브로트에 보낸 편지
카프카는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늘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실제로 일과 이상 사이의 딜레마를 똑똑히 인식했다. 어떤 일터도 구경꾼에게 월급을 주지 않는다. 채찍을 휘두르지 않는 곳이 없고, 실제로 그 채찍이 일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카프카는 그 사이에서 철저한 거리 두기를 했다. 지옥이던 사무실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글쓰기 때문이었다.
나의 삶은 오직 글쓰기를 위해 구성되어 있다. 만일 글쓰기가 정체된다면, 사무실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창살 없는 감옥이 된다. 나는 그곳에서 내 영혼을 서류가방에 저당 잡힌 채 앉아있다.
-1912. 1.2 카프카의 일기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카프카 특유의 통찰도 엿보인다.
사람들은 내가 일을 잘한다고 칭찬하지만, 그것은 내가 이 감옥의 간수들과 너무 친해졌다는 뜻일 뿐이오.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품는 대부분의 고민은 일 자체 때문이 아니다. 사람에서 오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카프카는 칭찬이 주는 함정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일과 글쓰기 사이의 고민은 한마디로 압축된다.
생업에 너무 휘둘리면 내적으로 그것에 무관심하더라도 모든 조망 능력을 빼앗기게 된다.
-1915.1.19 카프카의 일기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안락한 쪽으로 기울게 된다. 안정이 주는 달콤함 속에 시야는 가려지고, 대우에 익숙해지고 갈망은 희미해진다. 애초에 다른 열망이 있었기나 했나 싶기도 한 것처럼.
승진하고 고위 관리가 되는 길이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또한 치열한 열망일 테니까. 아니,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인정받는 삶이다. 다만, 카프카의 열망은 아니었다. 오직 글쓰기만이 그를 살게 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왜 글쓰기의 열망을 가진 카프카가 보험국의 일까지 그렇게 잘해야 했을까?
흥미로운 것은 카프카의 보험국 생활이 글쓰기의 일부가 된 점이다. 보험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는 아주 명료하고 논리적인 문장을 써야 한다. 이런 생활은 그의 문체로 단련되었다. 카프카 특유의 건조하고 간결한 문장 스타일은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또, 그는 직장생활의 경험으로 소설의 리얼리티를 구축했다. 보험국 일을 하면서 겪게 된 노동자들의 상황은 소설 <성>, <심판>등의 밑거름이 되었다.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 그리고 개인의 힘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 관료주의의 비정함을 직접 체험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직장생활에서 유능하게 처신한 것은 글쓰기의 시간을 지키려는 방어막이었다. 일을 못해서 상사에게 시달리기라도 한다면 글쓰기 시간이 날아갈 것이 뻔했다.
법학박사 출신의 보험국 고위 간부로서 원한다면 큰 집을 비롯한 번듯한 삶을 누릴 선택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큰 집을 얻고 물질적 번영에 의존한다면 더 많은 노동과 근심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생활의 부피를 줄이기로 했다. 카프카는 2시에 퇴근하면 프라하 골목의 작은 방으로 돌아가 책상에 앉는 일상을 이어갔다. 좁은 골목의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낮에 꾸는 꿈이 이어졌다. 거추장스러운 짐은 필요 없는 그 방으로 들어섰다. 다락방처럼 좁은 그 방은 가난의 증거가 아니라, 글쓰기만으로 가득한 작은 성채였다. 카프카는 그렇게 자신의 공간을 발명했다.
사회적 지위나 학위, 재산. 눈에 보이는 조건들이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되는 시대. 세속적 성공이나 경제적 부를 이루지 않으면 무능력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 정도 나이에는, 이라는 말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혹은 쓸모없어 보이는 목표를 향해 헌신하면서 내보일 것이 없다고 해서 그들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카프카는 그 사회에 돌을 던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작고 낡은 방을 향해 매일매일 걸어 들어갔다. 승진이라는, 모두가 환영하는 성취가 그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그것은 결코 무능이 아니었다. <공간의 시학>에서 바슐라르는 이렇게 정리한다.
"예외적으로 특출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은 예술이나 과학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어서 어디서든 잘 적응한다. "
번듯한 대저택도 화려한 생활도, 승진이라는 달콤한 유혹도, 사람들의 우러름이나 명예도, 글쓰기라는 그의 성채를 침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바로 카프카의 재능이었다.
인생은 ‘인내심 겨루기’ 이상으로 참을성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 카프카의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