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진지해지지 말자
얼마 전 카페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20대 남자들 세 명이 앉았는데, 곡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들어보니 한창 밴드 활동 중이었다.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더니, 결국 올 것이 왔다. 이런 대화는 이렇게 흐르게 되는 것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일을 그만둬야 할까?
밴드 활동하는 음악가들은 대개 아르바이트를 한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르바이트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아니라면 낮 시간에 이렇게 모일 수도 없었겠지. 듣고 있던 친구가 답한다. "일을 하지 말고, 사람 만나는 것도 줄여."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동의하는 듯했다. "그래야겠지."
일하던 손을 잠시 멈춘다. 내 친구였다면 무슨 얘기를 해주었을까. 과연, 인맥을 끊고 일을 하지 말라는 그 조언은 그 친구를 더욱 음악에 매진하게 도와줄 것인가.
좋아하는 배우 중에 콜린 퍼스가 있다. 지적이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일품이지만, 어딘가 다른 배우라는 인상을 받은 것은 그의 인터뷰에서였다. 영국인 특유의 유머와 자기 객관화를 거친 직업관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콜린 퍼스는 자신이 배우가 된 것은 천직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일을 했어도 열심히 했을 것이라고 했다. 광산 노동자나 청소부처럼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에 비하면 배우는 분장하고 대사를 외우는 편한 일이며 과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쩌다 운 좋게 편한 일을 하고 있으니 감사하게 여긴다는 태도였다.
그는 예술계에서 흔히 등장하는 '천직 서사'를 경계한다. 배우가 천직이네, 나는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네, 하는 태도 말이다.
대중을 상대하는 미디어는 천직 서사를 좋아한다. 이 일을 위해 영혼을 불태운다는 스토리는 매력적인 구석이 있지만 어떤 면에서 운명의 연인을 만났네 운운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별로인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는 점이다. 조금 삐딱해진다. 그럼 뭐,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백수로 태어나나? (백수 비하 아님. 사실 예술가도 백수 비슷한 면이 많다.)
내 직업이 천직이라고 믿을 경우 발생하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이 일은 천직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고집을 정당화한다. 성공한 경우에야 일종의 자뻑이려니 하고 넘길 수 있지만, 실패했을 경우는 주변 사람을 괴롭히거나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 또 하나는 보상에 대한 갈망인데, 나의 천직이니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삐뚤어진 자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진짜 고수란 콜린 퍼스 같은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것은 나의 직업일 뿐, 나의 전부는 아니다는 담백한 태도.
그럼, 카프카는 자신을 뭐라고 여겼을까. 사회적으로는 보험국 고위직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회사에 닻을 내리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만큼은 충실히 일하고, 글쓰기에 모든 시계를 맞추었지만 스스로 작가라고 내세운 적도 없다. 작가는 천직이라고 말하는 카프카? 굉장히 이상하다. 어디에서든 이방인의 감성으로 살았던 그는 직업에 대해서도 명확한 선을 긋지 않았다. 그저 오후 2시면 퇴근해서 작은 방에 글 쓰러 가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비슷한 시기, 또 하나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인생이 있다. 현대미술의 거장 마르셸 뒤샹. 변기를 떡 하니 가져다 놓고 작품 '샘'이라고 해서 충격을 가져왔던 그 인물. 그는 자신을 천상 예술가라고 생각했을까?
뒤샹은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형제들처럼 주류 미술계에 안착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출발선이 한참 앞서 있는 인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엉뚱한 짓을 한다. 뜬금없이 체스 선수가 되었다. 장난 수준이 아니었다. 프랑스 체스 국가대표 팀의 일원으로 체스 올림픽에 네 번이나 출전했다. 국가대표? 그거 본업을 따로 두면서 슬렁슬렁해서 가능한 일인가? 내 상식으로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뒤샹 자체가 상식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작품으로 한창 주목받을 때면 돌연 체스로 돌아가 몰두하곤 했다. 사람들은 그의 예술적 영감이 고갈된 것으로 판단했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예술가라는 틀 안에 가두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왜 예술가라는 칭송이 쏟아지는 시기에 도망쳤을까? 그는 세인들의 입맛에 맞추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뒤샹도 파트타임 근무의 대가였다. 파리에서는 생 주느비에브 도서관의 사서로 정해진 시간만 일했고, 뉴욕에 건너가서도 프랑스어 과외를 하면서 적게 버는 생활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작은 방의 월세를 내고, 체스를 두었다. 아무도 나를 예술가로 대접하지 않는 환경을 사랑했다는 뒤샹의 고백이 놀랍다.
카프카와 뒤샹은 자신의 작업이 사회적 직업으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평생을 작업에 대해 생각해 왔지만, 그것을 천직으로 여기는 순간 사회적인 틀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 않았을까. 천직이라고 믿는 순간 세상이 바라는 성취를 이루지 못할 때 좌절하거나 파멸하게 될 우려가 크다. 얼마나 많은 스타들이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져 갔던가.
카프카는 사회적으로 멀쩡한 회사원이면서 퇴근 후에는 벌레가 되는 기괴한 소설을 썼다. 뒤샹은 도사관 사서나 체스 선수로 활동하면서 대중들이 바라는 예술가의 틀에서 도피했다.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의 모습일까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에 대해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면에서 그들은 충성을 택하기보다는 차라리 스파이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속 캐릭터들이 말하는 것들이 있다.
"의리를 지키지 말기를. 이것이 인류를 위한 당신의 의무이다. 인류는 생존해야 하는데, 충절을 지키는 사람들이 항상 먼저 죽는다. 근심이나 총알이나 과로로 인해. 먹고살아야 한다면...... 그래서 의리를 선택해야 한다면, 이중 스파이가 되어라. 그리고 어느 쪽에도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지 마라."
이상한 조언이다 싶지만 현실적 조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카프카와 뒤샹은 동시대 사람이었고, 자신의 작품을 위해 단순한 이중생활 전략을 가져온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1920년대 유럽 지식인층에 널리 퍼져있던 이상적 태도였다.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것은 하루의 일정 시간만 노동을 해도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근무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밴드 이야기, 단일집중 근무제 이야기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