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좋아하는 것은 너의 일부가 된다

취향을 말해도 될까요

by 베리티

한 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네가 그것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some things

once you've loved them

became yours forever.

and if you try to let them go

they only circle back and return to you.

they become a part of who you are.

- 영화 <킬 유어 달링> 중에서,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사람들 사이에 신호가 있다. 어떤 날은 문득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 중에도 익숙한 순간, 또 꽤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들사이에서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다다. 알아왔던 시간에 관계없이 '반짝'하는 순간을 경험하는데, 나에게는 밴드 블러(blur)가 그 신호 중 하나이다. 좀 이상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 아는 그런 반짝임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장 그르니에는 저마다의 일생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고 썼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만 유년기와 청년기에 걸쳐서 계속되면서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여러 해를 유별난 광채로 물들인다고 했다. 그것은 혼자 있을 때 찾아올 때가 많지만, 대화 속에서도 섬광처럼 스쳐가기도 한다.


얼마 전 한 대학생과 점심을 먹을 때의 일이다. 학교 축제 얘기를 하다가 밴드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베이스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친구가 있었다. 요즘 음악의 대세라면 단연 아이돌인데 수상하다 싶어서 물어보았다.


"좋아하는 밴드 있어?"


약간 망설이다가 대답한다.


"... 오아시스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내가 대학 시절 좋아했던 그 오아시스? 지금은 2023년인데.


표정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그 친구가 살짝 웃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1)


"그럼... 블러도 알겠네?"(1)


고개를 끄덕인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잠깐의 대화 사이, 다른 우주가 열린다. 대답을 왜 망설였는지 왜 웃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나는 블러 내한공연에 갔던 경험과 블러를 테마로 내 멋대로 코스를 짜서 런던에 갔던 얘기를 살짝 들려준다. 그 친구의 눈빛이 반짝인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한 친구도 덩달아 눈이 커지며 끼어든다. 나이가, 세월이 훌쩍 떠나간다. 시공을 초월한다. 내가 대학생 시절 나누던 대화 한토막이 오늘 다른 방식으로 살아난다. 한순간에 과거와 현재의 벽이 허물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나눌 미래의 영역도 커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동안 왜 좀처럼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사실 취향을 노출하는 것은 어려가지 오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취향 얘기를 이어가다 보면 젠 체하는 것도 같고,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지인들 중에는 이런 취향을 아는 사람도 있고, 전혀 모르는 이들도 있다. 누구나 블러를 꼭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세히 설명해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진 하지 않는다. 나의 과도한 취향 노출로 누군가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문득 생각한다. 내가 블러를 알기 전처럼,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또 그들 역시 자신만의 블러를 갖고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취향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되지 않을까?


“사람은 그가 읽는 책, 곁에 두는 친구, 입에 담는 칭찬, 입고 다니는 옷, 그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는 이야기, 걸음걸이, 눈빛, 사는 집, 그의 방으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서로 무한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말로는 다 할 수는 없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일부가 된 어떤 것들에 대한 세계를 열어주는 하나의 문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걸까. 서슴지 않고 좋아하는 것에 뛰어들 줄 아는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다.




블러 Blur


이상한 밴드가 있다. 스타이면서 '아웃사이더'를 고수하는 이 뮤지션들은 대형 페스티벌 헤드라이너이면서도 동네 작은 카페에서 신보를 발표한다. '밴드' 구성의 락 음악을 하면서도 팝이 더 위대하다는 선언을 한다. 동네를 어슬렁거릴 법한 티셔츠 차림으로 무대에서 점프를 한다. 모든 밴드들이 미국 시장 점령을 노리며 분노를 터트리고 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 영국인의 소소한 일상을 노래한다. 브릿팝을 주도하며 '90년대 문화의 결정체' 라고도 할 수 있는 영국 밴드, 블러. 원년 멤버 그대로 30년 넘게 현재 진행형이다.


1990년 데뷔이래 현재진행형으로 활동 중인 영국 런던 출신 4인조 밴드.

데이먼 알반(Damon Albarn 보컬, 기타, 건반 등), 그레이엄 콕슨(Graham Coxxon 기타, 때때로 보컬), 알렉스 제임스(Alex James 베이스), 데이브 로운트리(Dave Rowntree 드럼)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의 오아시스(Oasis), 스웨이드(Suede), 펄프(Pulp)와 함께 브릿팝 열풍을 몰고 왔다.

브릿팝이라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영국적 스타일의 음악.

2023년 코첼라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외 다양한 공연 중.

2023년 8월 일본 써머쏘닉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뉴진스(New Jeans)와 같은 날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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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알만한 곡으로는 FIFA 게임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song2'

https://www.youtube.com/watch?v=SSbBvKaM6sk


(1) 당시 언론들이 주도했던 블러와 오아시스 사이의 대결구도는 브릿팝팬들 사이에 유명하다. 서로에게 막말을 퍼붓기도 했던 과거가 있지만, 어느새 옛일이 되어서 두 밴드의 보컬 데이먼 알반과 노엘 갤러거가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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