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행복론』 변화하는 미래사회, 개인은 어떻게 행복
미래채널 MyF는 Make your Futures의 약자입니다. 내가 꿈꾸는 최고의 미래를 다른 사람이 만들기를 기다리지 말고, 직접 나의 손으로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이름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그래서 미래채널 MyF의 컨텐츠는 끝에 항상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끝을 맺습니다.
최고의 미래를 상상하세요. 그리고 그 미래를 직접 만드세요.
그런데 도대체 최고의 미래란 어떤 것일까요?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일이 대신해줘서 인간은 놀고먹는 세상?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어서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 전쟁과 질병이 없는 세상? 죽음이 사라진 세상? 그런 세상일까요?
<자동화 기술은 발전하는데 나는 왜 계속 바쁠까?>편 읽기
미래예보 <일 안 해도 돈 받는 미래? 기본소득제에 관한 논점들!> 편: https://www.youtube.com/watch?v=t1HioXrCJ5c
사실 모든 사람이 동의할 최고의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 개개인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선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가족 안에서도 엄마와 아빠의 의견이 다르고 형제들끼리의 의견도 다릅니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작은 단위 안에서도 물건 구매, 외식 메뉴 선택 등 의견이 엇갈려 갈등이 일어나죠. 심지어 부모님 유산을 가지고 형제가 다퉈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도 이런데 한 사회, 국가, 더 나아가서는 세계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최고의 미래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 자신이 정답이라며 강경한 태도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이끈다면 그 사람은 독재자일 뿐입니다.
인공지능의 발달, 초연결 시대의 도래 등 인간의 불편을 해소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미래 기술들 역시 우리의 최고의 미래를 만들어주지는 못할 겁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실업자로 만들지도 모릅니다. 또한 초연결 시대에 모든 사물들이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삶을 편리하게 해준다고 해도 사생활 침해 문제라던지, 해킹으로 인한 보안의 위협 등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생겨나겠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을 로봇 BEST 7: https://www.youtube.com/watch?v=22kt_5BONtI
몇 년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가 말하는 정의란 것이 사실은 굉장히 합의하기 어려운 일이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여러 사람이 살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옳은가?’
이 한 질문에도 사람들의 의견은 각기 다릅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적인 입장, 그리고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의 입장이 서로 대치되죠. 원칙을 중요시할 것이냐, 결과를 중요시할 것이냐에 대한 대치이기도 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하버드 강의 1강: https://www.youtube.com/watch?v=ZWP0aC1BLrU&list=PLimhiAKc_e5_bJUjUK_DeDvQDDypVrdam&index=1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최고의 미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죠.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위해서라는 명분과 사명감으로 세상을 더 좋게 바꾸겠다는 이상을 가진 사람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최고의 미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개개인이 모두가 자신의 이상을 이룬다면 최고의 미래가 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상을 이루겠다며 눈을 불을 켜고 죽기 살기로 노력한다면 그 사회에는 싸움과 갈등만이 있을 뿐이겠죠.
예를 들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다고 할 때 대통령을 꿈꾸는 모두가 대통령이 될 수도 없는 것이고, 또한 반드시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고 강경한 태도로 선거에 임한다면 서로를 비방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간에도 갈등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너무나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가 있다고 할 때 모두가 그녀를 갖기 위해 싸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결국 모두가 꿈꾸는 미래가 이뤄진다면 결과는 세상의 종말일 겁니다. 누군가 한 명쯤은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어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굳이 우리 공동체, 지구의 사람들이 함께 지향해야 할 그런 최고의 미래, 행복한 미래의 모습을 모호하게나마 생각해보자면 이런 모습일 것 같습니다.
서로가 각자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이의 가치관을 존중하며 양보하는 ‘다양성이 살아있는 미래’
이런 세상이야 말로 건강한 세상, 행복한 세상,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 아닐까요? 인공지능, 드론, 무인자동차 등과 같은 미래 첨단기술은 행복한 세상을 위한 부수적인 것들이지 근본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은 아닐 겁니다. 아무리 세상이 자동화가 되고 편리해진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이 서로 싸우며 견제하는 세상은 절대로 아름다운 미래가 될 수 없을 테니까요.
“새는 한쪽 날개로 날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는 두 날개가 서로 조화롭게 움직여야지만 새가 날 수 있다는 말이죠. 만약 한쪽 날개가 다른 날개에게 ‘너는 왜 나와 다르게 움직이냐, 나랑 똑같이 움직여라!’라고 강요만 한다면 새는 절대로 날 수 없을 겁니다. ‘다름’이란 결국 배척할 대상이 아닌 세상의 건강함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할 고마운 존재인 것이죠.
새는 한쪽 날개로 날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렇게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마리를 이미 찾아 수천 년 전부터 전수해오고 있습니다. 바로 고전들에 그 실마리들이 적혀 있죠.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맹자, 석가모니, 예수 등 수천 년 전 그들의 말이 21세기인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이유는 그들의 지혜가 현대 사회에도 유효하기 때문일 겁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세상에 정해진 바가 없다.”
-석가모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
고전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세상에는 정해진 바도 없고 정답도 없다. 그러니 겸손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을 읽고 옛 선조들의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겸손해지고 이해심이 넓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고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먼저 할 일은 선진국과의 경쟁, 기술의 발전, 자원 경쟁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고전과 인문학을 공부하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입니까? 물론 경쟁과 발전 역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모두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경쟁과 발전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방향을 잃은 상태로 세상이 변해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무분별한 경쟁과 발전이 전쟁, 환경오염, 자원고갈, 식량부족과 같은 암담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정말 어떤 미래를 바라며 노력하고 있을까요?
미래 트렌드를 전하는 일을 하는 제가 사람들에게 ‘이것을 하십시오. 그러면 최고의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추천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죠. 그리고 사람들은 제게 그런 명확한 해답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명확한 해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약 제가 정말 공부를 많이 하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대답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사기가 될 것입니다.
최고의 미래는 없지만 최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존재하듯이, 정답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그 행동을 좋은 결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