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구 aGu Aug 09. 2020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글쓰기

#1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사랑하는 그대의 생일날


출근 시간에 눈이 떠졌다. 평소 같으면 정신 못 차리는 시간대. 욕이 절로 나오는 그 시간. 오늘은 달랐다.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크으 휴가는 이 맛이제!’. 어제와 다름없이 수영하고 오니 반가운 연락들이 와 있다. ‘아 오늘 생일이구나.’


몰랐던 건 아니다. 생일을 핑계로 휴가도 쓰고, 어제 친구도 만났으니. 연락을 받으니 실감이 났다. 이번 생일은 축하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그들에게 닿았던 걸까.


생일에 무심한 사람이었다. 생일 그 뭐라고. 축하받는 일에 익숙지 않았다. 챙겨주는 사람이 오히려 머쓱할 정도로 받으면 미안함이 앞섰다. 스스로 생일에 무심한 이유로 다른 이를 축하해주지 못했다. 표현해주지 못했다. 예전에는 몰랐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안부를 묻는 것이, 축하와 위로를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상에서 주고받는 스몰토크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표현하지 않아도, 닿지 않아도 우리 사이는 예전과 다를 거 없을 거라는 오만한 착각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그런 착각을 하고 오랜만에 연락하면 거리감을 느꼈다. 정작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스스로 상처받았다. 많은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노력하지 않고, 내 마음을 돌보기에 바빴다. 연애한다는 이유로. 남자를 싫어한다는 핑계로. 모임과 행사를 싫어한다는 구실로.


흘러가는 시간은, 세월은 그런것이 아니었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이 사람 관계였다. ’굳이’, ‘애써’라는 생각에 마음을 삼킬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움직일 때 그냥 표현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제는 안다. 주고받음이 품앗이가 아니라 마음이 오간다는 걸. 내 사람이라고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 선을 긋는 게 아니라는걸. 축하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일이 단지 자랑이 아니라는걸.


더 늦기 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행복하다. 스스로 축하해주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와 화해할 수 있어서. 축하에 더는 미안함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답할 수 있어서. 사는 일이 별거인가. 일상 사이사이, 그 틈 속에서 주고받는 소소한 관심과 관계. 그런 순간들이 곧 행복 아닌가. 사소하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은 감정들.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고 좋은 일은 마음껏 좋아하면 된다. 그래도 된다. 너는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사랑하는 그대의 생일날이니까.



#2  새삼스레 느끼는 감정들


루틴을 벗어나니 몸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이번 주는 수영을 시작한데다 사람을 좀 만났더니 몸이 별로다. 쓰고 싶은 글이 있고, 해보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몸이 살짝 버거운 느낌이다. 몸도 마음도 새로움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박준 시인이 그랬던가.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함에도 내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 루틴에서 얻는 위안들이 있다고.” 뒤늦게 깨닫는다. 정해진 루틴과 반복 속에서 나름 바쁘게 살았구나. 위안을 받았구나. 새삼스레.


오른손 중지를 베였다. 목욕 바구니에서 샴푸를 집다 면도날에 그만. 무의식적으로 샤워하고 있는데다 물에 젖은 손이라 통증이 한 발짝 느리게 왔다. 갈라진 틈 사이로 피가 맺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꽤 신경 쓰인다. 밴드 탓에 지문인식을 할 수 없고, 무엇보다 글을 적는데 매우 불편하다. 아주 작은 상처에도 통증 없던 몸이 그리워진다. 고마워진다. 새삼스레.


병실을 가면 안다.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법원을 가면 안다. 억울하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영락공원을 가면 안다. 하루에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치과를 가면 안다. 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여행을 가면 안다. 낯선 곳에서 나는 어떤 걸 좋아하는지. 기록을 보면 안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생각하는지. 글을 쓰면 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편지를 쓰면 안다.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울고 나면 안다. 눈물이, 울음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끊기면 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와 새삼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곳이 비어있는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궂은 비 내리는 날이다. 존재가 당연시될 때 가치는 사라진다고 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을 감정들. 그리고 새삼스레 드는 생각들. 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사진을 찍어보면 안다. 내가 이렇게 생긴 사람이구나. 관리해야겠다. 겸손해야겠다. 정신 차려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기록은 나름의 쓸모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