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사람으로 서울에 대한 로망이 있다. 어쩌면 환상에 가까운지도 모르는 마음이 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서울에 여러 번 오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도 때마다 다르다. 어릴 때 기억은 단편적인 몇몇 장면으로 남아 있다. 침대 기차를 타고 외할아버지 집으로 향하던 설레던 밤. 마당에 둘러앉아 숯에 고기를 구워 먹던 하루. 경복궁, 63빌딩, 롯데월드, 남산 등을 돌아다녔지만, 기억에 남는 건 장충동 족발 간판과 신당동 떡볶이 간판들, 그리고 골목 어귀들. (외할아버지 집이 신당동이었다) 매캐한 연기와 잿빛으로 둘러싸인 시위를 버스 안에서 설풋 본 기억. 아 처음 맛본 프랜차이즈 비비큐의 맛도 잊을 수 없다. 그때는 날개를 따로 은박지에 포장해서 줬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게 비비큐였다.
스무 살이 되어 춘천에서 입대하기 위해 형과 함께 서울에 왔었다. 그때 형은 형대로 바빴다.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것 같다. 쓸데없이 강남에서 이 만 원 주고 머리를 민 기억도 난다. 그때는 몰랐다. 장발로 가도 입대하면 머리 깎아주는걸. 강남에서 머리 밀면 뭐 좀 다를 줄 알았나. 아무튼, 청량리에서 기차 타고 춘천으로 갔었다. 시간은 흐르고, 100일 휴가 때 동기들과 택시 타고 동서울 역에 왔었다. 버스랑 별 차이도 없는데 그때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처음 와 본 동서울 터미널은 군인들 천지였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 탓이었겠지. 일반 사람 눈에 그들은 안 보인다. 그들 눈에만 보이는 특별한 존재다. 휴가 때 마다는 아니어도 외할아버지 집에 들러 인사를 드렸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밥 한 끼 안 먹고 간다고 다그쳤다. 걱정되었는지 서울역이나, 고터로 꼭 데려다 주시곤 했다. 버스는 복잡해 지하철 밖에 탈 줄 몰랐던 나는 그때 알았다. 진정한 서울 사람은 버스를 타는구나. 허위허위 걸음을 옮기던 할머니의 뒷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전역 날 남양주 기숙학원을 가기 위해 서울로 왔었다. 머리가 길다고 다급하게 옆 머리를 엉성하게 밀린 채 건대에서 친구를 만나 닭갈비를 먹고 축구 게임을 했다.
내일로 하면서 서울에 여러 번 왔었다. 경복궁과 광화문을 가고, 종로 뒷골목에서 기자들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보쌈을 먹었다. 건대에 가서 축구 게임을 하고 동서울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상봉에서 장을 봐서 춘천으로 넘어갔다. 처음으로 보드를 타고 다음날부터 시름시름 앓으며 하나둘 일정을 이탈했지만, 그때는 패기와 열정이 있었다.
만나던 친구와 무궁화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을 향하던 기억도 있다. ‘기차는 무궁화지’하며 호기롭게 출발했는데 올 때는 케텍을 탔다. 욕만 무지하게 먹었다. 종로3가역 근처에 숙소를 두고 창경궁, 종묘, 광장시장 등을 갔었다. 아 여의도 한강 공원도 생각이 난다. 한강 라면은 생각보다 더 맛있었고 배달음식 받는 곳 등 공원 노상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놀랐다. 홍대와 합정을 돌고 피자 먹고 내려왔다.
한성대 근처에서 자취하던 친구 집에 홀로 머물던 시간도 있었다. 강남에서 부산 친구를 만나고, 회기에서 유럽 여행하며 알게 된 친구를 만나 전을 먹었다. 혜화에서 좋아하는 동생을 만나고, 노원에서 맥주를 마시고, 찜질방에서 잤던 기억도 있다. 출근 시간 4호선은 노원에서 타도 앉아갈 수가 없더라. 심지어 열차를 보내고 다음 열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더라. 환승 구간마다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하며 바삐 가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아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다, 서울에서는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던 20대였다.
30대의 서울은 이제 마음먹어야 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서울에 대한 로망과 환상은 여전하고, 올 때마다 설레고 놀란다. 이제는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잘 타고 다닌다. 물론, 핸드폰 덕분이다. 누굴 만나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고, 그저 홀로 가고 싶은 곳을 간다. 궁금한 사람은 있어도 만날 사람은 몇 없다. 다들 저마다의 일상을 때로는 바쁘게, 때로는 느리게 살아가겠지. 서울에 거주하고, 일하고, 버티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서울 사람들은 하나같이 멋있고 예쁘고 힙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본 거라는 걸. 서울에서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들도 똑같이 아니, 훨씬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걸.
부산 촌놈이라 부르던 서울 삼촌이 생각난다. 어릴 때는 왜 그렇게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부산 촌놈, 맞다. 촌놈이라 가질 수 있는 서울에 대한 동경, 경험, 기억이 알게 모르게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기에,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가질 수 있는 환상이 있다. 서울 사람은 깍쟁이라던데 하나같이 친절하고 부드러운 기억이 있다. 잠깐 머물며 보고 싶은 모습만 선택적으로 기억한 탓이겠지만, 부산 촌놈이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사람이 부산이나, 강릉을 좋아하고 찾는 이유와 비슷한 마음이려나? 마음이 희끄무레할 때면 서울을 찾는 거 같기도 하다. 생경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낯선 곳이 아닌 곳에서 어떤 위무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마주할 용기는 없고, 그렇게 언저리를 맴돌며 지나간 시간을 마주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서울로 향하는 그날, 또 언제가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