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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김밥 Jun 26. 2017

문재인 안 찍었으니 기다려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며

"문재인 안 찍으면 요구사항 말 못하냐? 응. 닥쳐. 백번 양보하자면, 순서를 기다려 등신들아"
"문재인 당선됐으니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 니들 마음 이해하는데 순서는 좀 기다리자. (중략) 세월호 유족들 아직 말 한마디 불평없이 기다리고 있는거 안보이냐?"


최근, 트위터에서 본 트윗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12월에 당선되어 다음해 2월말에 취임하기 직전, 나는 한겨레에 "곧 취임할 박 대통령께"라는 제목의 글을 보냈다.(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73752.html)


후보시절, '국민대통합'을 내세웠던만큼, '쌍용차 노동자들과 용산참사 피해자들, MB정부 시절의 민간인 사찰피해자들'에게도 관심의 손길을 내밀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닥치'지 못한 '등신'


저 트윗들에 의하면, 나는 '닥쳤'어야 했고, '순서를 기다'렸어야했다. 2012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순서를 기다리지 못한 '등신들'중 하나였던 셈이다. 문재인 후보측에 가서 밥 처먹고(투표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계산서 내민' 형국이었다.


MB정부 초기, 수십만이 참여했던 '광우병 촛불집회'에도 그런 '등신들'이 많았던 셈이다. 그 수십만의 사람들 중, MB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내 요구를 주장할 순서'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취임 1년도 안된 시점에, 어디 건방지게 표도 안 준 '등신들'이 순서도 안 기다리고 '검역주권'과 '정권심판' 따위를 외친단 말인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 사진. MB를 찍지 않은자, 집에 돌아가서 순서나 기다려라!(출처 : 진실의 길)


나는 이번 대선 때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입다물고 있어야할까. 나는 자유한국당 후보에게도 표를 주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내 주장을 이야기하면 안되는 것일까. 그들을 비판하면 안되는 것일까. 


이쯤되면 '문재인 안 찍었으니 순서를 기다리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지 분명해진다. 사실 '순서를 기다리라'는 말도 모호하다.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 1년반? 아니 그건 너무 짧은가? 그럼 3년? 내가 찍는 후보가 당선이 안되면 나는 항상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항상'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표를 던젔건, 지금 누구를 지지하건, 정부와 정당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순서를 기다리지 말고 말이다. 그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다. '공화', 우리 모두의 나라. 문재인 당시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까지도 포함하는.


'넌 우리편 아니니까 입 다물고 순서를 기다리라'는 이 서사는, 사실 수구-극우세력에게서 많이 보아오던 서사다. '우리편 아니면 다 좌빨'이라는 끔찍한 편가르기.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하지만) 만에 하나 5년 뒤, 수구-극우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갔을 때, 그 세력의 동조자들이 야당 지지자들에게 '닥치고 순서를 기다리라'고 하면, 우리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순서를 기다리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반대세력에게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근거를 주는 셈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문재인 정부에 흠집이 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자유민주의 가치'고, '민주공화의 가치'다. 


문재인 정부에 쏟아지는 요구사항들, 그리고 비판들. (그 전의 두 정권들은 사상 최악의 '불통'정권이었으니, 얼마나 요구사항이 많겠는가.) 아프지만, 그 현상자체는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악의적 공격은 그에 맞게 단호하게 대응하면 될 뿐이다. 나도 문재인 정부를 향한 악의적이고 근거없는 공격에는 맞서 싸우려고 한다.


나 또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래서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 5년 뒤에는, 제발, '극우'와 '중도보수'의 대결이 아닌,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정책대결을 보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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