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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김밥 May 30. 2018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를 지켜보며

노동자는 아직도 '2등 국민'인가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1988년 7월의 초선 노무현 의원의 대정부 질의를 다시 한번 찾아봤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중략)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노동자와 농민이 다 함께 잘 살게 되고...”
 - 1988년 7월 8일, 노무현 의원 대정부 질문.


1988년 7월 8일 대정부 질문, 노무현 의원


그리고 14년 뒤인,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동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등장이었다. 이제야 노동자도 살맛나는 세상이 오는 것일까. 사람들은 기대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꿨다. ‘노동존중’이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소외되었던 가치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했다.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 마이너


참여정부 시기의 노동자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해 10월에는 한진중공업노조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목을 맸고, 근로복지공단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이용석 씨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다. 2007년 이랜드 사태 당시, 경찰은 물대포를 동원했다. 이 시절, 농민도 여럿 목숨을 잃었다. 자의로, 타의로.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309일 동안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세상에 어느 귀족이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300일을 넘게 농성을 벌일까)은 그의 저서 <소금꽃나무>에서 참여정부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필살기는 투쟁이나 구속이나 수색 같은 특수하고도 전문적인 분야들을 좀 더 대중화해 일반인들도 누구나 향유할 수 있게 한 점과 음지에서 했던 일들을 양지에서 내놓고 하게 한 게 아닐까.”
- <소금꽃나무>


이명박 정부 시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309일간 크레인 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뉴시스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노동존중’은 없었다.     


2014년 11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은 이랜드 사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카트> 관람 후, 트위터를 통해 “제게는 참여정부 때 비정규직보호법의 실패가 아프게 상기되는 영화”였다고 밝히며 참여정부 시절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다.(관련링크)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간의 ‘암흑기’와, ‘탄핵 촛불’을 거쳐,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비정규직 제로화’와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친, 참여정부의 과오에 대해 반성했던 대통령을 가진 정부가.     


문재인 정부 시기의 노동자들


하지만 ‘비정규직 제로화’는 제자리 걸음이고, ‘최저임금 1만원’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그 효과가 무색해졌다. 생각해보자. 문재인 당시 후보가 외치던 ‘최저임금 1만원’은, 산입범위가 확대된 것이었는가.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가. 여당과 일부 야당은 노동계를 배제하고 국회에서 ‘최저임금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역시나 노동자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5월 28일 오후,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한겨레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5월 13일, ‘사회적 대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제는 노동계를 향해 최저임금 법안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라고 말한다. 법안을 통과시켜놓고 이해하라고 하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해당 법안의 영향을 직접 받는 사람들을 배제시켜놓고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뉴비씨의 고일석 기자는 “올해 기본급 157만원에 상여금과 수당, 복리후생비 등으로 20만원 정도를 받아 총 임금이 177만원인 노동자가 있다고 칩시다. 이 분은 내년에 상여금·수당·복리후생비가 모두 최저임금에 산입되더라도 최저임금이 15% 인상된다면 총 임금이 181만원”으로 오른다고 주장한다.(관련기사


총 임금이 177만원인 노동자가 최저임금 15% 인상으로 오르는 임금이 고작 4만원이다. 더구나, 해당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았더라면, 이 노동자는 177만원에서 약 23만원(기본급 157만원의 15%)이 인상된, 200만원에 가까운 월급을 가져가게 된다. 왜 이 사실에는 침묵하는가. 월 177만원 정도 받는 노동자면, 고소득자인가. 그래서 최저임금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해도 된다는 것인가.     


누가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를 환영하는가


정부여당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이 이번만큼은 발목잡기 없이 순순히 여당에 협조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25일 논평을 통해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숨통이 트였다”고 주장하며 환영하는 분위기다.(관련링크) 생각해보라. 그들이 언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이익을 대변했는가.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마다, 매년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해온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역시 이 결정에 찬성하고 있다.(관련링크)


‘최저임금법 개정안’ 국회 표결. 2018.5.28  ⓒ 국회방송


1988년의 초선 노무현 의원과, 2003년의 대통령 노무현. 2017년의 문재인 후보와, 2018년 대통령 문재인. 왜 항상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은 후퇴하는가. 노동자들에게 봄은 언제 오는가.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는 국회에서 한 것이지, 대통령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명확하게 입장을 밝힌 적이 있었던가.      


문재인 정부 앞에 과제들이 산적하다. ‘남북평화’,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비례성이 강화된 선거제도’, ‘세입자에게 유리한 임대제도’, ‘토지공개념’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제가 없다. 기득권 세력이 강한 반발이 우려되는 과제들이며, 따라서 국민의 광범한 지지가 유지되어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난제들이다.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로 노동계의 지지를 잃는다면, 개혁을 위한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노동존중'의 정부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는 ‘이게 나라냐’고 외친 1700만 촛불 이후의 정권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돌아보고, 노동계를 품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30년 전, ‘노동자와 농민이 다 함께 잘 살게 되는’ 나라를 꿈꾸었던 노무현 의원의 꿈을 비로소 실현시켜주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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