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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김밥 Jan 20. 2019

'파인텍 투쟁 승리'를 접하고

문재인 정부는 초심을 잃었는가

2011년 1월, 새해 벽두부터 홍대 청소노동자들(경비 및 시설노동자 포함)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해고통보


해고통보였다. 학교측과 기존 용역업체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벌어진 사태였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당사자들이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을 터, 대부분 5-60대인 청소노동자들은 추위를 견뎌가며 학교 정문 앞에서, 길거리에서 투쟁을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악스러울 정도로 열악한 그들의 근로환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1일 평균노동시간 10시간
- 월급 75만원
- 하루 식대 300원

  (오타가 아니다. 3,000원이 아니라 300원이다.)

  

"대부분 지하에 휴게실 공간을 조그맣게 만드시거든요. 계단 밑이나 이런 데. 냄새 올라온다고 치우라고 그러니까 천상 찬밥을 싸올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당신께서 아침에 나오실 때는 따뜻한 밥을 싸 오시지만 그게 결국 드실 때는 찬밥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요. 대부분 소화불량이나 이런 거 많이 걸리시고요."

(관련기사)


"요즘은 껌도 300원에 못사요"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물론, 우리가 안 본 것이겠지만)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사정이 알려지자 많은 곳에서 연대의 손길이 답지했다. 홍익대 학생들, 홍대 주변의 예술인들, 이름모를 소액 후원자들, 그리고 연예인들까지.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졌고, 49일만의 농성 끝에 그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승리일까


이것은 승리일까. 그들이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 주요 합의사항을 살펴보자.


- 농성자 고용승계

- 시급 4,450원

- 한달 식대 5만원

- 명절상여금 5만원


2011년 당시의 최저임금은 4,320원. 그들은 한 겨울에 49일 농성의 결과로,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의 결과로, 최저임금보다 130원이 많은 임금을 가져가게 되었다. 고용은 승계되었으나, 용역업체가 바뀌면 그들은 또 다시 해고의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이게 승리일까.


더구나 그들은 '승리' 이후, 학교측의 억대 손해배상 청구에 시달려야했다. "장기파업으로 (학교가) 손해를 입었다"는 것.(관련기사)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었다.




올해 초부터, 기분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세계최장기간 426일 굴뚝농성 끝에, 노사 합의에 성공하면서 농성 노동자들이 땅을 밟게 되었다는 것.


농성 노동자가 농성을 끝내고 한 조합원과 포옹하고 있다.(출처 : 연합뉴스)


농성을 했던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지회장은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있느냐는 질문에 "라면에 부추를 넣어 먹고 싶다"고 답했다. 지상에서의 '따뜻한 라면'이 얼마나 고팠을까.


이들은 승리한 것일까


노사 합의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이들은 과연 '승리'한 것일까. 주요사항을 살펴보자.


- 3년간 고용보장

- 임금 = 최저임금+1천원

- 모회사인 스타플렉스 고용(합의 실패)


400일이 넘는 세계최장의 굴뚝농성으로 그들이 얻은 것이 대략 위와 같다. 3년간 고용보장. 그들을 '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보다 1천원 높은 시급. 이렇게나 그들의 '승리'는 초라하다. 


홍대노동자들의 승리 이후, 8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는 정치사회적 격변이 일어났지만, 노동자들의 세상은 아직 그대로다.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는 결국 대통령을 보지 못하고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그렇게 그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죽음'으로 고발했다.


김용균씨 생전 모습.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새해가 되면서 정부가 재계와의 접촉면을 늘리는 분위기다.


이제 정부는 '재벌개혁'을 말하지 않는다. 그 빈틈을 파고 들어온 것은, '규제혁신'과 '토건사업'이다.(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읽어보라 - 전문)


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기업인들을 초청해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2019년 기업인의 대화'를 가졌다. 이 자리에 초대된 이재용 부회장은 "저희 공장이나 연구소에 한번 와달라"고 말했고, 이에 문 대통령은 "얼마든지 가겠다"며 화답했다. "얼마든지".



출처 : 프레시안


일련의 소식을 들으며, 어딘가 씁쓸했다. 노동자들의 처지와, 대기업 총수의 위치가 너무 선명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만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기업과 노동자를 대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가 확연히 다른 것이 아쉬울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노동계에 '열린 마음으로 임해달라'고 주문했다. 


'열린 마음'으로 임해달라고?


'최저임금+1천원'의 임금수준을 관철시키기 위해, '3년 고용보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400일을 넘게 농성해야 하는 노동자들이다. 죽어서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위험한 작업환경'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노동자들이다. 열린 마음으로 임해달라고? 그것도 '노동존중'을 천명한 정부의 수장이? 


대선 경선 후보 시절의 문재인 당시 후보. '친노동자정권 수립'이라고 쓰인 카드를 들고 있다.


후보 시절, '친노동자정권 수립' 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지 않았던가. "재벌 가운데 10대재벌, 그중에서도 4대재벌의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전문).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문재인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집권 1년 반만에,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보이지만, 다시 후보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노동존중'정부가 되어주길 바란다. 노동을 존중한다고 기업이 망하지 않는다. 노조조직율이 커진다고 경제가 휘청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승리다운 승리'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아니, 굳이 투쟁을 선택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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